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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다 말고 자꾸 표지를 문질러보게 된다. 화려하지는 않은데 자꾸 눈길이 가고, 손길이 가는 걸 보면- 우아한 매력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다. 촉감은 또 얼마나 좋은지, 부드럽고 따뜻하다. 책을 받쳐 든 왼손은 표지의 질감에 감복해 책장을 넘기는 오른손을 재촉한다. 그렇게, 케이크를 오븐에 넣어두고 시계만 쳐다보고 있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나에게 베이킹이란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과정이 즐거운 일이다. 내가 베이킹을 전문가에게 배워볼 생각이 나 자격증 같은 걸 딸 생각을 결코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는지 그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 없이 그저 사랑과 동경만으로 시작한 일. 나의 한계를 알지 못한 채 하고 싶은 마음이 흘러넘쳐 시작했으나 남들이 능숙해지도록 혼자 여전히 서툴고 쩔쩔매는 일. 남들 앞에 선보여야 할 때면 늘 자신감이 없지만 결과물이 어떻든 그만둘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게 소설 쓰기와 베이킹은 어쩌면 똑 닮은 작업. (본문 중에서, 18쪽)
베이킹과 소설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다 소설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그녀이지만, 여전히 베이킹은 그녀 삶에서 중요한 한 축이 되어주었다. 해서 책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 그러니까 책과 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쪽 다 절대 놓칠 수 없는 큰 즐거움이기에, 그녀에게 책은 곧 빵이 되고, 빵은 곧 책이 되어 돌아왔다. 어느 빵을 먹으면 어떤 책의 어떤 이야기가 자연스레 따라나서고, 어느 책을 읽을 때면 어떤 빵의 질감과 향이 입안을 메운다. 그 모든 일이 억지스럽지 않았다. 이름도 한번 들어본 적 없는 낯선 빵도, 아직 읽지 못한 소설도 왠지 그 빵과, 그 책과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덜컥, 믿어버리게 된 것은 아마도 빵과 책에 대한 작가의 진심이 전해졌기 때문 아닐까.
"머물기보다 나는 늘 도착하기를, 아니면 다시 들어가기를, 아니면 떠나기를 기다리며 언제나 움직인다."는 소설 속 한 문장(책 속에서 작가가 인용한 줌파 라히리의 '내가 있는 곳' 중 한 문장)을 노트에 옮겨 쓰며, 작가가 언젠가 오스트리아에 가서 먹어보고 싶다는 '자허토르테'를 먹었던 날들을 떠올렸다. 에곤쉴레가 클림트를 만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기다렸다는 오래된 카페에서 이름도 어렵고 긴 커피와 자허토르테 세트를 먹었던 순간은 그저 그것만으로 황홀해 오래도록 기억을 맴돈다. 그때 내 가방에는 어떤 책이 들어있었더라. ... 곰곰 생각했는데도 끝내 책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쉽다. (작가가 책에서 했던 것처럼, 나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빵과 책을 한 세트 묶어두고 싶었는데!)
빵과 책을 계속 생각하다 보니, 참으로 이상하고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일었다. 빵은 향을 내는 것, 입안으로 들어가 꼭꼭 씹어 삼켜지는 것, 몸속 소화기가 소화해내는 것. 반면 책은 향도 없고, 맛도 없고, 때때로 읽으면서도 전혀 소화가 되지 않는다. 책과 빵은 이견 없이 잘 어울리는 조합이지만, 그러고 보니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네-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잘 어울리는 건가. 서로에게 없는 것을 꾹꾹 채워줘서.
작가가 소개한 책들 중 읽어보고 싶은 책들을 메모하고, 좋아하는 카페가 마침! 내놓은 슈톨렌 쿠키를 주문했다. 12월의 첫날 읽은 달콤하고 고소한 빵과 책들이 올해를 든든하게 채워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