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는 얼마나 여행을 다녔을까?

6월 중간쯤 되니 '휴가 계획하셨어요?' '이번 여름휴가엔 어디 가?'라는 질문을 많이 듣게 된다.

사실 나는 여름을 맞이하여 특별히 준비한 여행이 없다.

오늘만 봐도 수술을 무사히 마친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컨디션을 살펴야 하고 인도 출장을 다녀오는 남편을 맞이해야 한다.

지난주 내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로 가득 찼었다. 일상이 엉킨 실타래라고 보면, 우리는 매일 조금씩 풀어가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푸념으로 시간을 버릴 틈도 없이 평소처럼 한 단계씩 잘 해치워 나가자며, 나 자신을 다독이며 나만의 특유의 씩씩한 에너지로 하루를 만들어 나갔다. 흘러가는 날짜와 시계는 단순히 확인하는 숫자일 뿐, 아무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엉킨 실타래 한 가닥을 풀어보겠다며 고군분투한 내 모습을 화장실에 양치하러 들어간 순간에야 마주했다. 핏발이 터진 나의 눈알을 발견했다. 안약이 있는지 확인해 보려 가방을 열었더니 두서없는 메모가 적힌 수첩들만 가득했다. 나름 분류해 놓은 작은 집게들이 물려있는 수첩들을 꺼내 서랍과 책장에 잘 구분해 놓았다. 그래야 그 다음 단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으니까. 수첩들을 꺼내고 보니 그제서야 안약이 보였다.

이렇게 적어 보니,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 싶은데 또 막상 나를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결국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지내고 있으니까.

뭐 이런 게 일상이라면, 여행은 실타래를 잠시 잡고 있는 작은 집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의 이유>는 워낙 유명한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다. 읽고 보니 여행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완벽한 계획을 바탕으로 행복한 사진들을 연출하는 여행을 선호하는 나에게는 조금은 틈을 주었다고나 할까?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그래, 맞다. 계획을 철저히 했다고 해서 그 계획대로 움직인 여행은 없었다. 항상 변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수히 떠났던 국내 여행은 물론이고 내 인생에서 야심 찼던 해외여행들을 돌이켜보면 그때마다 좌충우돌 추억이 가득했다. 친구들과 다녀왔던 일본이나 싱가폴,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신혼여행으로 갔던 스페인, 남편과 1000일 기념으로 떠났던 이탈리아, 대가족의 오키나와, 미국, 푸꾸옥. 이렇게 나열해 보니 나도 꽤 다니긴 했다.

언어로 옮겨진 후에야 비로소 그것은 '생각'이 되어 유통된다는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지난 과거가 묻혀 잊혀지기만 하는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 내가 '한 때 제 곁에 머문 것들의 가치를 재해석하면서 성장하는 삶'을 실천하고 싶어 하지 않았는가! (by. 나의 브런치 작가소개)

아무쪼록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엉킨 실타래가 한 바퀴 돌아 더 엉켰다. 하고 싶은 것들이 또 생기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하루하루 살다 보면 우리의 엉킨 실타래들을 결국 언젠가는 풀어내는 순간이 잠시 올 수도 있다.

다 풀어낸 실을 한 줄로 길게 늘어뜨릴 수 있겠지.

허나 그것은 죽음의 신호가 아닐까?

결국 우리는 엉킨 실타래를 풀어낼 수 없다. 무조건 엉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행'이란 단어가 주는 설렘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나만의 여행을 준비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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