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내 얼굴 슬로북 Slow Book 4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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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에세이는 한 줌의 '눈'같다고 생각한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다리면 손바닥 위로 뭔가가 쌓이기는 하는데 그러기 무섭게 녹아버리고 만다. 그런 이유로 에세이를 잘 읽지 않는다. '수필'이라는 말을 두고 굳이 '에세이'라 쓴 글은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어쩐지 손이 가는 책이 있다. 이 책 <웃어라, 내 얼굴>도 그랬다. 받아드는 순간, 담겨있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게 설령 한순간에 녹아버릴 한 줌의 싸락눈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열었다.

 

김종광이라는 이름은 낯설었다. 20년 차 소설가라는데, 책 꽤나 읽는다고 스스로 생각하던 나는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뭔가 좀 짠해오기도 했다. 책에는 그런 순간들이 숨김없이 적혔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일이지만- 포털에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니 무려 51권의 책이 쏟아진다. 그렇게 꾸준히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해 온 그가, 대학에서 강의도 하는 그가 껍데기를 다 벗어버리고 내면의 심란함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게 대단하다 생각되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바람을 얘기하자면, 올해에도 한 달에 200만 원 정도는 벌 수 있는 일거리가(원고 청탁이) 꾸준히 들어와주고, 한두 권의 책을 출판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아가 그 책을 보게 될 소수의 독자에게 의미 있는 독서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간단히 말해서 소설가로 직업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본문 중에서, 204쪽)

한때 영화인으로 살기를 꿈꾸었고, 영화판에 짧게나마 몸담았던 적 있던 나는 바로 그 문제, 영화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위협감에 영화를 내려놓았다. 엄청난 고민과 결심 끝에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몇 달간(아니 사실은, 거의 일 년 반 동안) 급여가 나오지 않았고,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던 나는 이러다가 굶어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영화판에서 나와버렸다. 그러다 우연찮은 기회에(사실은 아주 좋았던 기회에) 영화과에서 시간 강의를 하게 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영화를 계속해보라고 말해야 하지만 말할 수 없는 이상한 처지에 놓이게도 되었었다. 그 묘했던 아이러니의 순간들을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마주하니 입안이 텁텁했다.

하지만 그 텁텁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금세 웃었고, 또 짠해 하다가- 아휴, 하고 같이 한숨 쉬고 에이 뭘, 하고 툴툴 털어내 버렸다. '왜 꼭 우리는 이기려고만 하는가. 누구는 이기고 누구는 져야 하는가. 다 같이 승리할 수는 없는가.'하는 문제 제기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 '온라인 게임에는 있다.'하는 다음 문장에서 푸핰, 그렇지! 하고 웃어버리는 식이었다. 하지만 분명 그 웃음 뒤에는 무언가가 있다. 가족의 생계를 고민해야 하는 중년의 가장이 있고, 내년에도 계속 쓸 수 있을까-하는 20년 차 소설가의 고민이 있다. 그래, 그러니까 여기에는 '실존'의 문제가 담겨있었다.

책을 덮으면서 생각한다. 그래 싸락눈도 꾹꾹 힘을 모아 뭉치면 단단해지지, 나는 왜 이제까지 그것이 그냥 녹아 없어지도록 보고만 있었던 걸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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