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청년 파산 - 성실하게 망해버린 사람들
박기태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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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에 관한 열정적 다큐멘터리를 한편 본 듯 하다. 생생하게 재구성해낸 에피소드들이 장점이지만, 부채를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듯한 관점이 아쉽다. 경제학적 사고에 오류가 많은 것도 아쉽다. 그럼에도 마지막 장의 제도 개선안은 탁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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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청년 파산 - 성실하게 망해버린 사람들
박기태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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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산 전반에 관심이 많은 경제학자이다. 이 책을 통해 한국 고유의 파산 제도와 이를 둘러싼 조건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파산 제도 개선 제안을 담은 마지막 장은 탁월하다. 현장에서 현 제도와 씨름해 본 사람만이 장단점을 이렇게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의 약점은 채무자에 대한 공감으로 인해 문제 진단과 처방이 감정적으로 치우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서평은 정책입안자가 책의 제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짚어야 할 지점들을 연구자의 시각에서 도출하는 데 집중한다.

 

먼저 큰 그림부터 짚자. 책이 그리는 빚의 어두운 얼굴은 빚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빚을 둘러싼 제도적 환경느슨한 대출 심사, 고금리 대출, 폭력적 추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는 이 둘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단이 종종 빚 일반에 대한 부정으로 미끄러지고, 논리적 비약이나 사실 왜곡으로 이어지는 대목이 여러 군데 눈에 띈다.

 

일례로 저자는 대안적 금융 시스템을 모색하며 이슬람 금융에는 이자가 없다는 논지를 편다. 형식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이슬람법은 리바(riba), 즉 이자를 금지한다. 그러나 실질은 다르다. 무라바하(murabaha)처럼 원가에 마진을 얹어 분할 상환받는 구조는 경제적으로 이자와 등가이며, 이슬람 금융 연구자들 스스로 이를 인정한다 (El-Gamal, 2006). 채권자가 돈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에 대한 보상을 포기하는 금융 시스템은, 종교의 영향력이 아무리 강한 사회라 해도 지속되기 어렵다. 이름을 바꿔 부른다고 이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예시. 이자와 상환 의무의 신성시가 근대 자본주의의 발명품이라는 저자의 관점은 틀렸거나 과장됐다. '빚은 갚아야 한다'는 도덕률은 함무라비 법전을 비롯한 고대의 법과 종교 규범에 이미 깊이 새겨져 있다. 오히려 저자가 제시하는 역사적 사례들이야말로 빚과 그 도덕률이 중세 이전부터 사회에 필수적이었다는 반례로 보인다. 나는 좀 더 균형 잡힌 해석을 선호한다. 근대 자본주의의 발명품은 상환의 신성시가 아니라 그 반대, 즉 면책의 제도화다. 법인에는 유한책임(limited liability), 개인에는 파산 면책을 부여함으로써, 통치자의 시혜에 의존하던 일회성 탕감 (대희년 jubilee 이라든지) 을 예측 가능한 제도로 바꿔 놓은 것이다.

 

저자가 빚에 대해 부정적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은 심정적으로 공감이 간다. 책 곳곳에 생생히 나오는 사례들로 보아, 개인파산 전문 변호사인 저자는 빚의 구덩이에 빠진 사람들을 수없이 구조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그리고 빚은 단순한 '필요악'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번영과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개인 수준에서는 조달하기 어려운 자본 수요를 충족시킴으로써, 모험가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를 장려하며 혁신을 불러일으킨 빚의 순기능에 대해 책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책은 개인 파산이 경제적으로 사회 전반에 도움이 된다는 논지를 펼친다 ("오히려 이들이 경제적으로 재기해서 다시 납세와 소비의 주체로 돌아오는 것이 사회 전체의 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저자가 이 주장의 근거로 경제학 논문을 인용하지는 않지만, 다행히 실증연구는 이를 뒷받침한다 (일례로 Dobbie and Song, 20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쪽의 근거만을 바탕으로 파산을 장려하고 파산 접근을 더 쉽게 만드는 식의 정책 제언을 하는 것은 무리다. 정반대 방향의 연구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파산 접근을 어렵게 만들면 이자율은 낮아진다! (Gross et al., 2021) 은행은 바보가 아니다. 파산 제도가 엄격해져 은행의 대출 회수율이 높아지면, 대출 경쟁에 놓인 은행은 위험에 대한 보상을, 즉 이자를 줄인다. 정책의 균형 효과equilibrium effect를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놀랍지 않은 결과이지만, 저자는 아쉽게도 이런 사고방식을 보여 주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개인의 회생과 파산이 증가한다고 해서 일반 서민의 이자율에 미칠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는 것이다" [144]). 이외에도 저자는 경제학 용어와 예시를 곳곳에 차용하지만 논리의 흐름은 종종 편파적이고 온전하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으며 그런 오류들이 책의 신뢰도를 약화시켰다.

 

그럼에도 개인 파산 제도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분명히 한국의 파산 환경은 이전과 달라지고 있고 (일례로 주식·코인 투자 실패 채무자의 변제액 산정 기준을 완화한 2022년 서울회생법원의 실무준칙 개정이라든지), 이런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는 귀중하다. 책의 1장과 2장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다만 금융, 채무, 파산의 역사를 가볍게 다루는 3장 중반부는 다소 루즈하다. 금융사에 대한 지식이 약간 있다면 특별히 새로운 인사이트가 있진 않다. 반면 파산 제도 개선 제안을 담은 5장은 앞서 말한 대로 탁월하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해당 분야에 관심이 없는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제도 변화에 따르는 유인과 행동 변화까지 예측한 실질적 제언을 담았고, 경제학적 사고로도 엄밀하다.

 

(나같이) 비판은 쉽다. 그렇다면 내 정책 제안은 무엇인가? 저자의 5장 제언에 동의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파산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해서 파산 제도만 손보는 것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과도한 채무 누적을 선제적으로 방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즉 전반적인 가계 부채 정책과 동시에 움직여야지, 채무 경로의 마지막 관문인 파산 제도만 손본다고 파산이 쉽사리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가계 부채 정책을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정렬시켜야 한다. 한국은 미국식 부채·파산 레짐 (부채를 적극 장려하고 사회부조는 미약하지만 파산이 용이한 체제) 과 유럽식 레짐 (부채를 장려하지 않고, 주택 관련 가계 부채 수준은 높으나 사회부조가 비교적 튼튼하며, 대신 파산 신청이 어려운 체제) 중 어느 쪽을 지향할 것인가? 가계 부채가 높고 사회 안전망이 약한 한국 실정에는 파산을 용이하게 만드는 미국식 제도가 맞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부채와 파산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강한 한국에서 단순히 파산을 용이하게 만든다고 개정된 파산 제도의 이용률이 높아지리라 예측하기도 어렵다. 또한 파산을 쉽게 만들수록 채무자의 모럴 해저드가 늘어나고 (도박이나 투기성 투자에 대한 대출 수요가 증가하거나 혹은 갚을 수 있지만 파산을 택함), 전반적인 이자율이 높아지며 (즉 이자 비용이 성실한 채무자에게 전가되고, 고비용으로 인해 창업자가 채무를 조달하기 어려워질 수 있음), 마지막으로 파산 케이스 증가로 인해 법원 등 행정 실무자의 부담도 가중되며 법원 규모를 늘려야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trade-off를 저울질하며 진행해야 하는 것이 정책 제안이며, 이러한 trade-off를 측정하고 비교하는 것이 경제학 연구의 핵심 주제이다.

 

마지막으로, 앞서 말한 거시적 제언과는 별개로, 실무 연구자로서 의견도 있다. 이 모든 담론에 앞서 증거 기반 연구가 절실하다. 한국 경제학계에서 한국의 개인파산·회생에 대한 실증 연구는 미미하다. 행정 미시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최근 세계 경제학의 트렌드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무엇보다도 면책 결정 이후 개개인의 노동 공급이나 소득 경로가 어떻게 변하는지, 개인이 면책에 대해 어떠한 심리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지, 파산 신청 비용 (변호사 선임비 등) 이 파산 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실직·이혼·장애 등의 부정적 충격이 파산 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앞서 말한 제안들을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하다. 내가 나열한 이 주제들 모두 세계 경제학계에서는 10년 전부터 활발히 연구되어 오며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지만, 한국은 그런 연구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 이유로 두 가지가 떠오른다. 첫째, 공개된 미시 데이터가 부족하다. 둘째, 연구자 입장에서 이런 연구를 정책입안자나 법원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리라는 확신이 없다. 따라서 내 마지막 조언은 다음과 같다. 법원이 (익명화된) 데이터를 적극 공개하고, 좁은 법조계 서클을 넘어 학제 간 연구, 타 분야 연구자와의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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