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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디테일의 유령론 - 안미린 시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564
안미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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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림에서 꾸는 하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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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말들 아케이드 Arcade 13
백지은 지음 / 파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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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CRITSSAY’라는 단어가 표지에서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파란 아케이드 시리즈의 다른 평론집들은 표지에 ‘CRITICISM’이라 적혀 있기 때문이다. 크릿세이란 읽기(크리틱)’쓰기(에세이)’의 결합이자 읽기의 수행성으로 열린 쓰기”(9)라 할 수 있다.

 크릿세이인 만큼 수록된 글들이 길지 않으며 무엇보다 정말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문학 작품에 더불어 여러 시사적 이슈, 방송 프로그램, 정책 현안, 정치인들의 행태 등이 함께 비평의 대상으로 다루어지는 점 또한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전 저서들인 <독자 시점>이나 <건너는 걸음>에서 저자는 현상의 기저에 은폐되어 있는 기성 권위의 욕망과 폭력의 문제를 지적하고 무비판적으로 통용되는 관습의 당위성을 되물으며 비판적 각성을 촉구하곤 했는데, 이번 책에서는 그 범위가 더욱 넓어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논점을 흐림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경우를 예리하게 포착하는 저자의 강점이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독서의 즐거움을 더한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을 6개의 키워드로 추려내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여가며 몇 자 리뷰를 적어보고자 한다.


1. 신성화의 기만

 초반부에는 동물을 인간 중심의 의미화로 사고 체계에 포섭해온 관습이 지적되는데, 이것이 가능해진 한 원인이 전능자의 창안에 있다는 해석은 흥미롭다. 어쩌면 이는 신성화의 발명이라 해도 무관할 텐데, 그로 인해 인간도 신성시”(28)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동물 착취의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유사한 문제의식이 김숨 소설 분석에서도 발견된다. 남편은 이혼하자는 아내에게 구원의 당위성을 들먹이지만, 이러한 신성화는 실은 일방적 헌신과 의무를 요구하는 격하에 가까우므로 기만이라 할 수 있다. 실은 구원이 가능한 자로 아내를 격상시키는 것이 아니라(물론 격상도 대상화이고 폭력이다) 그 구원을 받아 마땅한 자기 자신을 신성화하는 것이다. 때문에 남편이 거론하는 그 당위성의 역방향은 결코 성립하지 않으며 아내의 경우에는 구원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애초에 그것은 위계의 문제이므로.


2. 불운 불행

 뒤이어 불운과 불행을 엄밀히 구분하며 소외계층이 왜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지를 정연하게 짚어낸다. 불평등에 관한 논의가 거론되지 않는다면 그게 정말 없어서가 아니라 불평등의 실질적인 영향을 받는 사회 구성원의 삶이 좀처럼 다루어지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53)이다. 더 나아가 저자는 이것이 민주주의의 약점일 수밖에 없음을 함께 지적한다.


 불행을 우연으로 치부하는 것이 어떻게 폭력성을 은폐하며 개인을 보호의 울타리 밖으로 내모는지가 치밀하게 사유되고 있는데, 특히 어느 한 개인에게 내재된 약점이 절대 불행의 귀속 사유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80)


 “우리 사회의 불행을 개인들 내부에 유폐하지 않고 외부 구조의 폭력을 환기할 수 있도록한다는 점에서 안보윤의 소설은 중요하게 거론된다. 죄책감이 윤리적 덕목으로서 어떻게 요청되는지를 함께 짚어낸다.


3. '중립'의 기만

 다소 길지만 중요한 대목이라 옮겨보기로 한다.

이 무거운 마음은, (사회 구성원의) 무지와 무심에 대한 하나의 태도이자, 그 자체로 불식간에 무지와 무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역할까지 하고 만다. 섣불리 다수의 책임을 규탄하는 계몽적인 태도나 다수를 무조건 가해자로 돌리는 손쉬운 태도 양쪽을 경계하면서도, 겉으로 중립을 가장한 무지와 무심이 실은 사회적 폭력의 일부 혹은 그 원인임을 깨닫고 기억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56)

 (입장 정립을 위해 다각도의 검토를 거치며 고민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중립은 아무 입장도 표명하지 않음으로써 아무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또 다른 의사표현이라는 점에서 허울 좋은 명목에 불과하다. 이렇듯 무지할뿐더러 무심하기까지 한 중립은 실은 동조로 기능할 때가 훨씬 많고, 그렇기에 사회적 폭력의 재생산에 일조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한편 3부의 제목은 무지한 무시의 말이다. 무시에서 무지가 비롯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지적하고 있는 것인데, 물론 그 역도 성립한다. 무지하니까 무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그 무지한 무시의 말이 이중적인 비하의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124쪽에서 실제 사례를 들어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4. 태만함의 대타항으로서 문학

 우선 저자가 문학적인 것문학이 될 수 없는 것에 대해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보자.


찬양이든 비판이든 오직 한 가지 의도, 그 의도만을 선포할 목적으로 쓰인 글을 라고 부를 수는 없다.”(115)

무엇에든 매몰된 인식으로는 말의 위의를 살릴 길이 없고, 말의 위의를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문학적인 것이다.”(117)

반성이라고는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비웃음을 당해도 창피함조차 없는 듯 보인다. 태만함에 대한 죄책감도 조롱에 대한 수치심도 없는 그런 비문학적인 사람들이 아무 데서나 활개 치며”(117)

 이러한 서술을 통해 편협함이 문학적인 것의 정반대에 놓여 있음이 분명히 암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 편협함은 다른 방식의 사유는 전혀 하지 않겠다는 오만함과 태만함에 근거해있다. 태만하기에 오만하기까지 한, 혹은 오만해서 태만한 태도는 절대 문학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문학의 반대말은 태만함이다. 이때 태만은 자기반성이나 쇄신이란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으면서 상투화된 권위의식에 영합해버린 낡아빠진 감각을 통칭한다.


 사유가 한 가지 방향으로 제한된 것만이 문제인가. 그렇게 고착된 사유 체계가 특정 계층의 사리사욕을 공고히 하는 데 복무하는 경우가 더 문제다. 문학은 그러한 욕망을 은폐하기 위해 계속하여 신성성과 권위를 부여받으며 전혀 문학적이지 않은 의도 아래 호명되고 또 호명된다.

에서는 문학적인 것이 반성, 부끄러움, 죄책감 등과 연결되는 감각임을 역으로 도출해낼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더 잘 부끄러워하며 더 적극적으로 반성하고 옳지 않은 일에는 정당하게 분노를 표하며 살아야 한다. 문학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삶을 살아갈 때의 신념과도 결코 유리되어서는 안 된다.


5. 웃음의 혐오학

 약자 조롱이 기본값이 되는 한국식 개그에 대해 언급하며 그것이 공모로서의 웃음’(공범 의식)이라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웃음을 주고받은 축이 합의한 관념 쪽에서 배제한 누군가가 있, 그때 웃지 않은 누군가가 모욕감을 느꼈다면, 그 배제는 혐오와 차별에 가까운 것”(136)이다. 이처럼 개그가 혐오와 차별을 재생산하는 기제로 기능한다면 그건 웃음이라는 동의를 통해 특정 관념에 면죄부를 덧씌워주기 때문인 것이다.


 때문에 어떤 개그가 내면화하고 있는 사회적 관념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파악하면서 경솔하게 동의해버리지 않는 태도가 요청된다. “웃음이 조성되는 경우 웃음보다 동의가 먼저 문제되어야 한다”(136)는 지적은 그래서 타당하다.


 또 우리는 정당한 분노나 요청의 표현이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경우를 자주 맞닥뜨리곤 한다. 공모하는 웃음(=혐오)이란 모든 것을 얼마나 쉽게 일축해버리는지. 특히나 어떤 문제를 지적하면 그 문제가 아니라 지적한 사람이 특별히 예민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이지 않은가.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정당한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갖은 모욕과 수모를 기꺼이 감수한 일이 있는 분들에게 특히 큰 위로가 될 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비평의 최종 지향은 결국 삶을 회복시키는 것에 있다는 믿음이 있는데, 그래서 내가 이 분의 비평을 특히 좋아해왔구나 새삼 깨닫기도 했다. 그리고 결코 수혜자로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저자처럼 질문해보자. 이게 웃긴가? 왜 웃지? 웃으면 안 되는 이야기 아닌가?

웃어버림으로써, 웃도록 유도함으로써 도대체 어떠한 배경과 맥락을 짓뭉개고 있는지(142) 수시로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뿌리 깊게 내재되어 있는 혐오의 습관은 진의를 고민하려 하지 않는 태만한 감각 구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6. ‘비평가로 살기

 저자는 비평 행위와 비평가를 구분한다. 비평 행위는 언어를 사용하는 모두가 이미 일상생활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하는 일이지만, 비평가로 살기 위해서는 비평가로서 살고 있다는 자의식”(250)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비평 대상에 대한 관심, 감상, 공부가 지속적으로 요구되고, 이렇게 촉발된 감각과 사유를 반드시 글로(글이 어렵다면 다른 무엇으로든)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산출)


 비평가는 두 단계의 삶을 살게 된다는 서술이 그래서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에 따르면 쓰는 행위를 통해 다시 경험하고, 더 잘 경험하게 되는 것이 비평가인 것이다. 과연 읽고 쓰는 과정에서 우리는 재창조된다.(251) 머리말에서 읽기(크릿)경험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었다면, 쓰기(세이)는 쓰기 행위가 끝난 뒤에 효과로서 당도할 주체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백지은의 평론을 읽을 때마다 통쾌함과 개운함을 느끼곤 한다. 간혹 어딘지 미심쩍은 기분에 휩싸일 때가 있는데, 어떤 현상을 지탱하고 있는 문제적인 내부 구조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그의 글을 읽으면 그 원인을 분명히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로를 받는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의 태도에 지지받는 경험은 참으로 값진 것이다. 나 또한 어떤 지지를 건네는 독서를 이어가야 할 것이고.


 그런 한편 더 제대로살고 싶어진다. 부끄러움이 없게 살겠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그건 불가능할뿐더러 기만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부끄러움도 죄책감도 더 잘 느끼고, 그걸 행동으로 분명히 책임져가면서 지금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을 무책임하게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글에는 정말로 그러한 힘이 있다.

 저자의 말대로 이 부끄러움과 분노는,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가 믿고 의지했던 문학에 관한 어떤 지독한 편견을 해체하는 데 들인 정당한 값이어야만”(78)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자 모두가, 당연하다고 승인되는 것들을 끊임없이 되물으며 각자의 삶에서 크릿세이를 실천해나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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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시 - 포스트휴먼 시대 시의 미래
공현진 외 지음 / 소명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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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 시대를 맞아 문학장은 어떻게 재편될 것인가. 문학의 유통과 소비 양상에서부터 문단 제도 변화 등에 관한 논의는 근 10년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리고 코로나가 급박하게 앞당긴 비대면 시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속화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 책의 가장 탁월한 점은 포스트휴먼 시대()’의 관계성을 (1)‘위기로 섣불리 재단하거나 (2)지나친 낙관주의적 전망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관점으로 접근할 때 간과할 수밖에 없는 맹점을 예리하게 포착한다는 데 있다. 포스트휴먼 시대를 맞아 먼저 반성적으로 고찰하고 사유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고전적인 논의들이 포스트휴먼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에게 닥친 위협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에 예각화되어 있었다면, 이 책은 '인간성'이 도대체 어떻게 조건 지어졌는지를 되물으며 그간 '주체'가 전유해온 권력과 위계의 문제를 폭로하고자 한다. 쉬운 예로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가장 고전적인 두려움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그러한 가정에는 인간의 우월성과 견고한 자아가 전제되어 있다는 점은 자명하다. 그러한 기저에 은폐되어 있는 인간중심주의우월주의를 탈피하는 것에서부터 포스트휴먼 담론이 사유되어야 함을 이 책은 강조하고 있다.

, ‘위협이 무엇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가 아니라 자동화된 사유 체계 내에서 인간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어보자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더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인공지능의 기술력이 아니라 인간의 폭주와 무절제이다.(이경수))

 

소통감정 이해가 오히려 중요시되어야 한다는 놀라운 진단은 성급한 해결 의지에 맞설 대안으로 제시된다. 인공지능과 인간 및 다른 종들이 어떻게 적절한 관계성을 맺어나갈 수 있을 것인지, 오히려 오늘날 시가 더욱 요구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아주 명쾌하게 제시한 이경수의 1부를 시작으로,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인간중심주의 및 타자와의 관계성에 대한 고찰과 반성적 시각들이 이어진다. 특히 '비주체'에 대한 폭넓은 사유들이 책의 상당한 분량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다.

 

(1) 인간/비인간의 조건을 묻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인간과 물질을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위험한 일들은 인간과 물질 사이의 관계를 수직적으로 설정하는 데서 발생한다”(77)는 공현진의 타당한 지적은 그간 인간의 우월성이 무비판적으로 전제되어온 점을 겨냥한다. 인간과 -인간을 사유할 때 보통 그려지는 관계도는 은연중에 권력 위계를 반영하고 있는데, 이는 대체로 물질에게선 힘을 제거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2) ‘비인간의 해방을 근거로 들어 포스트휴머니즘을 마냥 낙관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 책은 적절한 사유의 장을 마련해준다. 아래 성현아의 지적은 인간/비인간으로 손쉽게 환치해버리는 관습적인 구획이 그 내부에서 인간자격과 특권을 획득하지 못한 존재들에게 어떻게 폭력을 가할 수 있는지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포스트휴먼 시대가 도래하며 인간/비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비인간에게 해방을 선사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에 이미 포함되어 있던 비인간 존재들을 않고 다음 담론으로 넘어가기를 반복한다면 포스트휴머니즘이 인간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비인간의 구분을 기계를 가진 인간의 계기가 없는 인간의 대결로 답습하는 차원에 그칠 수 있다.”(153)

 

가령 인공지능의 대체로 인한 인간소외라는 화두를 제시할 때, 인간범주 내부에서 명백히 발생하고 있는 복잡다기한 소외문제는 너무나 쉽게 간과되고 만다는 것이다. (인간A는 인간P와 동등한 자격과 특권을 지닌 인간인가?) 즉 인간중심주의, 인간 우월주의를 탈피해야 하는 것은 명백하지만, 그에 앞서 인간내부에서도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게 하는 젠더, 퀴어, 장애, 소득, 지역, 학력 등의 역학과 상관관계를 세밀히 살펴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치 예기치 못한 위협처럼 섣불리 미래를 재단하는 것은 어쩌면 책임을 어딘가로 떠넘기려는 태만과 다르지 않은지도 모른다. 대표 저자의 언급대로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축적물일 수밖에 없기에, ‘지금-여기를 올바르게 사유하고 적절한 토대를 구축해나가는 것만이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한 전망을 더욱 긍정적으로 만들어나가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미래에서 우리가 만나게 될 시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마치 예형된 피구라처럼이미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알 수밖에 없는 일 것이다. 미래의 시는 지금 이 순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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