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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페미니즘
코트니 서머스 외 지음, 켈리 젠슨 엮음, 박다솜 옮김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나는 페미니스트다. 정확히는 아이를 임신하면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대체로 평등하다 생각하며 살았던 나의 세상은 임신과 동시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버렸다. 나는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아이가 무서운 속도로 제 몸을 키워가고 있는 만큼 나는 '엄마'라는 사회적 틀 속으로 갇히고 있었다.
'엄마니까 이래야지'하는 것들은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했다. 많은 것들을(아니, 사실은 거의 모든 것들을) 엄마라는 이름과 맞바꾸게 했다. 그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마치 해가 뜨면 언젠가는 져야 하지 않겠냐는 듯한 말투와 시선들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렇게 나는 이제껏 쌓아온 많은 것들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내 두 손에는 더 높이 쌓아올릴 블록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조용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지금 내게 남은 선택지는 이것밖에 없다 생각하면서도, 왜 이 모든 희생이 여자에게만 강요되는지에 대해 끝없이 화가 났다. 그리고, 딸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라도- 적어도 이 아이가 나와 같은 절망감과 좌절감만은 느끼지 않기를 바라며,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페미니스트가 되었다고 해서 내 삶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다(다행히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육아가 메인인 삶을 살고 있다). 흔히들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아주 급진적인, 혹은 배타적인 어떤 것을 떠올리는데 사실 페미니즘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