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땅
김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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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그 무렵 연해주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무리 지어 살고 있었다. 워낙 척박한 땅이기도 하고, 극동지방이기도 해서 러시아 관리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은밀히 넘어와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짓던 조선인들은 점차 무리 지어 이주했고, 어느 순간에는 러시아 관리의 보호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환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구한말의 혼란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들은 러시아 시민권을 부여받지 못했기에 착취와 강탈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그 땅을 일궜지만-그 땅에 뿌리를 내린지 오래였지만- 그곳 사람이 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기차에 올라야 했다. 어디로 가는지, 언제쯤이면 도착하는지, 왜 가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소설 <떠도는 땅>은 그렇게 이유도 모른 채 기차에 태워진 스물일곱 명의 조선인들을 그리고 있다. 철컹철컹, 달리는 기차의 리듬에 따라 그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낸다. 기차 안의 쾌쾌하고 묵직하던 공기는 어느 순간 누군가의 이야기를 타고 조선 어딘가로 흘렀다가, 연해주 어느 봄날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금실은 다섯 살 되던 해인 1910년 초봄에 아버지의 등에 업혀 러시아로 왔다. 그녀는 여태껏 자신이 태어난 쑥새를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했다. 너무 어려서 떠나와 추억 하나도, 기억에 남아 있는 풍경 한 점도 없으면서 그곳이 사무치게 그립곤 했다. 그런데 자신을 태운 열차가 페르바야 레치카 역을 출발하는 순간 자신의 고향이 연해주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의 기억 속 희로애락이 담긴 모든 장면은 연해주에 있었다. 가장 슬픈 장면도, 가장 행복한 장면도. 그리고 그녀가 두고 온 모든 것은 신한촌 멜리코브 거리에 있는 집에 있었다. 그녀는 만약 자신이 당장 죽는다면 자신의 영혼이 열차가 내달리는 방향을 거슬러 멜리코브 거리의 집으로 날아갈 것 같다. (본문 중에서, 75쪽)

 

조선인이지만 조선인이 아니었고, 러시아 땅에 산 지 오래지만 러시아인도 될 수 없었던 그들. 그들이 스스로를 고려인이라고 불렀던 것은 떠나온 땅에 대한 슬픔과 애잔한 마음, 또 잃어버린 국가에 대한 비통한 마음을 표현한 것 아니었을까. ... 옆에 앉은 이에 대한 작은 '정'의 불씨도 꺼져버릴 즈음- 그들은 어딘가에 도착했다. 기차는 멈췄지만, 어떤 사람들은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어붙은 땅이었다. 그 땅. 그 새로운 곳에서 그들은 어떤 삶을 꾸려나갈까. 기차 안에서 몇 달 동안이나 이어진 좌절감과 절망감은 어떤 기대도 가질 수 없게 했는데. 그럼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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