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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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에는 L과 L2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주민권인 L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L, 또는 주민으로 불린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과 타운이 필요로 하는 전문 지식 혹은 기술을 가진 이들이다. 미성년자는 주민의 자녀이거나 주민인 법정후견인이 보중하는 경우 주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주민 자격은 갖추지 못했지만 범죄 이력이 없고 간단한 자격 심사와 건강 검사를 통과하면 L2 체류권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체류권과 같은 이름인 L2로 불리며 2년 동안 타운에서 살 수 있다. 그것뿐이다. 일단 2년은 쫓겨날 걱정 없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지만 L2를 원하는 일자리는 대부분 건설 현장, 물류 창고, 청소업체같이 힘들고 보수가 적은 곳들이다. (본문 중에서, 14-15쪽)

그리고 L2도 못 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하'라고 불렸다. L도 L2도 아닌, 마땅한 이름 하나 없는 이들. 사하맨션 주민이라서 사하인가 싶었는데, 꼭 사하맨션에 살지 않아도 사하라고 불렸다. 이 소설 <사하맨션>은 그들의 이야기다. 아무것도 아닌, 마땅한 이름도 없는 이들의 이야기.

대대로 양식을 주업으로 하는 어촌이었다는 이곳은 한 기업이 공격적으로 지자체와 협력을 하면서, 결국에는 도시를 인수하게 이르렀다. 거대한 기업인지, 국가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도시국가. 겉으로 보기에는 꽤나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결국 핵심 부품과 소모품, 폐기물들이 남은 공장과 다름없었다. '사하'들은 언젠가는 필요한 존재였는지도 모르지만, 더 이상은 아닌- 그러니까 타운에서 완전히 소외된 폐기물 같은 존재들이었다. 사회의 기본 복지인 주거나 노동, 교육, 의료 시스템에서도 완전히 밀려났다. '사하맨션'은 그런 이들이 숨어든, 함께 모여 버티는 곳이었다. 하지만 사하맨션의 공기가 마냥 축축하고 음침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조심스레 사하맨션에 문을 두드린 사람들을 절대적으로 환대하고, 여기서라면 괜찮을 거라며 안심하게 한다. 그것은 분명한 연대였다.

그들은 질문한다. 우리는 누굴까. 이렇게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면 뭐가 달라지지? 누가 알지? ... 무엇으로부터 화가 나고, 무엇으로부터 소외당한지도 모른 책 그들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 친다. 그럴수록 더 깊이 어딘가에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은, 사실 괜한 것이 아니다. '타운'이라 불리는 이 작은 도시국가는 '오늘, 여기'의 한국 사회와 많이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타운의 L2는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계약직 노동자를 생각하게 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은 나비 혁명, 낙태, 아이들의 돌봄 문제, 의료 문제 등의 이슈는 부러 눈 감고, 귀 닫지 않는 이상 계속된 이슈로 남아있다.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은 사하로 불리는 이들이 서로에게 '미안함'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작 사과를 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그리고 그들은 사과를 할 생각도, 아니 사과를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도입부가 무척이나 강렬했으나, 이야기 전반은 사실 도입부만큼 강렬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읽는 동안 '사하맨션'에 익숙해진 탓일 테고, 어느 특정 인물의 서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사하맨션에 살고 있는 여러 인물들을 병렬로 나열해두어서 나도 모르게 어느 정도의 거리두기가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만큼은 생생하게도 남았다. 모든 것이 그 장면으로 귀결되었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이들이 <설국열차>를 떠올린 것은 '디스토피아'를 다루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작가의 다른 소설인 <82년생 김지영>이 좋았던 이유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소설이 다 해주어서라고 생각했는데 <사하맨션>까지 읽고 나니 생각이 조금 바뀐다. 나는 작가가 소설을 통해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들에 동의한다. 물론 그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동시대 작가가 '오늘, 여기'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이 책을 초판 1쇄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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