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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 즐겁게 시작하는 제로웨이스트 라이프
허유정 지음 / 뜻밖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와의 짧은 외출에도 에코백은 금방 가득 찬다. 물 한 병, 음료수 한 병, 간식거리, 놀잇감, 물티슈. ... 습관적으로 물티슈를 챙기던 손이 멈칫한다. '물티슈가 자연 분해되려면 30-40년은 걸린다던데'하는 얘기가 불현듯 들려왔기 때문이다. 멈칫거리던 손은 결국 물티슈를 포기하지 못했지만, 손수건도 두 장 챙겨 넣었다. 손수건으로 닦을 수 있는 건 손수건을 써야지, 하는 생각으로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작은 변화는 이 책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를 읽으면서 생긴 것이다. 환경에 대한 숱한 글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전에 읽었던 어떤 글과도 결이 달랐다. 그중 제일 신선했던 부분은 '제로 웨이스트=미니멀리스트=알뜰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 그동안의 나의 소비는 늘 적지 않은 쓰레기를 수반하고 있었고, 때문에 내게 제로 웨이스트는 소비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으로 치환되고 있었다. 하지만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 것이 소비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내게는 적잖이 충격적인 부분이었다) 반찬 통을 챙겨가서 떡볶이를 사 오고, 카페에서 내 텀블러를 내미는 것. 비닐에 소포장된 채소 대신 흙이 잔뜩 묻은 채소를 툭툭 털어 에코백에 그대로 넣는 것 역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방법이었다. 그런 거라면, 지금의 나도 조금만 애쓰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읽다 보니, 호기심이 마구 일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제품을 하나하나 눈여겨보며, 나는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샴푸 바도 재미있어(?) 보였고, 설거지 비누에도 관심이 갔다. 수세미가 식물 이름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으로 진짜 설거지를 할 수 있다는 데서는 또 한 번 멈칫, 하기도 했다. 텀블러를 챙겨 나가는 데 약간의 노력과 의식이 필요하다면, 수세미를 '천연 수세미'로 바꾸는 것, 바디워시 대신 비누를 사용하는 것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가능해 보였다. 단지 사용하던 제품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조금 더 밝고 맑게 만들 수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의지가 샘솟았다.
사람 몇 명 노력한다고 되겠어? 나도 안 쓰려고 해봤는데 다 소용없는 것 같더라.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 제도의 문제, 법의 문제라고. 실제로 어느 개인의 실천은 기후 문제를 반전시킬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기후 전문가들 역시 지구 에너지 중 일회용품 소비가 차지하는 건 극히 일부분뿐이라고 말한다. 텀블러를 휴대하는 건 감수성 측면의 역할일 뿐이라고도. 맞다. 그럴 수 있다. 당장 플라스틱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쓴다고 지구가 드라마틱 하게 깨끗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텀블러를 챙겨 나가고, 천연 수세미를 쓰는 일은 환경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의 표현이다. 조금 으쓱한 마음으로 구매한 그것은 일상 아주 가까운 곳에서 자주 마주치며 환경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한다. 바로 그것, 자주 환경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나중에는 큰 파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출발은 0에서 시작된다. 저자가 유럽 여행에서 문득 마주친 #제로웨이스트샵 처럼, 나는 이 책을 통해 제로 웨이스트를 만났다. 사실 제로 웨이스트의 끝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보기로 한다. 이렇게 꿈틀거리는 마음이 생길 수 있음에, 먼저 한 걸음 나아가 본 이들이 있음에 든든함과 감사함을 느낀다. 천연 수세미와 설거지 비누를 주문하며, 벌써부터 마음이 들뜬다. 그러고 보면 중요한 것은 얼마나 다이나믹하게 쓰레기를 줄였는지가 아닐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느냐-일지도.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게, 어떤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함께 걷기를. (지구를 지킨다는 비장함보다는) 가볍고, 경쾌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