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블린 슬레이어 1 - L Books
카규 쿠모 지음, 칸나츠키 노보루 그림, 박경용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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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 구입한 신간 라인업 중에서 꽤나 괜찮은 만족감을 선사해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읽으면서 다크 액션 RPG 게임인「다크 소울」이 생각이 났다.



① 무거운 갑옷을 입은 인물이 무자비하게 적을 썰어버린다.

② 먼치킨이 아니다. 언제나 죽음과 종이 한 장 차이의 사선에서 발버둥친다.

③ 보상이 형편없다. 지역 보스도 아니고 그냥 잡졸들 잡으면서 적은 소울을 득한다.



그런데 이 고블린 슬레이어는 궤를 달리하는 점이 뭐냐면,

다크 소울은 그래도 잡졸들을 헤쳐나가면서 보스, 즉 보스방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지역의 보스를 격파하고 다음 지역으로 돌파한다.



그런데 이 망할 고블린 슬레이어는 고블린만 잡는다.

맞다. 계속 경험이 붙고 성장을 하고는 있어도 계속 고블린이다. 고블린.

심지어 1권 시작부터 그는 작중 시점으로 이미 고렙이다.

근데 계속 잡졸 고블린만 잡고 있다.


저 위풍당당한 위용을 좀 보라!

꽤나 간지나는 무장을 하고 말하는 꼬라지 좀 봐라.

보통 RPG 게임에서도 하다 못해 튜토리얼 잡몹으로 전락하는 일이 당연한 고블린만 잡는 고블린 슬레이어시란다.



고블린만 잡는다면 당연히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랬다. 당연히 있다. 역시 다른 작품에서도 흔하게 등장하는 '과거의 아픔' 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고향을 잃었거나 등등.



그런 비슷한 일련의 사건으로 몸과 마음이 파괴되어 있는 상태에서 자칭 '두려움의 제왕' 이라 하는 복수의 대상자에게,

주인공이 독기를 품고 이를 갈면서 서서히 피로 칠갑된 길을 걸어가는 그런 뻔한 내용 말이다.

그러나 그런 진부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이 고블린 슬레이어는 새롭게 다가왔다.

오히려 그런 진부한 스토리를 들고 일어나 디테일하고 정교한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작품의 제목이 고블린 슬레이어이며 주인공의 이름이 고블린 슬레이어로 서술이 된 마당에,

다른 개체를 타깃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면 이 작품의 색은 바래질 것이다.

하지만 작품의 색을 무리하게 틀어버리지 않고도 작가가 고블린 외의 다른 개체를 장기판에 놓는 방법을 알고 있더라.

그리고 그 개체는 분명히 고블린보다 강력하며 고블린 슬레이어를 몰아붙이지만 격파당한다.



그리고 '너보다 고블린이 더 벅차다.' 라는 고블린 슬레이어의 한 마디와 함께 고블린보다 상위의 적이라는 위상은 심하게 깎인다!

그래! 다른 개체를 등장시키지만 그건 고블린이라는 잡졸을 방치하고 더 나아가 상위의 적들을 쓸어담으면서 결국엔 마왕을 무찌르고!

세상을 구하는 그딴 용자 이야기를 그리는 게 아니다. 고블린 슬레이어는 그냥 고블린만 존나게 잡는 것이다.

다른 몬스터의 쓰임새는 그저 고블린 슬레이어의 병적인 고블린 집착에 '소개팅 자리에서 쌀쌀맞게 퇴짜를 당하는 것' 과 같은 비극적 장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잡졸 고블린이니만큼, 계속 고블린만 잡으면 이야기 전개로서나 주인공의 성장에 발 맞춰 대적할 상대로서나 전개시키기가 여러모로 어려울 수 있다.

그야말로 이 작품에서 고블린은 잡졸이다. 스포츠적인 측면으로 이야기하자면 홀딩 챔프 역할을 오래 할 수 없다는 거다.

과연 고블린 슬레이어가 점점 위를 구가하는 동시에 안습해질 고블린들이 어떻게 모멘텀을 유지할지 작가의 기량과 상상력에 기대가 크다.



여기까지 쓰면서 간과한 게 있는데 이 작품의 고블린이 약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절대로 멍청하지는 않다.

그건 1권의 프롤로그격인 이야기부터 작가가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일러스트의 모험가들은 초짜 모험가다.

누누히 말했듯 고블린은 이 세계관에서 알아주는 최약체 잡졸이다. 그래도 고블린은 멍청하지 않다.

최약체 잡졸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당연히 고블린들을 상대하는 것에 있어 유한 자들이며 숙련된 모험가들의 견해가 세상 지식으로 전파된 부분이다.

아무리 최약체인 고블린이라 할지라도 고블린을 상대로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어떻게 퇴장하는지- 바꿔 말해서,

이 고블린 슬레이어라는 작품이 절대 가벼운 작품이 아니며 어두운 다크 판타지적인 측면을 묵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 좋은 모르모트로서 규범이 되어준 비운의 인물들이다.



보통 작품이었다면 저 초짜 모험가들은 고블린들에게 털려도 때맞춰 나타난 고블린 슬레이어로 인해 어부지리로 고블린을 몇 마리 잡거나 해서 목숨을 부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러한 가련한 존재들에게 자비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에 살아남는다 할지라도 남자 모험가는 세상의 잔혹함에 전율하고,

여자 모험가는 이미 고블린들에게 뿅뿅을 당해 마음과 몸의 상처를 깊이 입은 채 고향으로 돌아가 처박히게 된다.

살아남아도 이것이 신의 한 수가 되는지 아니면 최악의 악수가 되는지를 작가는 이런 불운한 캐릭터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건넨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마냥 고블린만 잡는 고블린 슬레이어와 비참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면 아니다.

고블린 슬레이어를 연모하는 접수원 아가씨, 고블린 슬레이어에게 구해진 여신관, 소꿉친구 소치기 소녀, 엘프 궁수, 드워프 도사, 리자드맨 승려 등등.

재미있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소한 이야기의 연속성을 다른 캐릭터들이 보여주고 있어서 좋았다.



접수원 아가씨, 여신관, 소치기 소녀, 엘프 궁수 같은 여성진들은 이 작품을 읽기 전에는 그저 고블린 슬레이어에게 매료된 얼빠 뜨내기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캐릭터들의 쓰임새도 매우 흡족하였고 고블린만 담궈버리는 과묵한 고블린 슬레이어로 인해 무기질적으로 글만 훑어갈 때,

다음으로 넘어가는 이야기에 대한 독자들의 호응을 완벽하게 업하는데 이 캐릭터들이 일조했다고 본다. 특히 예쁜 일러스트도 꽤나 좋았다.

아마도 이 캐릭터들의 존재는 고블린 슬레이어라는 존재가 '엄청나게 강한 자' 가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 라는 걸 일깨워준 장치라고 할 수 있달까.



전체적으로 매우 재미있었던 작품이었다. 특히나 인상이 깊었던 건 고블린은 명함도 못 내밀 강적인 오우거를 이 작품의 메인 디쉬인 고블린을 띄워주기 위해 감초급 역할로 연출시킨 점이었다. 그게 부정적이냐면 그것도 아닌 게 등장 타이밍, 고블린과의 저울질에 대한 결과의 당위성이 적절하게 버무러져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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