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로
인한 고민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사회생활을 하며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동료, 선후배, 직장상사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처신을 해야 원하는 것을 이뤄낼 수 있는지, 어떤 사람을 사귀어야 하고 또 어떤 사람을 멀리해야 할지- 어떻게 하면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지 끝없이 고민하게 된다. 사실 이 고민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고민의 주체인 ‘내’가 각기
다르고, 나와 부딪히는 ‘상대’가 (또 상황이)
시시각각 변한다. 그러므로 어제 통했던 방식이 오늘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어제는 전혀 통하지 않았던 방법이 오늘은
통할수도 있다.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일이지만, 고민을 계속하다보면 몇가지 ‘늘’ 통하는 방법론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 책 <베이징대
처세수업>에는 늘 통하는 인간관계의 방법론들이 실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운명을 지배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의 제약을 받는다면, 그것은 운명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다.
책이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보면, 모든 게 내 탓인것만 같다. 세상은 공평하게 기회를 주고 있는데, 나만 그 기회를 잡지
못해 이렇게 힘든 오늘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몇 장 더 읽다보면, 저자가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인용한 이유가 우리가 처음
생각한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책은 불공평과 불평등은 원래 생활의 본질적 모습이자 대자연의 규칙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용된 이야기가 재미있다. 어떤 현자가 불공평을 이야기하는 청년에게
‘공평’을 써보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공평이라는 두 글자만 봐도 앞 글자는 총 4획, 뒷 글자는 5획이 필요하지 않은가.
‘공평’이라는 글자를 쓰는 데에만도 공평하지가 않은데, 어떻게 ‘공평’을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겠나.”(45쪽) 개인적으로는 깔깔거렸던
대목이었다.)
사실 세상의 불평등을 인정하고 나면, 관계의 많은 부분들이 해소된다. 나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시도가 내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와 상대의 관계에서 내 위치는 어디인지, 그 사람의 위치는 어디인지 가늠하고 나면-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지도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책은 그것을, 너무도 당연해서 가끔은 잊고 사는 것들을 깨우치게 돕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 한권으로 모든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썼듯, 모두에게- 또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처세법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완벽한 순금도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으며- 완벽한 처세법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