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다 말고 검색창에 '보라보라 섬'을 써넣었다. 민트색 바다가 쏟아져 나왔다. 어떻게 바다가 이런 색을 띨 수 있는 거지, 하고 감탄하는데 그 옆에 보라보라 섬의 지형이 보였다. 전에 본 적 없는 특이한 형태였다. 하나의 섬을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섬. 보라보라 섬은 그렇게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본 것 같은 보라보라 섬의 풍경이었지만, 그래도 또 넋을 잃고 한참을 봤다. '사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저 섬에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국에서 보라보라 섬에 가려면 22시간이 걸린단다. 인천에서 나리타로, 나리타에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수도인 타히티섬 파페에테이 파아공항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경비행기를 타고 50분 정도를 날아가야 보라보라 섬의 모투무트에 있는 보라보라공항 활주로에 내릴 수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그림 같은 섬에 도착하는 데 꼬박 하루면 된다니- 마음이 마구 일렁이다가, 22시간의 비행은 실제 비행시간일 뿐이며 집에서 공항까지 가는 길, 경유하는 동안의 기다림-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그 고단함은 비행시간의 두 배, 세 배가 될 것임을 알기에 또 쉽게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어느덧 30대 중반. 판타지는 어릴 때 봤던 것보다 더 화려하고 유려한 솜씨로 내게 손을 뻗지만, 이제 웬만한 것에는 매혹당하지 않는다. 제아무리 동화 속 한 장면 같아도 그것은 이미지일 뿐, 내가 동화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깐 다녀오고 마는 '허니문 여행지' 보라보라 섬보다, 저자가 오래 살며 쓴 '동네'로서의 보라보라 섬이 더 좋았다. 그림 같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도 인터넷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약하지만 나의 오늘과 그녀의 오늘에 연결지점을 찾은 것도 같았다.
산다는 것은, 늘 기대와 다르다. 서른이 되면 영화감독이 되어 있을 거라던 나의 기대는 스무 살을 갓 넘겼을 때 이미 버려졌다. 대신 삶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선물해주기도 했다. 이제는 지구를 구하는 것처럼 반짝거리는 일이 아니어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안다. 하루 종일 서로 마주 앉는 일이 없어도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은 마음보다 날이 어두워지면 그 사람이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더 진하다는 것도.
그녀 덕분에, 그녀가 써 준 이 책 한 권 덕분에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해변을 맨발로 산책했다.
낯선 곳에 간다고, 어쩌면 생애 단 한 번의 여행일지 모른다며 쇼핑한 (평소에는 절대 입을 리 없는) 화려한 비치드레스 차림이 아니라, 제일 손이 자주 가는 박시한 티셔츠 차림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곳으로 보내줄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