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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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 처한 환경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해 나간다. 이는 '어느 정도로 스스로를 주체로 인식하는가'와 관련되어 있으며, 또 '얼마나 능동적으로 스스로의 삶을 구성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걸리버 여행기>를 읽으며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생각했다.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오늘이라서, 익숙한 타자들이라서 생각해 볼 일이 없었던 타자들이 새삼스럽게 부각된 것이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주인공 걸리버가 네 번의 항해를 통해 겪는 이야기다. 걸리버가 진술하고 있는 그의 여행 체험은 그것이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음을 말해준다. 소인국 릴리펏과 거인국에서는 크기의 대조를 통해서 인간의 취약함, 혹은 문화의 상대성을 체험했다. 나는 섬 라퓨타와 몇몇 나라들에서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느꼈다. 또 말이 지배하고 있는 후이늠국에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데, 후이늠국에서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걸리버의 행동은 이러한 여행들이 그의 삶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알려져 있다시피, <걸리버 여행기>에서 걸리버가 겪은 모험의 세계는 작가 스위프트가 자신이 목격한 18세기 영국 사회의 부패를, 그리고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성의 한계를 풍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한 세계다. 스위프트는 이러한 사회 풍자적 면모를 꽤 직접적으로 제시해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스스로의 어리석음(혹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부패와 타락)과 직면하도록 한다. 스위프트의 날카로운 시선 앞에 선 나는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던 스스로의 치부를 보도록 강요당한다. 걸리버 앞에 놓인 극단적인 상황 설정 앞에서 '나였다면...?'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릴리펏인들에게 신체적, 도덕적 우월감을 느꼈던 순간들이나 거인국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어떻게든 드러내 보이려고 하는 순간들, 그것은 단지 걸리버가 만나는 존재들의 크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걸리버는 그 사이에서 주체에서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와 만나고, 그들의 문화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걸리버의 노력은 발전적이다. 차이로서의 문화, 특히 집단 정체성 안에서 그것은 '진보'에 대한 성찰적 자세를 의미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걸리버는 새로운 세계를 마주할 때마다 적잖이 당황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항해하기를 원한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도 커져만 가고, 걸리버는 이상하리만큼의 광기도 내비치게 되었지만 그러한 과정은 우리가 수긍할만한 어떤 논리를 가지고 있음에 분명하다. (그리고 걸리버는 분명히 보다 주체적인 인간으로 성장했다)

세상은 더욱 복잡해져만 가고, 우리는 타인과 분리되어 살 수 없다. 그러므로 걸리버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때마다 그랬듯, 진실되고 열린 자세로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마 우리는- 누구를 맞이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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