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
미즈키 히로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1. 문득, 파견직으로 처음 일하게 된 때가 생각났다. 이제 막 스물여덟이 된 때였고, 무려 네 번째 직장이었다. 이전 직장들에서는 모두 정규직이었지만, 그다지 오래 일하지 못했다. 매번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고, 그럴 때 정규직이라는 것은 버팀목도, 위안도 되지 못했다. 해서 큰 고민하지 않고 파견직을 받아들였다. 공공기관이었고(회사 사정이 갑자기 나빠질 리 없고), 하고 싶은 업무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페이도 꽤 괜찮았다. 사실 하지 않을 이유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앉아보니, 만만치 않은 문제가 있었다. 정규직-계약직-파견직으로 이어지는 직장 내 차별이 생각보다 더 심했던 것이다. 월요일 오전, 전체 회의에 파견직은 참여할 수 없었다. 업무를 위한 내부망에도 접속할 수 없어 매번 정규직이나 계약직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다 한들 그저 '보조'일 수밖에 없던 자리였다. 목소리를 냈고, 많이 싸웠고, (다행인지) 상당 부분 받아들여져 일하는 동안 많은 것들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상처로 남았다.

 

2. 이 책의 주인공 히나코 씨는 나와는 반대의 커리어를 쌓았다.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을 직접 경험하고 새로운 길을 찾고 싶어 사회보험노무사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책은 그녀가 사회보험노무사로 일을 시작하는 첫 몇 달간을 다룬다. 스스로 비정규직 경험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아직 이십대의 젊은 나이. 회사 생활에서 겪을 고충을 맛보기 시작할 때다. 히나코는 클라이언트 기업을 방문해 근로자와 기업의 관계에 대한 상담을 하면서 각 기업의 문제점과 직면한다. 그녀가 경험하는 것은 노동 시장의 축소판이다. 노동시간의 위장 문제, 열정을 착취하는 악덕 기업의 행태,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 그에 따른 육아나 출산 휴가의 문제, 정규직-비정규직에 대한 처우, 산재와 직장 내 괴롭힘, 그리고 경영구조 개선까지. 작은 회사에 근무하면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면서- 또 일하는 동안 결혼과 임신을 하며 겪었던 내 안의 경험들이 툭툭 튀어나와 겹쳐졌다.

 

"그런데 말이야, 육아휴직이라는 게 필요한가?" 갑자기 요코제키 씨가 말했다.

"'육아 및 개호휴업법에 정해진 바에 따라 육아휴직을 제공한다'는 문구로도 기재 의무는 충족하지만 후생노동성의 표준 문서에서는 별도로 만들게 되어 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필요하냐는 말이지. 그러니까 그거, 아이가 한 살이 될 때까지 쉰다는 말이잖아. 우리에게 육아 휴직은 가당치도 않아."

"가당치도 않다고요?"​ (121쪽)

 

 

"자각이 없으니까 직장 내 괴롭힘을 하겠지.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니와 씨가 쓴웃음을 지었다.

"눈요기가 되도록 얇은 옷을 입으라는 게 당연하다고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직원을 바보 취급 하는 게 당연해요? 시대착오도 정도가 있어야죠."

"여성을 직장의 꽃으로 취급하는 일은 지금도 여전하지. 자, 봐. 새해가 되면 증권거래소에 기모노를 차려입은 여성들이 쭉 늘어서잖아. 뉴스에서 봤을 거 아냐."

"그야 그건 설빔 같은 거잖아요."

"그럼 왜 여성만 입어? 게다가 젊은 애들만? 머리를 올리는 데도 옷을 입는 데도 돈이 들어. 게다가 띠를 매면 숨쉬기도 힘들어. 정말 귀찮기 짝이 없는데." (235쪽)

 

 

특히 '여성'이기 때문에 직장 내에서 숱하게 겪는 차별과 혐오는 슬프고 또 아팠다. 사회보험노무사 사무소에 일하면서도, 상황과 보기 좋게 타협한 니와 씨도 어쩐지 조금 슬펐다. (다섯 살 딸을 키우는 나는 다시 '출근'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자꾸만 피어올랐다)

3. 그럼에도 히나코 씨의 뒤에 서 있는 일은 꽤 흐뭇하기도 하고, 뿌듯한 일이었다. 마주하는 모든 상황이 쉽지 않지만,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내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아직 서툴지만- 그렇게 노력하는 노무사라면 믿고 맡겨볼 만하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외려 책장을 덮을 때쯤엔- 그녀가 이 일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사업주는 늘 그래, 근로자는 늘 그런 식이지- 하고 그녀만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끼워 넣지 않기를 바랐다. 시간이 많이 지나도 오늘의 그 마음으로, 사업주와 근로자의 이야기를 정성껏 들어주는 사회보험노무사가 되기를. 그 안에서 아주 작지만 소중한, 보람을 틔워 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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