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令夫人)이란 대통령 부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남의 부인을 높이는 말이란 건 널리 알려져 있다. “영부인 = 대통령 부인”이 된 건 박통 시절 때다. 어릴 적 기억에도, TV에서는 날마다 “대통령 영부인”이 아니라 그냥 “영부인”이 오늘은 어디를 방문해서 어쩌고 했고, 사람들은 그게 육영수 여사 이야기인 줄 다 알았다. 5공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의 아들을 높여 부르는 말인 영식(令息)을 처음 들은 것도 그 무렵인 것 같고, 남의 딸을 높여 부르는 영애(令愛)란 말을 처음 들은 건 카터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다. 그때 카터가 외동딸을 데리고 왔는데, TV에서 그 딸을 가리켜 “영애”라고 했다.
중학교 때인가 한문 시간에 영부인, 영애, 영식의 ‘영’이 대통‘령’을 가리키는 게 아니란 걸 배웠지만, 그래도 평소 다른 경우에 그 말을 쓰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영부인, 하면 대통령 부인을 떠올린다.
그런데 남의 남편을 높이는 말은 뭐지? 부군(夫君)이다. 왜 남편만 영자 돌림이 아닐까? 혹시 ‘영’자 돌림은 남자 가부장에 딸린 가족에만 붙이는 말인가? 흠, 영부인, 영애, 영식은 원래 남자들끼리만 하는 말이었나 보다. 남자들끼리 서로 상대방의 처자식을 가리킬 때 쓴 말이었다면, 그건 진정 남의 ‘부인’이나 ‘자식’을 높이는 말이라기보다 말하는 상대방 남자, 곧 그 부인의 남편, 그 아들딸의 아버지를 높이는 말 아닌가.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을 보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