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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
우와노 소라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라는 긴 제목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가족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는 편이라 평소 가족과 관련된 책이나 영화를 보면 일반 슬픈 로맨스보다도 펑펑 우는 편이다.
일단 책 제목을 보자마자 '나는 앞으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가 얼마나 남았을까?'라는 슬픈 생각이 떠올랐다.

-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7번 남았습니다
- 당신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5번 남았습니다
- 당신이 수업에 나갈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1만 6213번 남았습니다
- 당신에게 불행이 찾아올 횟수는 앞으로 7번 남았습니다
- 당신이 거짓말을 들을 횟수는 앞으로 122만 7734번 남았습니다
- 당신이 놀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9241번 남았습니다
- 당신이 살 수 있는 날수는 앞으로 7000일 남았습니다
이 책은 옴니버스식 단편소설로 숫자로 표현되는 일들과 얽힌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나온다.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라는 제목도 특이하지만 목차만 봐도 '만약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긴다.

일단 책 제목이기도 한 첫 번째 이야기인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는 주인공 가즈키가 열 살 생일날 갑자기 아래쪽 시야에 저런 문장이 보이게 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생일이라 어머니가 차려준 맛있는 밥을 먹고 나니 처음 보였던 3647번 남았다는 숫자가 3646번으로 바뀌게 된다.
어머니가 손수 해주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숫자가 1씩 줄어들었다. 한 번 먹을 때마다 1씩.
계속 줄어드는 숫자. 이 숫자가 0이 되면 어떻게 될까? 숫자가 0이 되면 어머니는 돌아가실 거라고 생각한 가즈키는 열세 살이 된 후로 어머니의 집밥을 입에 대지 않게 된다.
숫자가 328번이 된 이후로는 이런저런 핑계로 집밥을 거부하며 대학에 진학한 뒤로는 자취생활을 한다. 어머니를 피하기 위해서.
어머니의 집밥을 피하다 보니 제대로 식사를 하지도 못하게 된 그의 이야기와 이 숫자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 가즈키의 이야기가 나온다.

잠자코 내 말이나 들어! 잘 들어, 난 15년 뒤....... 서른두살이 된 바로 너야.
사실 처음에는 장편소설인 줄 알았다가 단편소설이라 조금 당황했지만 오히려 단편소설이라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어서 더 재미있었다.
소설 속 이야기들 중 상대방이 거짓말할 때마다 숫자가 줄어드는 주인공의 사연은 안타까웠다. 이 세상에 거짓말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큰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선의의 거짓말이나 입에 발린 이야기 등 우리는 때로 상대를 위해 본의 아닌(?) 거짓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말이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숫자로 보이면 겁이 나서 사람들과 전혀 대화를 못 할 것 같다.
서로 연관되는 이야기도 있었고 아무래도 제일 마지막 장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출간 전 이벤트로 빠르게 만나볼 수 있어서 너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내가 받은 책은 가제본이라 더 의미 있었고, 책 자체도 가독성이 좋아서 금세 읽을 수 있었다. 다 읽고 난 뒤에 나와있는 옮긴이의 말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닥쳐올 불행 때문에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보다 덜 중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의 내가 행복하다면 내일의 나 역시 행복할 겁니다.카르페디엠(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책.
어릴 적부터 내 좌우명은 '인생은 생방송'인데 실제 나는 현재 보다 지나간 과거나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너무 연연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내일 당장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게 사람 인생사인데 조금 더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는 재미와 감동, 힐링까지 갖춘 책으로 추천한다.
아 그리고 제목 때문인지 괜히 엄마가 그립고 보고 싶어진다. 집밥 먹고 싶네.

살면서 어떻게 행복하기만을 바랄 수 있을까. 불행이나 불운을 극복해야만 거머쥘 수 있는 행복도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