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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이은정 - 요즘 문학인의 생활 기록
이은정 지음 / 포르체 / 2021년 7월
평점 :
문학하는 사람들은 어떤 일상을 살까? 소설과 에세이들을 숱하게 읽으면서, 언제나 그것이 궁금했다. 하루키처럼 일정한 시간에 글을 쓰고, 몸을 챙기거나 사람들을 돌보며 지낼까. 혼자 글을 쓰는 삶이라면 한적한 바닷가나 깊은 산속도 괜찮으려나. 아니라면, 도시 한가운데서 하루에도 수십만 개씩 만들어지는 서류들처럼 소설도 쓰여지는 것일까. ... 그 상상의 끝에는 있을 건 다 있지만, 북적대는 도시와는 거리가 먼 지방 소도시의 작은 동네가 그려졌다. 집밖으로 나서면 정다운 인사들이 오가는 곳. 그곳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더라도, 모두들 그 도시를 오랫동안 떠나지 못해 이제 고향보다 더 고향 같아져 버린 곳. 소설에 고향이 있다면, 아마도 그런 동네 아닐까.
이 책 <쓰는 사람, 이은정>은 문학인으로 살아가는 자연인 이은정의 삶을 그리고 있다. 2018년 단편소설로 등단한 그녀는 일간지에 짧은 에세이를, 계간지에 연재글을 쓴다. 그 사이 책도 세 권 더 냈다. 이 책은 그녀의 네 번째 책이다. 쓰지 않는 삶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쓴 단편소설로 등단한 것이 아닐 테니- 문학인으로서의 삶은 기록된 것보다 더 오랜 것일 테다. 그 사이- 읽고 쓰는 일은 그녀 인생의 전부가 되었다. 그게 전부라고 말할 수 있어서 너무 멋지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여전히 가난하고 무명하고 그래서 자주 우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업 작가의 삶을 택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에 깊은 애정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 바쳐 싸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내포한 상황은 하나같이 절절하고 안타깝다. 어느 정도 안정과 행복이 예측되는 삶을 마다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길을 걷는 사람은 얼마나 주체적인가. 그 길을 가기까지 많은 고뇌와 갈등에 힘겨웠을 테지만, 결국 시련까지 포용하는 길을 선택한 사람들. 가는 길이 꽃길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충분히 자신의 행복을 찾아갈 사람들이다. (본문 중에서, 122-123쪽)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돈을 벌지 못해도 좋다'라는 것과 동의어가 될 수는 없다. 좋아하는 일이라도- 그것이 '일'인 이상 생계유지 수단이 되어야 한다. 전업 작가의 길을 택했다면, 읽고 쓰는 일이 돈벌이의 수단이 되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예술가가 안 그렇겠냐마는) 돈을 위해 문학한다는 것은 어쩐지 조금 우리를 실망케한다. '돈 때문에 쓴 글이네'라는 평은 대중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왠지 치욕적인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이 글이 쌀이 되고, 전기세가 되어야 내일도 전업 작가로 '살 수 있게'될테니.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 많은 사람들의 가벼운 시선과 무거운 고민 안에서 저자는 흔들린다. 자꾸 휘어지고, 예상치 못했던 장애물에 부딪혀 눈물을 터트리고 만다. 그러나 휘어진 것이지 부러지지 않았다.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는 그녀는 냉장고에 생긴 성애는 긁어내는 대신 드라이기로 녹이면 금방이라는 것과 흔들리는 변기 커버는 버틸 것이 아니라 나사를 잠깐 조이는 것만으로 금세 튼튼해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워나간다. 그렇게 익힌 삶의 감각은 그 무엇보다도 튼튼하다는 것을 알기에- 불안하고 두렵고 막막한 그녀의 처음들이 기대로 가득 찼다.
그러니까 나는- 이 책과 마주 보고 있던 시간 동안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됐다. 동시에 그 응원의 마음은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그녀 마음에 잔잔한 파도가 일어 전에없던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 나도 역시 내가 더 좋아졌고, 잘 살고 싶어졌다. 그녀의 일상을 읽는 동안 나도- 나를 웃게 하는 대부분의 장면은 타인이 아니라 나로 인해 생기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나를 이끄는 힘도 나에게서 나오겠지.
모든 인생은 날마다 처음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매일 처음을 산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십대도 육십대도 오늘은 처음이다. 그러므로 오늘 당장 무엇을 시작하더라도, 그 무엇을 실패하더라도 모두 처음이니 아무렴 어떨까. (본문 중에서, 134쪽)
어려서는 어른이 되면 굉장한 사람이 되어 있기를 기대했다. 영화를 꿈꾸던 고등학생때의 나는 30대 초반이면 청룡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줄 알았다. 그때는 그것도 굉장히 현실적인 꿈이라고 생각하면서 꿨다. 지금의 나는 그때 꿈꿨던 나이를 훌쩍 지나왔다. 영화를 꿈꿨던 나는 (지금 돌이켜 생각하기에) 빛났지만, 영화가 아닌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나도 썩 괜찮아 보인다. 꼭 그것이어야만 했던 많은 것들이 지키고 있던 자리를 내어주고 다른 것들로 채워진다. 그것을 돌아보면서- 수채화에 쓰이는 두툼한 종이가 되고싶다던 저자의 문장들이 떠올랐다. 그래, 그정도 두툼한 종이라면 흠뻑 젖더라도 찢어지지 않을테다. 원하던 색이 퇴색되거나 흩어져버릴지라도 허허실실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젖은 종이를 타고 흩어져 자연스러운 색을 내는 수채화물감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