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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리놀로지 - 우리의 세계는 스크린으로 연결되었다
이현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6년 1월
평점 :
<스크리놀로지>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매체가 아닌 물질로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기술적 도구나 미디어를 재생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예술의 관점에서 재료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최초의 경험이었어요. 아마 회화를 전공해 미디어아트를 해 온 저자의 독특한 이력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작품을 만드는 작가로 경험한 스크린에 대해 사유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는데, 스크린의 몰입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두운 밤 아파트 창문 너머로 새로 나오는 TV의 푸른빛, “빛과 픽셀들, 전자적 깊이의 덩어리 아래 이미지의 전체 세계가 약속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너무 신비롭지 않나요. 날 울고 웃게 한 모든 세계를 전자 파동과 전기적 신호가 구성했다는 사실, 공기 중 떠다니는 가상의 무엇이 아니라 실제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이라는 게 왠지 모를 위로가 됩니다.
<스크리놀로지>를 읽기 전, 나와 세상 사이 스크린은 창일지 벽일지 혹은 그 무엇도 아닐지 책을 통해 그 답에 다가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세상을 한 뼘 남짓의 납작한 스크린에서 마주하는 삶의 당연함이 공포로, 경계해야 할 일로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마찬가지로 책의 마지막에 저자 역시 위험성을 경고하며 스크린을 떠나라고 말합니다. 매끈한 스크린을 떠나 거친 마찰을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약간은 공허하게 들려요. 우리 모두 그래야 하는 걸 알지만, 실천이 어려운 ‘맞는 말’이기 때문이겠지요. 사방이 블랙미러인 현대인에게 '스크린 밖'은 실천 불가능한 당위론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저는 좀 더 나아가보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스크린을 떠날 수 없다면, 오히려 그 안에서 마찰을 만들어내면 어떨까요? 무분별하게 흐르는 스크린의 속도를 늦추고, 사용자를 별안간 작품의 '관람자'이자 '참여자'로 돌려세우는 낯선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예술가는 의도적으로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UI를 통해 사용자의 관성을 깨뜨릴 수 있지요. 무한스크롤을 만든 래킨스가 위험성을 깨닫고 설립한 ‘인도적 기술 센터’나, 터치스크린 위에서 잔인한 이미지를 줌인하고 조작하는 장면을 통해 실제의 감각과 일상적 행위를 충돌시킨 전시 <터칭 리얼리티>가 그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효율만을 극대화한 매끈한 UX를 상처내고 뒤틀 때, 사용자는 비로소 자신이 만지는 것이 단순한 데이터가 아닌 '물질적 실체'임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제가 찾은 답은 예술로서의 인터페이스입니다. 매끄럽지 않은 이야기를 매끄러운 스크린에서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미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길들여진 스크린 월드 안에서 불협을 만드는 시도를 계속 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야만 스크린이 닫힌 벽이나 자신만을 무한히 반사하는 거울을 벗어나 밖을 향한 창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술로 읽는 스크린, 물질로 읽는 스크린을 알게 해 준 책입니다. 스크린 속 일어나는 불평등과 폭력에 대해 비판적으로 감각할 수 있기도 하고요. 납작한 공간에서 납작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모두에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