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꽃
손지혜 지음 / 북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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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를 위한 인형이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그렇게 되고 싶어 했다. 엄마의 행복이 되는 것이 나의 가치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고,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인관관계라 생각한다.

평소 거절을 잘 못하는 나는 내가 피해를 보는 상황에도 상대방의 부탁을 들어주는 편이었다. (다행히 과거형)

사실 나는 20대 중반 믿었던 친구에게 큰돈을 사기당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큰돈인데 그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린 마음에 돈도 잃고, 사람도 잃어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며 아파했었다. 당시 차용증도 몰라서 무턱대고 현금으로 인출해서 직접 전해주는 바보 같은 짓으로 남은 증거도 없었고, 지금은 시간이 흘러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었지만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콕콕 쑤신다.

왜 그렇게 사람을 믿었던 건지, 왜 거절하기 미안해서 그렇게 큰 부탁을 들어준 건지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큰돈 주고 인생 경험했다고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 뒤로 금전거래는 안 하게 되었으며, 나를 위해 거절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그래서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어느 정도 선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초반부터 이렇게 구구절절 나의 아픈 과거를 꺼낸 이유는 이번에 읽은 <이름 없는 꽃>을 보며 옛날에 있었던 나의 아픈 과거나 상처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름 없는 꽃>의 저자 손지혜는 1994년생 젊은 작가로, 현재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사실 타이틀만 놓고 보면 대학 졸업하자마자 고등학교 교사로 취직했으니 흔히 말하는 엄친딸에 엄청난 엘리트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본문을 읽으며 상상하지 못했던 저자의 과거에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초반 나와있는 11일간 쓴 책이라는 것도 놀라웠다. 일반적으로 책 한 권을 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걸로 알고 있는데, 11일이라니 어떤 마음에 갑자기 단기간 동안 이런 책을 쓰게 된 건지 더 궁금해졌다.

 

 

저자는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 엄마의 꼭두각시 같은 생활을 하며 보냈다. 학교에서는 회장을 맡고, 겉으로는 리더십도 있고 활발해 보였지만 엄마에게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당하며 무엇이든 엄마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며 눈치를 보는 마음이 멍든 소녀였다.

<이름 없는 꽃>을 읽으며 엄마가 저자에게 준 수많은 상처들에 내 마음도 아팠다. 특히 교통사고 후 깨어난 저자에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둥 죽었으면 좋겠다는 악담을 퍼부었다는 문장을 보고는 많이 충격을 받았다.

실제 나는 엄마와 단짝 친구처럼 좋은 사이고, 둘이 해외여행도 가며 좋은 사이로 쭉 지내왔기 때문에, 나와는 다른 저자의 어릴 적 상황에 놀랍기도 하면서 어린 마음에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에 속상하기도 했다.

저자와 나의 어린 시절 환경은 많이 달랐지만 <이름 없는 꽃>에는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

저자가 엄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상담 선생님이나 남자친구에게 받으려고 하는 모습은 어릴 적 연애에 서툰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한 사람에게 올인하고 모든 걸 함께하려는, 나보다 상대방을 더 사랑하던 미숙한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름 없는 꽃> 목차에 나오는 1부 "가족:알고리즘", 2-1부 "나: 위태롭던 날들"을 보며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많이 속상했지만, 2-2 "회복" 이후에는 저자가 아픔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하기 위한 이야기들이 나와있어 읽는 동안 뿌듯하기까지 했다.

내가 과연 저자와 같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나는 성인이 되어 독립한 후 나 자신을 사랑하며 열심히 살 수 있었을까? 지금도 과거 일들이 떠올라 마음 아파하며 서툰 연애를 했던 나의 전적을 봤을 때, 저자처럼 회복하여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하려는 게 아니라 이번 생은 망했다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자가 교사가 된 이유가 본인과 같은 학창시절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위함이라고 해서 더욱더 예쁘게 느껴졌다. 나보다 어려서 그런지 참한 동생 같기도 하고, 잘 자라줘서, 잘 극복해줘서, 그리고 마음이 따뜻한 선생님이 되어줘서 고맙고 기분이 좋았다.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며 어떠한 평형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설령 원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도 나를 지키는 방법들을 배웠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나와 다른 상황임에도 공감되는 게 많은 걸 보면 사람은 모두 불완전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은 외로운 것 같다. 그런 우울한 감정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대처하냐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도 달라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 타인보다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나의 단점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포용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름 없는 꽃> 마지막 장에 나와있는 저자의 말 중 "우연히 이 책을 읽고 있겠지만 당신이 이 책을 읽는 것조차 나는 필연으로 믿는다."라는 문장에 뭔가 마음이 찡했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런저런 나의 과거 사건들도 떠오르며 많은 생각이 들었던 책으로 추천한다.​

 

나는 그렇게 꽃이 되어 갔다. 나의 향을 찾아갔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향기가 나는 삶을 살아가며 이름 없는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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