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의 무게 휴먼어린이 고학년 문고 1
이현 지음, 오윤화 그림 / 휴먼어린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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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의 무게에서의 악당은 꽤 경계심이 강하다. 먼저 공격당하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는 독사와 닮았다. 용주도 아토피 때문에 개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말도 안 통하는 개의 속마음 또한 중요하지 않았다. 악당을 만나기 전까지는. 용주는 악당을 처음 만난 날, 친구들에게 세 보이려고 "뭘 그렇게 겁을 먹어? 보기보다 순한 개야"라고 말한다. 그건 자기 자신을 달래려 하는 말 같다. 그러고선 여느 개처럼 다짜고짜 달려들지 않는 악당의 태도를 마음에 들어 한다. 온 산을 주름잡는 악당과 멀찍이 떨어져서 친구가 되는 걸 마음으로 허용한다. 그럼으로써 용주와 악당이 계속 만나면서 가지는 관계성이 생긴다. 그 만남은 용주의 바람대로 떠들썩하거나 끈끈하지 않고 담백하다. 둘은 언제나 2m의 간격을 두고 있고 악당은 늘 무표정하다. 그 사이에 자리 잡은건 친밀감보다는 약간의 설렘, 긴장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용주가 용기를 내 1m로 거리를 좁히는 대담함을 보이긴 하지만 악당은 낮게 컹 짖으며 거리를 다시 넓힌다. 여기엔 인위적인 우정이 없다. 서로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두 생명체가 있을 뿐이다.


용주는 악당이 악당답게 살기를 바란다. 악당의 자존심을 살핀다. 그것은 용주에게도 자존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에게 물려 죽느니 친구들에게 소심하게 안 보였으면 하는 자존심이다. 악당도 용주처럼 소심한 개가 아니었을까. 살기 위해서 황사장의 목덜미를 물고 달아날 때 누구보다 무서웠을 것이다. 옆구리에 칠해진 붉은 스프레이 자국은 악당이 갖은 괴롭힘을 당하면서 마음을 닫아버린 이유를 말해주기도 한다. 사실 악당의 자존심은 진짜 자존심이 아니라 동물의 권리였을 것이다. 지금의 법으로는 허용되지 않는 목줄 없이 자유롭게 지낼 권리. 동물의 권리를 용주는 동물의 자존심으로 본 것이다. 마지막에 뒤돌아선 용주에게 악당이 달려든 이유를, 마음을 용주는 영원히 알 수 없다. 나는 악당이 갑자기 몰려든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용주를 지켜주고 싶었을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죽는 순간 용주의 품에 안긴 악당의 무게는 묵직했지만, 나무 상자 안에 화장된 악당은 가벼웠다. 자존심을 바친 악당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지만. 


나에게 우정이란 가까이 다가가고 친근한 미소 같은 것인데, 그런 허용은 마음이 닫힌 사람에겐, 특히 동물에겐 폭력일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그런 사람, 동물은 천천히 다가와 주길 자존심을 헤아려 주길 바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좁은 옥상에 갇혀 지내는 건 악당답지 않다. 목줄을 채워서 묶어 두는 것도 그렇다. 악당의 자존심이 그런 일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개한테 무슨 자존심이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의 악당은 그렇다. 줄에 묶여 숨어 사느니 차라리 경찰에 쫓기는 편을 택할 것이다. 그런 말을 나눈 적은 없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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