감자아이
조영지 지음 / 키위북스(어린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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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모두가 no!라고 할 때, yes!라고 하는 사람', 뭐 그런 광고가 있었어요. 정장을 차려입은 숱한 사람들의 뒷모습 가운데 누군가 뒤를 돌아봤더랬는데 그게 그렇게나 강렬했죠. (기억하는 분, 있으시죠?) 그 이미지의 영향으로 한국 사회는 한동안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사람', '모두가 맞다고 할 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에 큰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건 아마도, 우리 사회가 그만큼 경직되었었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기도 할 테지요. 그림책 <감자아이>를 보며 그때 그 광고가 떠올랐던 것은 이 그림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그 광고 이미지에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또, 표지 이미지도요!)


모두가 앞을 보고 있는데, 뒤를 돌아보고 있는 저 감자가 '감자아이'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다른 감자들은 표정이 없는데 저 친구만 유난히 얼굴을 씰룩대고 있어서 표정을 그렸나 보다, 하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림책을 다 보고 나면 저 감자들이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는 데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림책을 다 보고, 뒤표지까지 챙겨보시는 것 잊지 마세요! 생각보다 더 큰 울림을 줍니다) ... 암튼, 우리의 '감자아이'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어느 평화로운 감자밭, 농부의 손에 이끌려 '감자아이'가 땅속에서 꺼내어집니다. 캄캄하고 포근한 땅속에 있다가 환한 세상을 처음 본 거예요. 아마도 바람도 처음 맞았겠지요. 눈부신 햇빛과 찬란한 세상의 빛깔에 감자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감자는 가림막 아래로 들어가게 되지요.


가림막 밑에서 절대 나오면 안 돼. 빛을 쬐었다가는 불량 감자 신세가 될 테니까.

불량 감자는 마트가 아니라 곧장 쓰레기통으로 가게 된다는 걸 잊지 마.


네, 맞아요. 이 감자들의 운명은 '마트'로 가는 것. 사람들이 '먹기 위해' 길러진 감자기에, 싱싱한 상태로 마트로 가서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것이 소임이었지요. 하지만 우리의 '감자아이'는 세상이 너무 궁금합니다. 아래 그림에서 가림막 사이를 쏘옥 비집고 올라와 햇빛 구경하는 모습이 보이시지요? 세상에 감탄하는 사이, 감자아이에게는 작은 싹도 돋았답니다.




마트로 보내져야 할 감자에 싹이 나서는 안되겠죠. 컨베이어 벨트에 오른 감자들 사이에서 싹이 난 감자는 '불량감자'로 가려내진다는 것을 알고, '감자아이'와 그의 친구 '몸에 큰 상처가 난 감자'는 탈출을 시도합니다. 정말 용감하기도 하죠. 이제부터 그들의 모험이 시작될 거예요. 친구들과 운명을 달리하기로 한 감자 친구들은 어떤 일들을 겪게 될까요? (생각보다 그들의 여정이 더 버라이어티합니다. 그 사이에 생각해 볼 만한 것도 많으니 꼭 그림책을 읽어주세요!)


북쪽에서 까만 흙을 본 적이 있어. 거기라면 너희들이 꽃도 피울 수 있을 거다.


농장 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비단 감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동물 친구들도 일등급이 되기 위해 맛없는 사료를 꾸역꾸역 먹어야 했지요. 좁은 우리에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것도 버거웠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 붉은 수염 돼지는 감자들에게 '꽃'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내가 꽃을 피울 수 있다고?" 하고 되묻는 감자들에게 "몰랐니? 하긴 감자꽃은 피는 족족 따 버리니까. 네 이마에 난 싹이 자라면 꽃으로 핀단다."라고 이야기해 주지요.


'감자아이'와 그의 친구는 꽃을 피워보기로 결심하고, 안전하게- 또 평화롭게 꽃을 피울 수 있는 까만 흙을 찾아 떠나요. 그들 앞에 아름다운 순간들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마지막 몇 페이지를 넘기는 사이 진심으로 그들의 꽃이 활짝 피기를 소원했습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일 먼저는, 나의 양육태도는 어떠한가, 돌아보게 되었고요. (가림막으로 들어가라고 소리치던 교관 감자(?)의 역할을 부모인 내가 하고 있지는 않나 돌아보게 되었어요) '불량감자'의 기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곧이어 하게 되었어요. 네, 그건 사람의 시선이죠. 권력을 가진 자가 그렇지 않은 자를 자기를 위한 잣대로 판단하고 해석해 쓰임을 결정한다는 게 굉장히 폭력적인 일로 느껴졌어요. (실로 저 역시 그렇게 감자를 먹고 있으면서도 말이죠)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모든 감자는 싹을 품고 있을 테지요. 하지만 많은 감자들이 자기 안에 싹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로 마트로 갈 거예요. 물론 '싱싱한 감자'로 좋은 요리에 쓰여 누군가에게 영양분을 줄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그것만이 그들에게 주어진 가능성의 전부는 아니라는 데 방점이 찍히더라고요. 일등급 감자들은 싹을 틔울 수 있고,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걸 알더라도 마트로 향함을 택했을까요? 그런 선택의 기회를, 우리는 가졌던가요? 혹은 아이에게 주고 있던가요?


예전에 비해- 우리 사회는 많이 변했지요. 시선을 낮추고, 주위를 돌아보려고 애쓰고 있어요. 공장 같은 학교 교육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아졌고요. 하지만 여전히 '좋은 대학'과 '대기업 취업'이라는 목적지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도 같습니다. 마트가 아니라 좋은 대학으로, 또 대기업 취업으로 바꾸어 읽어보면- 감자들이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지요. 그랬을 때, 나는 감자아이처럼 탈출할 용기가 있었던 사람이었나요? 아이의 탈출 시도에 어떻게 반응할 부모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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