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의 꽃 - 2019년 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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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를 읽었을 때, 이미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야기에 아주 오랫동안 빠져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이지 오랫동안- 아주 천천히 이 소설을 읽었다. 가독성이 떨어진다거나 재미가 없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었다. 햄버거를 먹듯 우걱우걱 씹어 삼키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내게 이 책은, 실로 오랜만에 만난 잘 차려진 정찬이었다. (해서 리뷰도 정말 잘 쓰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문장을 다듬어 봐도 이 책의 기운을, 나의 감정을 다 전하기가 어렵다. 으윽!)

 

소설 <독의 꽃>이 뿜어내는 분위기는 기묘하다. 드라이아이스가 낮게 깔리고 있는듯한 기분이랄까. 특별한 향도, 형체도 없었지만 분명 그것은 거기에 있었다. 아무리 무심해지려고 해도 무심해지지 못했다. 몽구는 그런 아이였다. 태어날때부터 어딘지 좀 이상했던 몽구는 어머니의 약과 아버지의 독을 매번 한번에 삼켜야 했다. 처음에는 그런 몽구에게 집중했다. 그 애가 안타까웠고, 섬짓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꾸 눈이 가는 아이였다. 그런데 읽어나갈수록 다른 게 보였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인생의 아이러니’같은 것.

 

세상 모든 것은 사랑을 만나면 약이 되고 원한을 만나면 독이 된다.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우리의 하루하루는 독과 약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서로 대립된 위치에 있는 것 같은 독과 약이 어느 지점에서는 서로 대체되는 역설적 관계에 있다니. 그 덤덤하고 절제된 문장들에 정신이 혼미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늘 무서웠지. 세상도 무서웠어. 이 세상에 독이 아닌 게 없거든. 살아남으려면 자기만의 독을 가지고서 세상과 싸워야 해. 하지만 ‘독’에 대항해서 우리를 지키게 하는 ‘약’도 얼마든지 있어. 독이 약이 되고 약이 독이 되는 거야. 너는 늘 두통에 시달리느라 거기에 신경이 집중되어 있지.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한 순간도 멍하니 보내는 일이 없이 항상 깨어 있는 거야. 네 두통은 너를 마비시키지 않고 각성 상태에 머물러 있게 하는 독이자 약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이 세상 모든 것은 사랑을 만나면 약이 되고 원한을 만나면 독이 돼.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우리의 하루하루는 독과 약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이지. (본문 중에서, 198-199쪽)

 

몽구의 이야기지만, 포커스가 종종 다른 곳에 맞춰지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인물과 인물 사이의 구분히 모호해지는 지점이 오기도 하고, 다른 인물이 그에게 겹쳐 보이기도 한다.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 사이사이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독과 약은 ‘선과 악’, ‘생과 사‘의 이미지와 중첩되며 대립과 해체에 대한 상징의 칼날을 날카롭게 한다.

 

정신을 놓고 읽다가는 매 페이지를 접을 것 같아서, 진짜 좋았던 페이지만 접었는데도 꽤 많은 페이지가 접혔다. 덮을때쯤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가 떠오르기도 했다. 왜 꽃일까,에 대해서는 한참 고민했는데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니 단번에 무릎이 탁, 쳐졌다.

 

이 책이 너무 좋아서, 조금 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에 리뷰를 ‘잘’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더 다듬으면, 좀 더 좋은 글을 남기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그런데 그렇게 썼다, 지웠다 하는 사이 많은 것들이 무뎌졌다. 책 속의 문장들이 시퍼렇게 나를 쳐다본다. 왠지모르게 이 글이 부끄럽다. 이럴거면 빨리 떨쳐버리는 게 나았겠어, 싶다. (이제서야)

 

“인생이 뭔지 한마디로 말할 수 없겠지만, 이런 말은 할 수 있지. 인생의 매 순간은 독과 약 사이의 망설임이야. 망설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오래 주저하고 머뭇거려서는 안돼. 어느 순간 약은 독이 되어버리니까.“(본문 중에서,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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