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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사 강우석
오동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책은 내가 의혹 삼았던 바로 그 시점을 짚고 있다.
실미도, 과연 천만을 동원할 작품성이 있는가.
영화를 본 후, 실망스럽다고 투덜거렸지만,
사실 나는 실미도를 세번이나 봤다.
게다가 그중에 두번은 내돈주고 봤다 ; 부모님과 함께 보기 위해서, 그리고 이건 꼭 봐야겠노라는 남자친구와 함께.
그 와중에 무척 놀란 건,
부모님이 "굉장히 잘 만든 영화"라며 대폭 만족하시어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에 열을 올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굉장히". 누가 부탁한 것도 아닌데.
그 사심없는 과정을 직접 동행하며
나는 강우석이 실로 대단한 감독이라는 사실을 체험해야 했다.
뛰어난 작품성으로 대중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정확하게는 평론가들과 마니아들을 사로잡고자 하는 마음은 감독들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일 것.
하지만 강우석은 개인의 욕심에 앞서 '사천만 국민'의 보편타당성을 계산했다.
부모님을 보며 나도 인정하고 말았다. 이거보다 어렵게 만들면 40대 50대, 거기에 80대를 극장에 끌어다 앉히고 그들에게 '정말 볼만한 영화였다'라는 말을 끄집어내긴 어려웠을 거라는 걸.
그러니깐 일부(평론가와 마니아+젊은층)의 만족이 아닌 대국민적 만족을 목표로 했다? 감독 개인의 작품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 철저한 흥행 대차대조표에는 정말 혀가 내둘러졌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속단해도 되나? 내가 강우석 감독을 잘 아는것도 아닌데.
책 어딘가쯤에서 오동진은 그 특유의 '술술 읽혀지는 글빨' 로 내 의혹에 단변해주고 있었다. (무척 기뻤다)
그 오지랍 넓은 글빨은 나의 내심만 해결해줬을 것 같지는 않다.
요리조리 다관점으로 쓰여졌고(평론가의 관점, 주변인들의 관점, 안티 강우석인 사람들의 관점, 일반 대중의 관점, 오동진의 관점 모두 들어있다)
200페이지 어딘가에는 제각기 취향 다른 독자들일지라도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곳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오동진이 쓸 수 밖에 없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며 기대하는 바가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는 아니므로.
강우석에게는 강우석에 어울리는 해석이 필요하므로.
감독으로의 강우석, 작품으로 말하는 강우석, 이런 일차적 잣대가 아니라
영화계에서의 강우석,을 말해야 한다. 작품만으로 감독을 평가하자는 욕구를 휘두르기에는 그의 족적이 이미 영화계 곳곳에 있다.
오동진은 우리가 너무 잘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잘못 알고 있는,
혹은 너무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강우석이라는 인물에 대해,
그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에너지에 대해 한가지 읽기 쉬운 독해법을 제시해줬다.
평이하다고 말한다면 그뿐이지만 나는 이미 평이한 실미도에 감탄해버린거슬...
"나는 오늘 강우석이라는 주식이 가진 요소요소에 대해 오동진식 독해를 읽었다.
그리고 다음 행보는 이 독해를 바탕으로 배팅하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