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라로 간 소신
이낙진 지음 / 지식과감성#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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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오랜만에 수필집을 읽었다. 수필이라 하면 어딘지 모르게 가볍고, 또 지나치게 감상적인 느낌이라 주저하게 되었었는데 이 책 <달나라로 간 소신>을 읽으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것이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 수필은 본디 붓 가는 대로 쓴 글이 아니라고 한다. 수필은 철학의 세계관과 소설의 구체성 사이에 존재하는 장르다. 수필은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모아 세계에 대한 태도를 표명하기 때문에 이야기들은 단편적이지만 그것은 구체적이고 이 관념적이라고 했다. 또한 단편적인 혹은 삽화적인 이야기들을 통해서 세계에 대한 태도를 표명하기에 비체계적이고 반체제적이지만 그 이야기들에는 진솔한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도 했다. (좋은 수필을, 좀 더 찾아 읽어보고 싶어지는 이유다)

 

이 책 <달나라로 간 소신>은 두 번 쓰였다. 10여 년 전에 한 번, 그리고 최근에 다시 한번. 가득 채운 네모 한 칸이 10여 년 전에 쓰인 글의 표식이고, 최근에 쓴 글 앞에는 가득 채운 네모 두 칸이 붙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 다소 감상적이거나 동화 같다 생각했던 부분도 네모 두 칸의 섹션으로 넘어오면서는 사그라들었다. 그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을 때, 나는 은이와 윤이(그의 딸들 이름이다) 또래였다가 그의 동료쯤 되었다가 했다. (실제로는 그들 사이 중간 어디쯤이다만)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아빠가 젊은 날 했을 고민들을 매만져보니 뭔가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그의 글쓰기에 항상 '읽기'의 과정이 녹아있다는 점이었다. 어떤 소소한 일상의 구체적 사건, 아주 은밀한 감정의 서술에도 읽기가 따라붙었다. '읽는 인간, 쓰는 존재'라는 어느 출판사의 문구를 참 좋아하는데- 그것이 실천되면 이런 모양새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쓰는 일은 읽기를 딛고 일어선다 했다. 정말이지 치열하게 읽다 보면 쓰고 싶어진다. 그런 과정들이 글에 자연스럽게 녹아, 햇빛이 되었고 구름이 되었고 무지개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방식의 글쓰기라, 탐이 나기도 했다. 그가 해왔던 만큼 읽고 쓴다면 언젠가 내게도 그런 빛이 자연스레 새어 나올까, 궁금했다.

삽시간에 너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다. 아직 그를 잘 모르는데, 그를 너무 잘 알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게 수필의 매력이려나- 어쨌거나, 읽고 쓰기를 계속해야 한다는 데에 작은 동력기를  하나 더 달고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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