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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벨 - 착한 어린이 대상!
토니 로스 지음, 민유리 옮김 / 키위북스(어린이) / 2020년 4월
평점 :
오늘 하루도 대체 몇 번이나 '위험해', '안 돼'를 얘기했던지 모르겠다. 아이의 호기심은 엄마의 '안 돼'를 먹고 자라기라도 하는 듯, 매일매일 새로운 '안 돼'를 얘기하게 된다. 하루에 백 번쯤 '안 돼'를 들었으면 아이도 좀 지칠만할 것 같은데- 어제 이야기했던, 아니 한 시간 전에 그렇게나 애써 설득했던 '안 돼'들은 금세 수면 위로 또 고개를 빼꼼인다. 단 몇 시간만이라도 집안에서는 쿵쿵거리며 뛰지 않기를, 위험한 물건은 휘두르지 않기를. 음식은 한자리에서 먹기를!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니, 아가 u_u...) 사사롭다 못해 글로 쓰려니 민망하기까지 한 바람을 아이에게 애원하듯 설득하고, 근엄한 척 주의를 주었더랬다. 그러면서도 우리 아이만 이런 건 아니겠거니, 이게 다섯 살의 일반적인(?) 행동발달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대체 뭐지?
제제벨,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제목에 버젓이 '착한 어린이 대상! 제제벨'이라 적혔어도, 제제벨이 진짜 착한 어린이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반어법일 거라고 생각했다;ㅁ;...) 그런데 '진짜' 착한 어린이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어린이라고 공원에는 제제벨의 동상까지 세웠다. 거기에는 예의 바른 어린이 상, 뾰루지 없는 어린이 상, 남을 잘 도와주는 어린이 상, 수학 잘하는 어린이 상, 책 잘 읽는 어린이 상, 글짓기 잘하는 어린이 상 등등의 수상 내역까지 빼곡하다. 흠잡을 데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완벽한 아이. 부럽다, 하고 넘기다가 '혹 사회성이 좀 부족한 건 아닐까,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것도 중요한데'라며 어떻게든 제제벨을 '아이'로 보려고 애쓰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미안, 이모가 조금 구차했어 제제벨) 하지만 웬걸. 선물을 받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꼭 '고맙습니다'라고 편지를 쓰는 걸 보니 정말이지 걱정할 것 하나 없어 보였다. 친구들에게 타이른다는 명목의 잔소리를 하는 장면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정말 훌륭했다. 아니, 솔직히 엄청나게 부러웠다. (제제벨의 엄마, 아빠는 걱정 없는 육아를 하고 있을까? 그렇겠지 아마도?)
아이의 완벽함은 세상 밖으로 쉬이 알려졌다. 대통령이 제제벨을 주목했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제제벨에게 쏟아졌다. 제제벨은 이런 상황에서조차도 의연하고 성숙했다. (너무 완벽한 모습이라, 이 장면부터는 '어른'으로서 아이인 제제벨이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제제벨 입장에서는 해야 할 당연한 일들을 한 것일 수도 있을 텐데- 너무 많은 외적 보상을 한꺼번에 받았기 때문이다. 또 그로 인한 또래들의 시기, 질투는 다 어찌한담. 물론 책에는 거기까지는 표현하고 있지 않지만) 그런 (나름의 근거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쓸데없었던) 걱정들이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던 차에 마지막 장면에 닥친다. 으아아아아앗, 으음? (무슨 일이 일어났던지는, 그림책에서 확인하세요!)
이제 완벽한 어린이, 제제벨은 없다.
예의 바르고, 남을 잘 도와주고, 수학도 잘하면서 글짓기도 잘 하고, 자기 방을 늘 말끔하게 정리하면서 밥도 잘 먹는 아이란, 세상에 없다. 갑작스러운 사건에 당혹스러웠지만, 마지막 페이지의 무덤덤함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가야- 너는 너라서 예쁘단다. 네가 제제벨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게, 있는 그대로의 너를 좀 더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볼게. (하는 훈훈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오랜만에 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