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
박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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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형제복지원 사건을 아시나요?

 

1975~1987,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이 시기에 부산의 형제복지원에서 인권 유린 사건이 발생했다.

부랑아 단속을 위해 개설된 사회복지시설에서 일반인까지 납치해 불법감금, 강제 노역, 구타, 강간, 암매장 등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

국가에서 인원수만큼 지원금을 지급하다 보니 부랑아가 아닌 일반인까지 납치된 것이다.

1987년 복지원을 탈출한 사람들에 의해 그 만행이 세상에 알려졌는데, 살해 및 고문으로 사망한 피해자 수만 무려 513명에 달한다. 그러나 가해자인 박 원장은 고작 징역 2년 6개월의 형을 받는데 그쳤다.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며

최근 과거사법이 통과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번에 읽은 책 <은희>는 예쁜 표지와 제목과는 다르게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참혹한 진실을 파헤치는 소설로

저자 박유리의 데뷔작이다.

 

 

그들은 28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형제의집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1987년을 서성이고 있었다.

 

 

 

 

 

 

 

어렸을 적 미국으로 입양된 후 폴란드에서 살고 있는 준,

평범한 삶을 살던 그는 어느 날 한국에서 온 한 통의 편지를 읽게 된다.

병호라는 사람이 보낸 편지에는 준의 입양 서류, 어머니의 검안서와 사망 관련 서류, 복지시설 입소 카드가 들어 있었다. 입소 카드 아래에는 '형제의집'이라는 시설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준의 친모인 김은희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아우슈비츠에 학생들을 데리고 견학을 간다는 내용이 있었다.

 

 

병호의 편지를 받은 순간부터 그는 거울 속의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거울 속의 얼굴에는 한 여자가 강간으로 임신한 밤과 그녀가 맞아 죽은 낮이 흘렀다.

 

평생 모르던 친모에 대한 소식, 거기에 자신이 강간으로 인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분이 어떨까,

결국 일주일간 악몽에 시달리며 망설이던 준은 아우슈비츠에 가게 된다.

아우슈비츠에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한국에서 온 미연을 만나게 되지만 미연에게 따로 은희를 아냐고 물어보지는 못하고, 그 뒤 한국으로 직접 찾아간 준은 병호와 미연을 만나게 된다.

병호의 아버지도 형제의집을 나와 미치광이로 힘들게 살다 사망한 피해자였다. 그가 준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는 형제의집 진상규명 특별법 통과를 위해 뉴페이스가 필요하다는 것.

 

여론을 다시 일으켜야 하거든. 이 불처럼 활활 다시 타오르게.

 

 

 

 

 

 

책의 전개는 준이 한국에 와서 미연과 동행하며 일어나는 일들과, 준의 엄마인 은희와 미연이 형제의집에 납치되어 그곳에서 보냈던 과거의 아픈 이야기가 나온다.

은희는 사망하고, 미연은 형제의집에서 끔찍한 4년을 보내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케이스이지만, 형제의집에서 4년간 겪었던 일들은 큰 트라우마로 남아 시간이 많이 흘러 정상적인 직업을 가지고 결혼과 출산까지 겪었어도 치유되지 못한 채 남아있다.

저자는 기자로서 형제 복지원 사건을 직접 취재하고 조사한 기록 위에 가상의 인물 '은희'를 만들어내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소설이라 허구적 내용도 있겠지만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더 마음 아픈 이야기..

은희의 죽음에 대한 진실과 치매를 앓는 노인이 된 방원장을 다시 만난 미연의 이야기는 정말 씁쓸했다.

몸이 아픈 사람은 겉으로 봐도 티가 나지만, 마음이 아픈 사람은 겉으로 보고 바로 알 수 없다.

책을 읽으며 내가 살고 있는 한국 땅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게 놀랍고도 마음이 아팠다.

지금도 형제 복지원 피해 생존자들과 그들의 가족은 우리와 함께 지내고 있다.

길고 긴 투쟁 끝에 드디어 과거사법이 통과되었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라 생각한다.

제대로 재수사가 이뤄져서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줬으면...

이 소설을 계기로 형제 복지원 사건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면 좋겠다.

 

 

그들은 빈곤을 모아두면 풍요로워질 것으로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바퀴벌레와 쥐퇴치 운동을 벌이듯이. 그렇게 우리는 청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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