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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천문학 -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ㅣ 그림 속 시리즈
김선지 지음, 김현구 도움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6월
평점 :
밤하늘을 그린 그림 중에 (아마도) 가장 유명한 그림,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많은 미술사학자들이 고흐의 별 그림에는 종교적 감정이 내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마음 둘 곳 하나 없이 고단했던 그의 삶에 밤하늘의 별은 단 하나의 편안한 안식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 <그림 속 천문학>은 고흐의 밤하늘을 천문학적인 관점으로 다시 본다.
'별이 빛나는 밤' 그림 속의 달은 그믐달 단계에 있다. 달의 왼쪽 부분이 밝고 지평선에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그림은 해가 뜨기 직전 새벽 시간대의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그믐달이 뜨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동쪽 방향이며, 따라서 고흐는 동쪽을 향한 채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새벽이라는 시간과 지평선에 가까운 그믐달의 위치로 볼 때, 사이프러스 나무 오른쪽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은 금성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에서 정확한 별들이나 별자리 이름을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금성과 사이프러스 위의 별들은 대체로 양자리, 달 바로 왼쪽의 것들은 물고기자리로 추정된다.(309쪽)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에 따르면 이 그림은 6월 18일경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데, 천문학적으로 계산하면 실제로 이 날짜에는 그믐달이 아니라 상현을 지나 차오르는 달이어야 한다고도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까 고흐의 밤하늘은 자연을 관찰하고 묘사하되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내적 감성과 종교적인 느낌에 따라 각색해 표현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진짜 밤 하늘을 오래 관찰하고, 그대로 옮겨놓았던 예술가들도 있었을까? ... 당연히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엘스하이머의 '이집트로의 피신'. 이 그림은 31*41cm의 그다지 크지 않은 작품이지만, 그 세밀함과 정교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그림의 놀라운 점은 별자리는 물론이고(무려 1200개의 별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은하수, 달의 울퉁불퉁한 표면까지 묘사했다는 점이다. 이전의 화가들에게 달은 그저 수정같이 맑은 것이었다면, 엘스하이머는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해 사실적으로 달의 표면을 표현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갈릴레오와 동시대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갈릴레오의 연구 발표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갈릴레오의 책이 나온 시기보다 9개월 앞서 이 그림을 발표했다고 한다). 양극단에 있다고만 생각했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자연현상과 종교가 한 캔버스 안에서 이렇게 만나는 것에 어떤 경이를 느꼈다.
엘스하이머는 하늘을 보며 무엇을 생각했을까? 무엇을 발견하기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던 것일까? ... 사실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하늘을 궁금해해왔다. 왜 해가 뜨고 지는지, 저 별은 무엇인지, 달의 모양은 왜 바뀌는 것인지- 끝없이 질문하고 설명해왔다. 그 결과 고대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는 우주의 모형으로 독창적인 천동설을 생각해냈고, 16세기의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제시했다. 그리고 갈릴레오는 직접 고안한 망원경을 이용한 정밀한 천체 관측으로 지동설을 확신했다. 하지만 하늘을 들여다보고, 설명하려 했던 사람들이 비단 과학자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새삼 우리를 놀라게 한다. 단순히 동물 사냥을 그렸을 것이라고 생각한 동굴 벽화에서 황도 12궁의 별자리가 발견되고, 중세 조토의 그림에서는 혜성을 만날 수 있다. 당시의 생활상과 더불어 달력과 별자리를 그린 랭부르 형제의 달력 그림은 우주의 순환과 인간의 삶이 자연스럽게 조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수백 번, 수천 번 작은 경이를 느꼈다. 지금-여기의 내 삶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그동안 올려다보지 않았던 밤하늘은, 사실 내가 겨우 내 그림자만을 내려다보는 사이에도 나의 우주를 단단하게 만들어두고 있었다. 나보다 훨씬 넓은 세상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은 지구라는 공간적 한계를 초월해 우주적 차원으로 인식을 확장하고 궁금해하며,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그 비밀을 탐구하고자 했다. 작은 발견의 연속과 그것을 표현해내는 과정들은 그래서 빛났다.
책을 읽고 보니, 신화도 조금은 달리 보이고, 익숙했던 그림도 새로운 시각에서 읽어보고자 애쓰게 된다.
관점의 전환.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오늘의 내게 큰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