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소설이다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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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의 아파트 7층 자택에서 주목받는 작가 플로라 콘웨이가 세 살짜리 딸 캐리를 잃어버렸다. 분명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는데, 술래가 된 플로라는 집 안을 샅샅이 뒤져도 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출입문과 창문에도 사람이 드나든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캐리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고, 언론은 사라진 캐리의 행방과 남겨진 플로라의 행보에 주목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캐리는 없었고, 플로라는 술래였다.

생각 끝에, 플로라는 스스로를 '집 안에 유폐 중인 포로'가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된다. 몇 달째 아파트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그녀는 다음 문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어느 때의 자기 모습과 꼭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 의도적으로 그녀를 집 안에 가두고 왜곡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통제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실체를 찾아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소설가.

그는 소설가였다. 플로라는 스스로가 어느 작가가 쓴 소설의 등장인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까지 그녀의 삶이 소설가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그녀가 뭔가를 보여줄 차례였다. 그렇게 그녀는 소설 밖 세상을 만났다. 동굴에 오래도록 갇혀 있었던 탓에 동굴 벽에 그려지는 그림자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그녀가 동굴 밖으로 나와 빛을 마주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소설 <인생은 소설이다>는 의도적으로 현실과 가상세계를 뒤섞었다. 현실의 작가는 가상세계의 작가를 만들어내고, 가상세계의 작가는 또 하나의 가상세계와 인물들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가상세계의 작가가 불쑥, 현실의 작가 앞에 나타났다. '어떻게 내 삶을 이렇게까지 망칠 수 있는 거냐고' 되묻는다. 모든 것이 그의 손끝에서 태어났다고 믿었던 현실 세계의 작가는 가상세계의 생명성에 몸을 뒤로 물리고 만다.

아무리 작가가 결정권자의 지위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설 속에서 오롯이 모든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요?

등장인물들에게도 고유의 권한이 주어지니까요.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본성과 정체성, 은밀한 삶의 이력에 위배되지 않는 결정을 내려야만 하죠.

개연성 없는 소설은 가치를 잃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본문 중에서, 195쪽

작가는 등장인물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그게 바로 등장인물들에게 부여된 고유의 몫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플로라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다. 작가인 로맹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등장인물인 플로라 자신의 의지로 어떤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소설의 '개연성'을 만들어낸다. 내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일 수 있는 것은 그 자유의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온전히 내가 만들었다고 믿는 세계도 나만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야기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현실 세계라 믿는 이 세계 역시 누군가가 만들어낸 가상세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인다. (로맹 역시 기욤 뮈소가 만들어 낸 가상세계의 작가일 뿐이므로)

소설이 만들어낸 이 점층법 때문에 소설은 동심원처럼 점점 확대되어 가기도 하고, 더 깊이, 더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쯤에는- 이런 생각도 하게 됐다. 우리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또,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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