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누군가 점집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었다. 얼굴에 홍조를 띠어가며 차분하게 말하는 목소리에 왠지 신뢰가 가더라고 했다. 2년 후부터는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했다며,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준비해야겠다는 그녀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도 거기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퇴사를 앞두고, 또 한번 불안함과 기대감이 몰려오고 있으므로.

소설 <소원을 말해줘> 속 D 구역에 격리된 사람들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당장 거기 가보자고 했을지 모르겠다. 그들 사이에 이상한 병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허물. 정부와 제약회사가 함께 만든 방역센터에서 그것을 벗겨내고 나면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허물이 몸을 덮는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D 구역에는 '롱롱'이라는 전설 속의 뱀이 나타나 모두가 보는 앞에서 허물을 벗으면 사람들의 병이 나을 거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일종의 신화 같은 것. 신화나 전설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상상력을 발휘해 만들어지는 것들이니, 충분히 그럴만했다. 고대인들이 천재지변을 두려워해, 하늘과 땅, 또 해와 달에 기도를 드렸던 것처럼- D 구역 사람들은 어느 날 눈앞에 나타난 '롱롱'에게 간절하디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최소한, 설명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막연한 희망이 허물을 벗겨줄 거라고 정말 믿는 겁니까?

(본문 중에서, 102쪽)

 

롱롱의 허물은 벗겨질 듯 쉬이 벗겨지지 않았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희망은 옅어져만 갔다. 롱롱이 우리를 구하러 왔어,라는 강한 확신은 어느새 흐물흐물해져 금세 녹아내릴 듯했다. 그럴수록 허물의 공포는 짙어졌다. 방역 센터는 그 마음을 이용해 시민들을 통제했다. 시민들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으므로, 아주 쉬운 일이었다. 허물을 퇴치하기 위해 세금을 걷고 수십 종의 프로틴을 출시해 점점 가격을 올렸다. 소설 속 이야기인데도, 내내 몸이 간지러웠다. 그들이 만들어낸 허물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 삶을 가리우고 있는 건 아닌지 계속 되물어야 했다.

지금 내가 확신을 가지고 믿고 있는 것. 꼭 그랬으면 하는 것. 그것들이 혹시 누군가 만들어낸 전설이나 신화 같은 것은 아닌지. 없어도 좋을 허물을 만들어 씌워놓고, 괜찮다고- 곧 벗어날 방법이 생긴다고 나를 달래고 있는 거라면, 그것을 깨고 나갈 필요가 있겠다. (이렇게 쓰고 보니, 굉장히 진취적이고 정치적이다. 차라투스트라도 생각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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