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ㅣ 트리플 4
임국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5월
평점 :
얼마 전,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이 책 이야기를 했다. 너네 보글보글 기억나? 거기 엔딩 본 사람! 얼마 전에 읽었던 소설에서 그러는데, 혼자 플레이했을 때랑 둘이 플레이했을 때랑 엔딩이 다르대. 혼자 플레이했을 때는 엔딩에 '이게 진짜 엔딩이 아니니 친구와 다시 오라'고 나온다더라고. 역시나, 친구들도 놀라워했다. 그럼 둘이 플레이했을 때는 어떤 엔딩이 나오는데?로 시작된 그 시절 오락실 이야기는 뾰로롱 꼬마마녀를 지나 세일러문을 거쳐 똘기 떵이 호치 새초미 자축인묘에 다다랐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것은 놀랍게도 비슷했다. 소설 속 만경과 수진처럼 한 집에 모여 만화를 봤던 것도 아닌데, 같은 시간에 같은 채널을 틀어두고 엇비슷한 시간들을 쌓아나갔다. 어쩌면 아직 '취향'이라는 것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때- 그 때 우리는 개개의 존재이기보다는 '우리'라는 묶음으로 생각되는 편에 훨씬 더 익숙했더랬다. 그렇게 한참동안 그때 우리가 좋아했던 것들을 기억해 냈고, 덕분에 한참 동안 깔깔거릴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라 여전히 잘 지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같은 세계를 오랫동안 공유했고, 내가 사랑하고 좋아했던 것들을 내 친구들도 좋아했으니까. 나를 떠받치고 있는 마음속 가장 깊은 부분 어딘가에 친구들이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우리는 자주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에게 베이스캠프가 되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해, 한 해 시간을 보내면서 돌아보니- 그 생각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서로에게 베이스캠프가 되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맞고, 성격도 취향도 비슷해서 우리가 친구가 된 것이라는 생각은 틀렸던 것이다. 꽤 오랫동안 같은 문화적 뿌리를 가지고 살았지만, 어느 순간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한 해 한 해 시간이 지날수록 삶의 궤적은 점점 더 달라져간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때로는 왠지 모르게 서글퍼지는 그 다름 앞에서 우리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퇴행이나 도피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로 한데 묶일 수 있었던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 그러니까 일종의 회귀 본능 같은 것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이 굉장히 즐거웠다.
보글보글도, 그 시절의 만화영화도, 코인노래방도 웨스트라이프도 그때 우리가 좋아하던 것들이라 더 그랬다. 하지만 반가움만으로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이 완성된 것 같지는 않다. 거기에는 아마도 '안전함'이라는 게 더해지지 않았을까. 이것저것 자유롭게 상상해볼 수 있었던 때, 설령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내 탓이 아니라 환경탓, 사회탓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일이 고작 '선생님(혹은 엄마,아빠)께 들키는 일'이었던 때라서. 이제는 누가 나를 혼내지도 않는데- 내가 스스로 나를 재촉하며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니까, 그게 새삼 서글퍼서, 이 책에 더욱 즐겁게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 친구와 같이 보글보글 100번째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나면 이런 메시지가 나온다고 한다.
Now, You Found the Most Important Magic in the World.
It's "LOVE" & "FRIENDS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