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지만 역사는 내게 진부한 것이자 고리타분한 것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것이 정규과정을 통해 ‘과목’으로 만난 역사는 외울 것 투성이였기 때문이다. 독립투쟁단체의 이름과 주요 활동, 이동 경로를 외우다가 역시 역사는 안되겠어, 하고 책을 탁 덮었던 어느 날이 기억난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일제 강점기에 외울 게 없다면 그 역사는 비겁의 역사 아니던가. 고작 몇 개의 단체와 몇몇의 사람만이 주권 회복을 위해 애썼더라면, 그래서 그 시기의 문제들이 쉬웠더라면 나는 또 다른 이유로 역사를 포기하지 않았을까? 각자의 핑계 뒤에 숨어 앞으로 나서지 않았던 선조에게 적잖이 실망했을 테니까.
이 책 <역사의 쓸모>가 좋았던 지점은 여느 역사서들이 그러하듯 ‘그때, 거기’를 이야기하지 않고,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대-하는 것은 오늘의 우리에게 지식으로 담길지언정 우리의 마음을 흔들지는 못한다. 저자는 ‘그때, 거기’에 있었던 일이 ‘지금, 여기’를 살고있는 우리에게 어떻게 와 닿을 수 있는지, 그래서 우리 삶을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100년 전, 1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도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비슷한 위기를 겪고, 또 극복해내더군요. 역사는 제게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어주고,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길을 걸었는지, 또 그들의 선택이 역사에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를 생각해보면 비로소 제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6쪽)
폐족이 되어 가문이 몰락했을 때도, 끊임없이 읽고 썼던 정약용은 ‘만일 자신이 지금의 생각을 남기지 않는다면 후세 사람들은 형조에 있는 죄목만 보고 자신을 죄인 정약용으로 기억할 것(본문 중에서, 75쪽)’을 알았다. 지금은 죄인의 입장이지만 역사는 자신을 그렇게 기억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객관적이면서 날카로운 자기 성찰과 역사에 대한 인식이 오늘의 그를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로 만들었다. 정약용이 자식들에게 당부했다는 말에 밑줄을 그으며 오늘의 나를 돌아본다. ‘하늘의 이치는 돌고 도는 것이라서, 한번 쓰러졌다 하여 결코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본문 중에서, 79쪽)‘라는 문장이 따뜻하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