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책판다의 서재 (책판다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을 파고드는 책판다의 서재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을 기록하는 블로그입니다.</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14 Jul 2026 22:40:15 +0900</lastBuildDate><image><title>책판다</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03283109209514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책판다</description></image><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상반기 결산: 좋았던 책 8권</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91890</link><pubDate>Tue, 14 Jul 2026 20: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9189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031326&TPaperId=173918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76/86/coveroff/k002031326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034189&TPaperId=173918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02/82/coveroff/k17203418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82034881&TPaperId=173918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09/72/coveroff/k78203488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41864&TPaperId=173918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333/52/coveroff/895094186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738380&TPaperId=173918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67/85/coveroff/k562738380_2.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91890'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다양성이 존중받는 미래를 위한 사람 공부?&nbsp;<br>뒤늦게 뛰어드는 상반기 결산. 지난 6개월 동안 읽은 책 목록을 리뷰하면서 ‘이 책이다!’ 싶었던 일곱 권을 짧은 고민 끝에 어렵지 않게 추려봄.&nbsp;<br><br>👉 읽은 순서대로<br>   <br><br><br><br><br><br><br><br><br><br><br><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1️⃣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리사 펠드먼 배럿, 최호영 옮김, 생각연구소, 2021)2️⃣ 『프로젝트 헤일메리』(앤디 위어, 강동혁 옮김, RHK, 2021)3️⃣ 『평균의 종말』(토드 로즈, 정미나 옮김, 21세기북스, 2021)4️⃣ 『맹자』(맹자, 김원중 옮김, 휴머니스트, 2021)5️⃣ 『위어드』(조지프 헨릭, 유강은 옮김, 21세기북스, 2022)6️⃣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세라 베이크웰, 이다히 옮김, 다산초당, 2025)7️⃣ 『그저 하루치의 낙담』(박선영, 반비, 2025)8️⃣ 『역사는 어떻게 진보하고 왜 퇴보하는가』(파리드 자카리아, 김종수 옮김, 부키, 2025)<br>일곱 권을 가지런히 쌓고 보니 내가 읽고 싶었던 것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열심히 궁리해보니 첫 머리에 써놓은 것처럼 요약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nbsp;<br>아닌 게 아니라,&nbsp;👉 다양성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고민하게 했던(2️⃣, 3️⃣)👉 경쟁에서 인간 본성을 찾는 이들에게 반박할 근거를 주었던(1️⃣, 5️⃣, 6️⃣)&nbsp;👉 좋은 것이 통용되는 질서에 대해 고민하게 했던(4️⃣)*️⃣👉 욕망과 윤리가 무리 없이 공존하는 세계를 보여준(7️⃣)👉 진보를 위해 세계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고민을 안겨주었던(8️⃣)<br>대단히 거창해서 방구석 여포가 된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굳이 이곳에 기록해야 하나 싶었지만 이런 생각을 해보았으니 거창한 요약도 나름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방구석의 여포처럼 거울 보며 창을 휘두르는 것보다는, 한 분이라도 공감해주시는 게 훨씬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사족도 붙여본다.<br>여덟 권 중 제일 좋았던 책을 꼽아보면, 1️⃣과 6️⃣은 연말 결산 포함 확정. 7️⃣, 8️⃣은 하반기에 어떤 책이 나타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 같다.<br>그 외에도 장르 편식을 이전보다 줄인 것, 인문학 계열의 책을 많이 읽은 것 정도가 나름의 성과로 꼽아보고 싶다. 앞으로 더 많이 읽고 쓰는 하반기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모두 즐거운 독서하십쇼!! 📚🐼🙌<br><br>*️⃣맹자의 義는 ‘옳은 것’에 가깝지만 나는 이것을 ‘좋은 것’으로 읽어보았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838/36/cover150/k25253162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8383616</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과학과 인문학 사이, 감정이라는 판문점</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89384</link><pubDate>Mon, 13 Jul 2026 14: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8938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031294&TPaperId=1738938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89/2/coveroff/k02203129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K17253384&TPaperId=1738938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195/40/coveroff/ek17253384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02935996&TPaperId=1738938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422/85/coveroff/k10293599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066710&TPaperId=1738938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934/1/coveroff/895906671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50994&TPaperId=1738938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494/40/coveroff/8934950994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89384'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감정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뇌과학』(『감정 뇌』)을 펼쳐든 것은 이 책이 (현 시점 내 인생 책 중 하나인)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리사 펠드먼 배럿, 이하 『감정은』)의 핵심 이론인 ‘구성된 감정 이론(Theory of Constructed Emotion)’을 기반으로 쓰였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었기 때문이다. 구성된 감정 이론이 인간 이해의 중요한 열쇠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 책을 통해 이해를 더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더랬다.&nbsp;<br>하지만 조금은 당황스러운 반전이 있었으니, 『감정 뇌』가 내 짐작과 달리 배럿의 구성된 감정 이론을 지지하면서도 그것을 주된 소재로 삼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아, 이거 괜히 읽기 시작한 건가 싶으면서도, 저자의 필력과 책의 논의가 재미가 없지 않아서 계속해서 이 책을 읽어가던 와중에, 얼마 지나지 않아 계획과는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한국말 같은 책이었달까.<br>이 글은 뇌과학 책에 대한 서평이지만, 동시에 뇌과학을 넘어선 (누군가에게는 장황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장엄한) 이야기를 펼쳐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과연 나는 어느 방향을 향해 걸어 나갈까?<br>📚 우리는 사실 감정을 몰랐다『감정 뇌』는 코로나19로 아버지를 잃은 저자가 고통스럽도록 슬펐음에도 겉보기에 충분히 슬퍼 보이지 않은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뜻하지 않게 부모님을 잃은 사람이 보일 법한 반응(예를 들면 오열이라든지)이 자신에게서 전혀 나타나지 않아서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울지 못한다거나 내 감정을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p.53) 다만 이 책에서 확인 가능한 가장 확실한 사실은 겨우 58세였던 “아버지를 만나거나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도 못한 채 그 여파를 혼자서 견뎌야 했”던 경험은 “지금까지 삶에서 최악으로 꼽힐 만한 감정적 고통과 트라우마였다”는 것이다(p.9).<br>신경과학자로서 자신의 감정 상태를 이해할 수 없었던 저자는 본격적인 감정 연구에 돌입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당황하고 만다. 신경과학자로서 다른 이보다 감정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아는 게 많지 않았는데, 심지어 “놀랍게도 여러 세기에 걸친 연구와 논쟁에도 감정이 정말로 무엇인지에 대한 확고한 합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br>이 책을 읽는 독자 대부분들은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루에도 수없이 감정적인 순간을 맞고 있는데, 그걸 모른다는 게 말이 된다고? 하지만 “감정은 우리와 무관하거나 주변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 존재의 모든 것”(p.10)이란 설명을 들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기원전 3세기, 스토아학파가 “모든 상황에 논리와 이성을 적용하라”고 주장한 이래로, 우리는 그들의 정신적 후예로서 이성을 신 이상으로 숭배해왔으니까.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많은 이들이 “감정적으로 굴지 마”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우리가 감정을 제대로 모른다는 증거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감정은 우리의 전부이기 때문이다.<br>자신이 감정을 모른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저자는 감정이 (우리 모르게) 하는 일들을 다양한 일상에서 과학적인 원리를 추적해간다. 이 책의 주된 목표이자, 독자가 얻을 가장 유용한 정보다. 하지만 내가 너무 산만한 탓이었을까?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는 동안 나는 자꾸만 곁눈질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데? 특히 몇몇 사례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힌트처럼 보이기 시작한 걸 보니, 이건 잘 읽으면 몰입, 잘못 읽으면 망신의 경계선을 걷는 느낌까지 들었다.<br>📚 감정, 우리 존재의 모든 것저자가 소개하는 감정의 일 중 내가 주목했던 몇 가지만 살펴보자. 일단 ‘회사’다. 우리는 거의 모두 회사를 싫어하며 그 이유를 딱히 찾을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회사를 싫어하는 이유가 재미있으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책에 따르면 일단 회사 일이 싫은 이유 중 하나는 동기부여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동기부여란 우리가 특정 행동이나 활동을 하고 싶게 만드는 인지적 ‘에너지’다.”(p.70) 이 동기부여는 보상이나 처벌이 따르는 ‘외재적 동기’와 성과를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하는 ‘내재적 동기’로 분류할 수 있는데, 자, 여기에서 우리를 이끄는 힘 센 동기는 무엇일까? 누구라도 내재적 동기를 고를 것이다. 그리고 “내재적 동기는 감정적인 차원에서 우리를 자극할 때 분명히 발생한다.”(p.79)&nbsp;<br>그럼 회사 일은 왜 우리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걸까? 저자에 따르면 “업무 환경에서 감정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p.225) 실제로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직장에서 자율성 상실, 사회적 지위 상실 (…) 등을 비롯한 많은 것들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p.225~226)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뇌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에” 회사 일에는 “부정적 감정이 확실히 뒤따른다.”(p.226) 심지어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이런 감정들을 제대로 처리하거나 다룰 기회를 주지 않는다.”(p.226) 내재적 동기가 생기기는커녕, 번아웃에 빠지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정리해보면, 회사 업무에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데, 해야만 하는 일이다 보니 출근이 ‘괴로운’ 것이다.<br>한편 감정은 정보 저장, 즉 기억과 관련해서도 ‘열일’을 한다. 가령 대부분 사람들은 시험을 준비하면서 죽어라 암기했던 내용들을 시험 종료와 동시에 잊어버리는 일을 경험해봤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뇌는 그런 정보를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하는데(p.131~132), 여기에서 ‘그런 정보’란 ‘감정적인 요소가 없는 정보’를 뜻한다. 반대로 “공감대를 살 만한 캐릭터들이 있다면 (…) 우리의 뇌가 몰입하는 방식 덕분에 사건, 환경, 상황에 이입하기보다는 또 다른 생각이나 느낌을 가진 개인과 감정적으로 연결되고 공감하기가 훨씬 쉽다.”(p.337~338) 특히 어린이들의 경우 “그들이 좋아하는 친숙한 캐릭터가 가르칠 때 수학 지식을 더 잘 배웠다”고 한다(p.339).<br>지금까지 소개한 것은 일부 사례에 불과하지만, 책의 어떤 사례를 보더라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동기부여와 기억, 의사결정, 그 외에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일’들은 감정 없이 해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해부학적·생리학적·신경심리학적 증거에 의거해 오랫동안 뇌의 기능적 분열을 명확하게 배제해왔”으며, “뇌는 서로 다른 영역의 복잡하고 광범위한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p.121). 다시 말해 “감정과 이성적인 사고를 분리하여 후자에만 의존한다는 개념은 비현실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매우 현명하지 못하게 보인다.”는 것이다(p.123).<br><br>——<br><br>📚 정보가 지각, 감정, 신념이 되어가는 과정앞서 나는 『감정은』에서 이해한 감정을 보강 내지는 확장하기 위해 이 책을 골랐으며, 내 예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감정 이해의 깊이를 더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두 책을 따로 놓고 꺼낸 말은 아니었다. 두 책은 각자의 방식으로 감정에 대한 이해에 깊이를 더했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긴밀하게 이어졌고 작지 않은 영감이 되었다. 내가 몰입과 망신의 경계선에서 외줄타기를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하다.<br>  <br><br><br><br><br><br><br><br><br><br><br><br><br>일단 『감정은』에서 주장한 구성된 감정 이론에서 주변 환경에 따라 감정이 ‘그 자체’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정보를 접했다. 간단히 말해 감정이 내수용 신호·과거 경험·문화적 개념이 통합된 뇌의 능동적 예측 과정에서 구성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구성된 감정 이론의 반대편에 폴 에크먼의 ‘기본 감정 이론’이 있는데, 이 이론은 사람이 다섯 가지 기본 감정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나도 감동받으면서 본 애니메이션 &lt;인사이드 아웃&gt;의 뼈대가 바로 기본 감정 이론이다). 이는 특정 사건 등에 대한 감정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넘어(가령 축구를 보면서 열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태어난 이후의 환경, 정보 등으로 인해 기본적인 감정의 종류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비단 감정만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감정은』에 대한 서평에서도 썼지만 많은 신경과학자들이 인간의 지각이 ‘예측 처리’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이전의 경험에 기반해 지각 정보를 ‘해석’한다는 것이다. 신경과학자 아닐 세스가 인간 의식을 ‘통제된 환각(controlled hallucination)’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리가 실재와는 별개로 사물 사건을 지각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유전자와 문화가 함께 진화한다는 문화-유전자 공진화론(Dual Inheritance Theory, DIT)이나 최근 생물학계의 뜨거운 이슈인 후성유전학(다양한 맥락 또는 상황에 따라 유전 물질이 활성화되거나 비활성화되는, 즉 발현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을 연구하는 생물학의 분과 학문) 또한 문화와 환경이 인격의 후천적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감정 구성의 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후성유전학의 경우 환경이 외모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br>이 과정을 (맛보기로라도) 살펴본 나는 모든 인간의 지각, 지식, 감정을 아우르는 ‘절대 정보’가 성립 불가능할 거라는 (현시점 기준 주관적이지만 나는 이제 믿을 수밖에 없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사실 관계에 대한 합의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 않나. 사실 관계를 두고도 이런 마당에 도덕, 윤리 같은 가치들은 오죽할까. 물론 살인처럼 몇몇에 대한 절대적인 합의에 다다르긴 했지만, 지금도 어떤 지역에서는 학살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또 그것을 ‘정당방위’로 받아들이는 이들을 보면, 보편적·절대적 가치에 대해 회의할 수밖에 없게 된다.<br>⛔ 주의: 다만 강조하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인간의 지각, 생각, 감정, 신념은 사람마다 다르게 구성된다는 것이다. 즉,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으며 그러므로 옳은 것은 없다’는 허무주의를 설파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과학의 경우 지각의 상대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관찰(지각)의 차이를 합의 과정을 통해 줄여나간다(당연히 그 차이가 완벽하게 소거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신념이나 윤리 또한 과학의 방법으로 줄여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가치는 상대적으로 형성되지만,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객관화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생존을 위한 만인에 대한 투쟁보다는 공존이 개인과 집단에게 훨씬 나은 방법이자 가치라고 믿는다.<br>📚 감정 없는 신념이라는 모순한편 『감정 뇌』를 읽으면서 기억의 형성에 있어 감정의 기여가 100%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는 점을 떠올려보자. 책은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해 우리 인생에 일어날 법한 일에서 감정의 일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설명하지만, 이런 일상이 우리의 인격, 신념의 형성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책의 감상을 앞서 언급한 신경과학 이론과 연결 지어 정리하는 것은 비약이 아닐 것이다.<br>여기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정보, 그중에서도 도덕·윤리 같은 가치가 감정에 대한 고려 없이 전달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러니까 ‘내면화’가 어렵다는 말이다. 가령 소셜 미디어에서 상식적인 윤리조차 알지 못했던 이들에게 “모르면 외우라”라고 면박 주며 말하지만, 짐작컨대 이 말을 들은 이들은 외우기는커녕 도리어 외면하려고 기를 쓰고 노력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듣는 이들의 입장에서 ‘외워야 하는 윤리’는 교조화된(감정이 섞이지 않은) 지식일 뿐인데, 그 지식을 모욕과 함께 주입받았다면, 그것은 내가 싫어하는 지식이 되어버릴 뿐이니까.&nbsp;<br>한 가지 사례로 ‘정치적 올바름(PC)’을 들어보자. 나는 PC주의를 (속으로나마) 지지했고, 또 그 내용에 대해서는 지금도 매우 공감하는 편이다. 그리고 PC 진영의 소통 방식에 대해서도 지지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PC 진영에 대한 적개심은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고, PC의 희망을 비웃듯 세계는 극우의 광풍 앞에 불타는 촛불처럼 보인다. 마침 얼마 전 읽었던 『집단 망상』에서 이와 관련한 대목을 읽었는데, “정체성 기반 양극화는 단순한 감정적 반감뿐 아니라 혐오와 반감 같은 신체적 반응까지 포함”하며, “우리의 정치적 성향과 호불호가 이성적인 것보다는 ‘본능적인’ 것에 훨씬 더 가깝다고 한다.”(『집단 망상』 p.314) 요즘의 갈등이 올바름을 관철하기 위한 정체성 공격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는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nbsp;📚 감정 연구가 그리는 인간지금까지 나는 감정의 두 가지 속성에 대해 말했다. 하나는 감정이 태어난 이후에 구성된다는 것, 그리고 감정이 사람의 지각과 기억, 신념 형성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 아직 읽을 책이 아주 많이 남았지만, 이 두 가지 사실은 인간 이해의 열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br>첫째, 자신이 믿는 특정 신념을 타인과 공유하고 싶다면, 전달 방법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윤리를 고민할 때, 우리는 무엇이 옳은 윤리인지 고민했을 뿐 그 전달 방법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앞서 언급한 PC가 대표적이지만, 꼭 PC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극우화에서 작지 않은 위기를 느끼는 나는 이 작업이 그동안 우리가 짐작해왔던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에 가까운 수학 지식조차 전달 방법에 따라 성취도 차이가 크게 나는 마당에 소셜 미디어를 숙주 삼아 퍼지는 극우 메시지를 보라. 우리 일자리를 빼앗고 문화를 침범하는 외국인 노동자 같은 구호는,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너무나 ‘직관적’이다.&nbsp;<br>둘째, 최근 세계의 혼란을 인간 본성에 기인한 결과인 양 말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와중에, 본성론에 대한 가장 중요한 반박 논리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열쇠가 된다. 신경과학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반박이었고, 그래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과학의 성과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추가로, 깊어가는 혼란 속에서도 냉소를 거둘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이론이었다는 생각도 든다.<br>📚 덧붙임: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회색독자’여전히 나는 내 글이 설득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과학책을 읽고 떠오른 생각을 내 나름의 방법으로 인문학 영역으로까지 확장해보겠다며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지만, 이제 두 학기를 마친 학부생이 시간과 공력을 낭비해가며 화학의 모든 것을 읊어대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분도 든다.<br>그럼에도 나는 과학과 인문학을 맘대로 오가는 회색분자가 되어 보기로 했다. 과학과 인문학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과학과 인문학 그 누구도 윤리와 같은, 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그 어떤 시도도 ‘혼자’ 성공해낸 것 같지는 않아서다. 가령 21세기의 사반세기를 넘긴 지금까지도 적지 않은 인문학자들이 윤리를 현실 세계에서의 실체적 가치로 여기기보다는 윤리의 존재를 ‘논증’하는 데 몰두하는 것 같은데, 실체로서의 윤리 존재를 입증하는 방법으로 논증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지만, 논증을 통해 그것의 실체를 증명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지금 이 주제를 다루기에는 이미 너무 긴 글을 써버렸으므로,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한다).<br>과학이라고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앞서 말했듯 인간의 지각, 감정, 신념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데, 여기에서 환경은 대개 문화를 의미하더라. 앞서 잠깐 언급했던 문화-유전자 공진화론의 대표 주자 중 하나인 조지프 헨릭은 자신의 책 『호모 사피엔스』에서 문화를 “우리 모두가 성장하는 동안 주로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는 방법으로 습득하는 관행, 기법, 발견법(휴리스틱), 도구, 동기, 가치, 믿음 따위로 이루어진 커다란 덩어리”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 영역은 전통적으로 인문·사회 분야에서 다뤄왔으며, 그 분야에서 누적된 결과물만 해도 한 사람이 평생을 쏟아부어도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다. 이런 결과물을 모른 척하고 문화 연구를 하겠다는 건, 내 생각에 TV, 태블릿, 스마트폰 없이 드라마를 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nbsp;<br>이런 과학과 인문학 사이를 마음 끌리는 대로 오가는 ‘회색독자’(a.k.a 박쥐)가 되어보고 싶었고 이번 서평을 계기로 숙원처럼 남겨둔 도전을 마무리했다. 이 글에 얼마나 큰 정보값이 녹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 안에서 오랫동안 따로 놀던 과학과 인문학이 처음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nbsp;<br>그러므로 이 의미를 더욱 키워줄 다른 의견과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58/14/cover150/k062939521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6581497</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7월에 산 책: (대부분) 인간 지능과 인공지능</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82541</link><pubDate>Thu, 09 Jul 2026 14: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8254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734549&TPaperId=173825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102/56/coveroff/k182734549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834843&TPaperId=173825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266/35/coveroff/k28283484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62830659&TPaperId=173825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768/45/coveroff/k16283065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71545&TPaperId=173825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978/43/coveroff/897297154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933162&TPaperId=173825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555/2/coveroff/k042933162_2.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82541'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7월에는 사고 싶었던 책 여섯 권, 지금 아니면 데려올 수 없을 듯한 책 세 권을 책장에 들임.&nbsp;<br><br>📚 7월에 들여온 책들<br><br><br>📘『AI 지도책』요즘 관심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리스트인데(특히 사고 싶었던 책들은 더더욱), 몇몇은 아마 다른 분들도 관심이 많으셨을 것 같음. 특히 AI 관련해서 할 말이 많아지는데, 아니, 해야 할 말을 많이 쌓아두어야 할 것 같다는 쪽에 가까운데, 그래서 『AI 지도책』은 꼭 읽어봐야 할 것 같음(아니, 나한테만 왜 이렇게 늦게 나타났을까 싶었던 책). 전에 『사고외주』의 서평을 쓰면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AI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 전력이었고 AGI 수준에서는 국가의 연 단위 소비량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과연 AI의 혁신에 사회적 자원을 쏟아부어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으며, 그 사회적 결정을 위해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음. 심지어 팔란티어는 러-우 전쟁 지원을 통해 전쟁 데이터를 AI에 쏟아붓고 있다고 하는데, 사람의 결정 없이 살상 가능한 AI의 출현을 지켜볼 것 같아 대단히 우려가 됨. 대부분 언론은 성능 이야기만 떠들고 있는데, 그렇기에 지금 더더욱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늦게 들인 것 같기도 하고…).<br>📘『차별하는 데이터』얼핏 기술은 그 자체로 편향 없는 가치중립적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음. 가령 사회 통념에서 크게 빗겨선 판결이 보도될 때마다 판사의 편향을 문제삼으며 앞으로는 AI에게 재판을 맡겨야 한다는 이야기가 크게 들리는데, ‘기술=가치중립적’이란 전제가 깔려 있을 것. 하지만 문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박태웅의 AI 강의 2025』에서 소개한 네이버 뉴스 편집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편집 알고리듬을 만들기 위해 목적함수를 설정해야 하며 그 기준은 사람이 정해야 한다고 함. 입력하는 데이터의 편향성과 기술의 특성도 문제인데, 이게 바로 『차별하는 데이터』가 제기하는 문제. 가령 데이터 입력 시 인종, 성별 등 차별 요소를 제거하더라도 기계가 거주지, 소비 패턴 등 잠재된 패턴을 유추함으로써 차별로 이어진 사례가 있는데, 이는 알고리듬의 기본 공리인 상관관계와 동종선호에 기인한 것이라고 함. AI라는 기술이 편향 없는 판결을 내리게 하려면, 기술과 문화에 강렬하게 관여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관여해야 할지 고민하기 위해 들여온 책.<br>➕ 내맘대로 독서리스트1️⃣: :&nbsp; 어둠의 AI 세계, 혹은 디스토피아를 다루는 책들.    <br><br><br><br><br><br><br><br><br><br><br><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 내맘대로 독서리스트 2️⃣: AI가 흉내내기 어려운 인간 지능 특성에 관한 책까지 추가해봄    <br><br><br><br><br><br><br><br><br><br><br><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창조적 사고의 놀라운 역사』얼마 전 서평을 쓴 『사고외주』를 읽으면서 궁금해지는 것들을 따로 서치하던 와중에 AI와 관련해 반전에 가까운 정보 하나를 찾게 됨. 거의 모든 AI 모델들이 2026년 현재 시점에&nbsp; 문제가 주어진 테스트에서 인간 대비 70~80점 전후까지 점수를 올렸으나, 설명서(가이드)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직접 규칙을 알아내야 하는 시험에서는 인간 대비 0~0.4%만 해결했다는 것(기사 보러가기). 나는 전부터 ‘가설 설정’ 능력만은 AI가 인간을 쉽사리 앞서지 못할 거라고 짐작했는데(몇몇 지인에게는 직접 말하기도 했지만 기록이 없어서 너무나 아쉬움), 내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라는 생각에 혼자 흐뭇해하고 있다. 『창조적 사고의 놀라운 역사』는 얼핏 특별한 인간의 창의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게 바로 설명서 없이 규칙을 알아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들여옴.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 능력은 인간이 감정, 욕구를 가진 존재이기에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AGI의 출현에 회의적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br>➕ 내맘대로 독서리스트: 인간의 지식, 인간다움, 호기심 에 관해 설명하는 책들   <br><br><br><br><br><br>&nbsp;<br><br><br><br><br><br><br><br>📗『편견 없는 뇌』이 책은 홧김에(!) 지른 책인데, 직전에 읽은 『감정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뇌과학』에서 인용한 중요한 대목 때문임. 그 인용한 대목이란 남녀의 뇌는 (해부학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특정 감정에 대한 반응이 성차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 것. 짐작하기로는 문화에 밴 성 역할에 따른 차이가 아닐까 싶지만, 일단 『감정 뇌과학』에서는 가설을 가능성 수준에서 체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말기에 이 책을 더 읽어보기로 함. 나는 뇌과학이 사람을 이해하는 데 작지 않은 도움을 줄 거란 심증을 굳혀가는 중인데, 바로 그 점에서 『감정 뇌과학』은 참 좋았던 책.<br>➕ 내맘대로 독서리스트: 뇌가 정보(기억, 감정 등)를 구성하는 방식과 구성한 이후의 사고에 대해 말하는 책들     <br><br><br><br><br><br><br><br><br><br><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자유와 평등』존 롤스의 『정의론』에 대한 21세기적 재해석 정도로 소개되는 책. (정의라는 키워드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날로 심각해지는 불평등에 기름을 유조선째로 부어버릴 듯한 기세로 AI가 발전하는 와중에,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나름의 비전을 가져야 할 것 같아 들여옴. 대니얼 챈들러라는 경제학자/정치철학자가 쓴 책이라고 하는데(처음 들어봄), 솔직히 『정의론』 한번 안 읽고 이 책을 읽는 게 맞나 싶지만, 한편으로는 그 책을 읽을 엄두가 나질 않음(보통의 벽돌책과는 확연히 다름. 책장을 펼치면 알게 됨).<br><br>➕ 내맘대로 독서리스트:&nbsp;이 주제와 연관 있는 다른 책 추천 부탁드려요 🙇‍♂️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어머니 내게 오시네』솔직히 (특히 X라는 이름의 트위터) 초반 물량 공세 외에는 나도 고른 이유를 딱히 설명하기가 어려움. 인도 여성 인권의 대모 격인 어머니로부터 학대에 가까운 대우를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의 자전적 에세이라고 함. 나는 언젠가부터 인생의 아이러니에 굉장히 끌리기 시작했는데, 작가의 어머니가 보여준 아이러니는 그녀뿐 아니라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리고 타인의 아이러니를 껴안을 때, 우리는 결국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 거란 (다소 근거가 희박하지만, 왠지 확신해도 될 것 같은) 믿음이 생겼기 때문.<br>➕ 내맘대로 독서리스트:&nbsp;옆의 두 권은 선물 받은 에세이인데, 올해 안에는 읽기로 한다. 🤜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영국 일기』 / 『숨쉬는 과학』 / 『도시의 보이지 않는 99%』특가 코너를 돌아다니면서 담아두었던 책 두 권, 저작권 종료를 앞두고 특가에 나왔다기에 냉큼 데려온 책 한 권. 요즘 내 관심사에 관한 책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호기심에서 기차 탈선 수준으로 벗어난 책이 아니었고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구하기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아(사려고 보관함에 담아뒀다가 절판되었을 때, 심지어 중고서점에도 없을 때 황망함이란) 여유 있을 때 냉큼 들여옴. 세 권 모두 몇 페이지를 읽어봤는데, 들여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름.<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7월 책장 정리 끗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586/44/cover150/k23283081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5864440</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이제 그만 떠나보낼 때가 됐다 - [역사 삼국지 - 군웅할거에서 통일전쟁까지 184~280]</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80988</link><pubDate>Wed, 08 Jul 2026 19: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809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837900&TPaperId=173809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270/43/coveroff/k0728379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837900&TPaperId=173809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역사 삼국지 - 군웅할거에서 통일전쟁까지 184~280</a><br/>최진열 지음 / 미지북스 / 2022년 04월<br/></td></tr></table><br/>『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는 아마도 재독을 제일 많이 한 책일 거다. 고등학교 1~2학년 두 해 동안 7~8번을 읽었고 스무 살을 넘긴 후에도 적어도 2~3번은 읽었을 텐데, 이만큼 읽고 보니 조운이 조조의 강남 정벌
때 유비의 아들인 아두(유선의 아명)를 품에 안고 적진을
누비다 우연히 얻은 청명검으로 목을 벤 적장이 하후은이었다는 디테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nbsp;

시간이 지나고 편의점에서 신분증을 내어놓을 필요가 없을 때에도 『삼국지』는 내 기억 한 구석에
펼쳐놓은 자리를 뺄 기색이 없었다. 다만, 이때의 삼국지는
스펙터클보다는 미스터리에 가까웠는데, 이문열이 남긴 수많은 평론조차 놓친 팩트가 무수히 많다는 걸 알아차린
탓이다. 그렇다고 2800페이지가 넘는 『정사 삼국지』를
읽을 여력은 없어서 보낸 세월이 수십 년. 오랫동안 자외선과 비바람을 번갈아 맞은 탓에 닳을 대로 닳아
버린 삼국지 미스터리를 다시 파헤친 것은 『역사 삼국지』라는 책 덕분이었다. 전자책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한 나는 갑자기 그 시절의 열정이 솟아오르는 걸 느꼈고, 그 순간 대여해 다음 날 아침이 오거나
말거나 책을 새벽까지 읽었다. 그렇게 나는 ‘삼국지’의 세계로 다시 한번 빠져들었다.<br><br>——<br><br>일단 제일 큰 수확은 ‘팩트체크’가 체계적으로 가능했다는 점이다. 그 어떤 기록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도원결의부터 시작해 조조의 여백사 살해,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한 세기의 미녀 초선의 존재,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정말 좋아했던 전위와
허저의 낮은 존재감,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의 대활약 등등. 이
책에 정리된 ‘팩트 체크’를 일일이 정리하려면 끝이 없을
테니 여기에서 멈춘다. 1천 페이지 넘는 벽돌책을 읽는 내내,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꼈다. 『삼국지』만 읽어도 다른 오락이 필요 없던 그 시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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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이었는데, 책은
여기에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 책은 『삼국지』가 비틀어놓은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것 이상의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역사를 처음 배울 때부터 시작해 지겨워하는 것조차 지겨워진 그 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었다.

&nbsp;

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나는 『정사 삼국지』만으로 모든 ‘소설’을 바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렇지 않았다는 게 반전이었달까.
저자에 따르면 “진수의 『(정사) 삼국지』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책이 아니어서 논문을 쓰기에 적합한 사료가 아니었다”는 것이다(p.9). 실제로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송나라 때
역사가인 배송지의 주석과 『후한서』, 『자치통감』 등을 번갈아 확인해야만 했다고 한다. 이상했다. ‘정사(正史)’라는 말을 내가 잘못 이해한 걸까? 미스터리 하나를 풀었더니 더
큰 미스터리가 날 기다리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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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은 『정사 삼국지』 편찬 배경과 함께 스르륵 풀렸다. 정사를
집필한 진수의 목표는 서진(西晉)의 정통성 확보였고, 서진의 전신이었던 위, 촉, 오
가운데 위나라만을 정통으로 인정했으며, 정통성 확보에 방해되는 사실은 제외하고 띄울 만한 일은 만들어서
끼워넣었는데, 특히 사마의에 관한 서술이 그랬다. 이문열은
사마의의 수비를 뚫지 못한 제갈량을 두고 “지략이 부족했다”고
평가한 진수(『정사 삼국지』의 저자)의 서술을 그대로 인용하지만, 정작 다섯 차례 북벌 중 3차까지 제갈량과 대적한 것은 (소설에선 한끗 모자라 보이던) 조진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4~5차 북벌에서 사마의의 전적도 초라하기 짝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마의는 서진의 시조 격으로 『정사 삼국지』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고, 그렇게 제갈량 필생의 라이벌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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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보면 『정사 삼국지』는 사실을 충실히 기록했다기보다는 정통성을 국가로부터 공인받았다는
의미에서 정사(正史)로 불리는 게 타당해 보인다. 아주 조금 과장을 더해보면 정부가 홍보를 위해 운영하는 KTV 채널에
업로드된 영상 수준의 기록물이었던 거다.<br><br>——<br><br>진수가 『정사 삼국지』를 쓰던 시절이나, 그로부터
2000년이 지나 내가 책스타그램에 올릴 서평을 쓰는 지금까지 역사에 대한 논쟁은 끊이질 않는 걸 보니, 이거 하나는 정말 잘 알겠다. 어떤 이들은 ‘정확한 팩트 복원’을 역사학의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떠들지만, 결국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었다는 것이다. 그 ‘팩트 신도’들조차 자신의 논거를 강화하기 위해 팩트를 선택적으로 꺼내들거나
인과를 곡예 수준으로 끼워 맞추는 이유도 이것 때문일 거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말했던 E.H.카 선생의 통찰력은 지금에 와서 보면 눈이 부셔서
쳐다보기 어려울 만큼 밝게 빛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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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나 더. 나를 포함한 『삼국지』의 독자들에게
그 시기는 ‘영웅의 시대’였을 터. 하지만 『역사 삼국지』를 읽으면서 깨달은 진실은 중국의 역사에서 흔하디흔했던 분열과 전란의 시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거다. 별다른 문화적 성취를 찾아보기도 어려운데, 서진의
건국을 주도한 사마 씨 왕조의 정통성과 비전 부재, 여기에 무능까지 더해지면서 빠져 버린 수렁의 시간이었달까. 다시 말해 이 시대는 권력 투쟁의 장이었으며 영웅으로 칭송받던 이들은 그저 그런 기회주의자였을뿐. 그 시기에 감소한 인구만 헤아려 봐도 그 시대를 도저히 곱게 봐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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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대를 붙들고 현자 놀이를 할 일은 (이전에도
없었지만)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다른 삼국지 마니아들도
꼭 생각해보셔야 할 듯.<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270/43/cover150/k0728379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2704304</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지금 우리는 왜 맹자와 대화해야 할까? - [맹자 - 민심을 얻는 왕도정치의 고전]</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77065</link><pubDate>Mon, 06 Jul 2026 16: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7706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738380&TPaperId=1737706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67/85/coveroff/k56273838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738380&TPaperId=1737706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맹자 - 민심을 얻는 왕도정치의 고전</a><br/>맹자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01월<br/></td></tr></table><br/>이런 책을 읽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교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고, 여기에서 배울 것도 없다고 생각한 탓이다(사실 고전 자체를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적어도 ‘책 추천’에 있어서만큼은 절대적으로 믿고 보는 유시민 작가가 무려 『청춘의 독서』에서 『맹자』를 ‘자신의 인생 책’으로 소개하며 긴 감상을 썼는데도 ‘뭐 그런가 보네’ 싶었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출간될 숨은 책들을 읽을 시간이 부족한 마당에, 2,300년 전 성현의 이야기를 읽고 있을 시간은 더욱 없었다.<br>그러다 동양철학(주역이 아닙니다)의 매력에 흠뻑 빠지신 어머니께서 『맹자』 일독을 권하셨고, 몇 번을 거절하다가 끝내 펼쳐보게 됐다. 그리고 초반에는 괜히 읽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백성을 배부르게”, “군주는 인자하게” 같은, 좋은 말 대잔치로만 읽었기 때문이다.<br>하지만 괜히 ‘아성(亞聖)’으로 추앙받았던 게 아니었는지, 책장을 넘길수록 내 편견도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지가 않아서였다. 통치의 정당성,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한 실천을 구체적으로 나열한 모습에서 철학자나 사상가보다는 현실 지식인의 면모를 엿보았던 것이다. 다만, 책의 구성이 체계적이지는 않아서 해설서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렇게 『맹자 교양강의』라는 책을 함께 펼쳤고, 해설서와 함께 『맹자』를 읽었으며 떠오른 몇 가지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br><br>——<br><br>📚 맹자, ‘축의 시대’의&nbsp;당당한 주인공<br>두 책을 통해 거둔 가장 큰 수확은 공자가 창시하고 맹자가 확장한 유교 사상과 함께 동북아 지역 사람들이 ‘타인과의 공존’을 체계적으로 고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맹자의 경우, 인간이라면 지녀야 할 마음, 나라를 바로 세우는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는데, 현대적 관점에서도 타당한 대목이 많았다는 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br>동서양 철학자들의 활동 시기가 큰 차이 없이 겹치는 것도 꽤나 흥미로웠다.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동서양의 위대한 지성이 활동했던 약 기원전 900년~서기 200년 사이의 기간을 ‘축의 시대’로 지칭하는데, 종교적, 철학적 사고의 광범위한 전환이 이루어진 ‘위대한 시기’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실증적 증거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가설 수준의 개념이지만, 이런 현상이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 즉 ‘지혜로운 사람’이 따르게 될 역사적 경로 혹은 숙명은 아니었을지 궁금해진다. 혹시 이 가설이 타당하다면, 신경과학이나 심리학이 사상사에 개입할 여지가 발생하지 않을까? 딱히 정보값있는 의문은 아니지만 궁금해지긴 했다….<br><br>——<br><br>📚 탁상공론의 유교? 이게 다 오해입니다!<br>책이 내게 남긴 또 다른 메시지는 우리가 유교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조선의 망국이나 오랜 권위주의 문화 때문에 많은 이들이 유교를 ‘탁상공론’이나 ‘권위주의의 뿌리’ 정도로 여기고 있는데, 책을 읽으며 읽은 맹자의 말 가운데 이런 오해와 교집합을 이루는 그 어떤 언급도 찾을 수 없었다.&nbsp;<br>마침 『서양철학사』를 함께 읽은 덕분에 두 철학을 비교할 기회가 있었는데, 두 사상을 비교해 보면 이런 오해는 더욱 근거를 잃게 된다. 두 철학을 비교해 보자. 그리스 철학의 목표는 불완전한 현실을 넘어선 ‘완전함’이었고, 그 완전함을 형이상학✳️의 형태로 발전시켰다. 그렇게 완전함이란 이상을 꿈꾸며 탄생한 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 개념은 각각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등의 철학자에 의해 ‘유일신’으로 다시 탄생했고, 지금까지도 서양을 지배하는 주류 사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유럽은 천년 넘는 세월을 신학 중심의 질서 가운데 유지되어 왔다.<br>반면 유교의 목표는 어땠을까? 맹자에게는 당대의 혼란을 바로잡을 ‘현실의 질서’가 필요했고, 그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체계화한 결과물이 유교였다. 『맹자』에서 인(仁)이나 의(義)와 같은 구체적인 윤리 개념을 발전시켰거나, 체계적인 토지 분배법, “백성에게 일정한 생업(항산)이 없으면, 굳건한 도덕심(항심)을 유지하기 어렵다(무항산 무항심, 無恒産 無恒心 – 양혜왕 상)” 같은 발언 등을 감안하면, 유교가 ‘현실의 사상’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유교가 고도로 사변화된 것은 송대 성리학 이후였다).<br>관련해서 시대 배경을 조금 더 살펴보자. 공자는 영토확장을 위한 전쟁이 끊이지 않는 춘추시대를, 맹자는 그보다 더 혼란스러운 전국시대를 살아갔다. 이 시기의 군주들은 더 큰 힘이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착취가 이어졌다. 이 혼란을 바로잡기 위한 철학이 ‘탁상공론’이었다면, 오늘날 평화에 대한 모든 논의라고 다를 수 있을까?<br>조선시대 최고의 임금으로 손꼽히는 세종이나 정조의 정치 이상이 ‘요순시대’였던 걸 감안하면, 어떤 면에서 유교는 긍정적 유산을 남겼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의 남다른 역량과 열정에도 영향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민본’을 잊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br><br>——<br><br>📚 유교와 망국, 그리고 권위주의<br>길게 글을 쓰는 김에 ‘조선의 망국’과 ‘권위주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먼저 조선의 망국 이야기부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대런 애쓰모글루에 따르면 “권력집단이 종종 경제 발전과 번영의 원동력에 반대한다”고 말한다. 번영에 따르는 창조적 파괴로 인해 자”경제적 특혜가 사라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p.133). 구한말 조선이라고 다를까? 당시 지배계급은 번영보다는 권력 유지에 몰두했고, 가뜩이나 열강 사이에서 시달리던 조선은 번영은 꿈조차 꿀 수도 없었다. 당시 지배계급의 행태는 맹자님 말씀과는 조선과 남아프리카공화국만큼이나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br>권위주의는 어떨까? 최근 학계에서는 권위주의의 기원으로 유교보다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유입된 ‘군사문화’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권위주의적 통치 문화가 군사 독재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권위주의 또한 자리를 잡게 됐다는 것이다(「권위주의와 학연주의의 제도적 고착화 과정에 관한 연구」, 김윤호, 2020 참고). 물론 유교의 계급주의 세계관에서 권위주의를 찾을 수 있겠지만, 역사학자 심용환은 “성리학의 나라였던 조선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계급제도가 느슨한 편이었으며, 하위 계급에 대한 지배력이 절대적이지도 않았다”고 이야기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eoh7XDsVDRE&amp;t=4777s 참고). 한 예로 정조 시대의 실학자 홍대용의 경우, 10살 연하의 선비와도 말을 놓으며 허물 없이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는 당대의 주목받는 성리학자이기도 했다.&nbsp;<br>여기까지 검토했음에도 유교가 망국과 권위주의의 기원으로 여긴다면, 맹자님도&nbsp; 꽤나 억울하지 않으실까?<br><br>——<br><br>📚 지금 맹자와의 대화가 필요한 이유<br>유교에 대한 관심이 소금 한 꼬집만큼도 없었던 내가 책 두 권 읽고 열혈 유교 신도마냥 서평을 남기는 게 썩 못미덥겠지만, 내 소신(?)이 가벼워서 이러는 건 절대 아니고….&nbsp;<br>지금 현재 우리 시대상황을 돌아보자. 팔레스타인에서는 아우슈비츠를 연상시키는 학살이 일어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이제 4년이 되어간다. 선도적 민주주의 국가였던 미국에서는 ‘가짜 미국인’을 상대로 자경단이 무력을 행사한다. 정치적 갈등 때문에 반으로 나뉜 한국인들은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만 간다. 지금의 시대가 공자, 맹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가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br>나는 자신 있게 ‘다르다’고 답할 수 없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윤리’라고 생각했고, 밀쳐두기만 했던 유교를 다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혼돈의 시대를 끝내고 싶었던 맹자의 고민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고루하다는 이유로 유교를 외면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중요한 열쇠 하나를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물론 맹자의 유산이 완벽한 해법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점은 걷어내고 좋은 점을 취한다면, 중요한 해법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동료 시민들이 편견을 거두고 맹자와 대화를 나누길 바라는 이유다.<br><br>——<br><br>➕ 『맹자교양강의』의 저자가 역사상 유교 국가가 존재한 적 없는 것으로 주장한 대목에서 나는 크게 실망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변방에 불과했을지 몰라도, 조선은 그 어떤 중국의 왕조보다 투철한 성리학 국가였으니까.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말이다.<br>&nbsp;<br>✳️ 형이상학: 존재의 보편적 원리와 형식에 대한 철학 이론<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967/85/cover150/k56273838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9678515</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책을 이렇게 좋아할 수 있다고? - [읽는 감각 - 읽지 않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책을 사랑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73266</link><pubDate>Sat, 04 Jul 2026 13: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7326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130871&TPaperId=173732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7/86/coveroff/k3721308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130871&TPaperId=1737326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읽는 감각 - 읽지 않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책을 사랑하는가</a><br/>정도성 지음 / 투래빗 / 2026년 06월<br/></td></tr></table><br/>✳️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했습니다.<br>⠀얼마 전 『적독 생활』 서평에도 썼지만, 읽은 책이 쌓이면 책짐이 되고, 책짐이 커지면서 읽기의 바깥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됐다. 나는 여전히 ‘읽기’의 비중이 압도적이지만, 책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 덕분에 이제는 ‘소울메이트’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 정도로. 만만치 않은 일정에도 『읽는 감각』 서평단 신청을 했던 것도 그래서였는데, ‘읽지 않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책을 사랑하는가’라는 부제를 보면서 다른 이들이 책을 사랑하는 방식이 몹시 궁금해진 것이다.⠀그렇게 『읽는 감각』을 읽었는데, 아, 웬걸, 솔직히 조금 당황했다. 나와 저자의 책 사랑 방식이 점점 멀어지는 좌우파 정치 세력의 거리보다 더 먼 느낌을 받은 탓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러나 저러나 결국 ‘읽기’ 없는 책을 상상할 수 없고, 앞서 말한 소소한 즐거움은 읽기란 큰 줄기에서 뻗어나온 잔가지 정도에 불과했는데, 『읽는 감각』이 책을 다루는 방식은 그 자체로 독립된 소품에 가까웠다. ‘좋고 싫음’이 아닌 ‘낯설음’의 문제였지만, 어쨌든 당황한 건 사실이었다.⠀——⠀그렇다고 의미 없는 독서였다는 건 아니니 오해는 말아주시길. 어렴풋하게만 알았던 읽기 바깥 세상을 둘러본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었으니까. 정보를 담은 매체로서의 책이 아닌, 물건으로서의 책에서 느낄 수 있는 거의 모든 감각을 망라한 듯한 『읽는 감각』은 지구 탐험 안내서였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만난 신세계란 이런 것이다. 가령 저자에게 서점, 특히 동네서점은 ‘체험의 공간’이다. “독자가 이 책을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함께 읽기를 바라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허허, 서점이 책을 사는 공간이 아니었다구요?⠀저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현한 공간으로 세 개의 서점을 소개한다. 제일 먼저 소개된 일본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의 답은 ‘컨시어지’다. 이곳은 컨시어지가 먼저 깊이 읽고 책을 엄선해 독자에게 추천한다고 한다. 이런 경험은 독자에게 뜻밖의 책을 만날 기회인 동시에 함께 책을 찾는 경험을 안겨주게 된다고. 한편, 서울 연남동의 서점 리댁션(Readaction)은 ‘Read’와 ‘Action’을 붙여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 “Lead Life, Read Action”, 즉 “삶을 리드하기 위해 (나 또는 책을) 읽고 실행하자”라는 슬로건 아래, 읽은 것을 실천하기 위한 (워크숍에 가까운) 독서모임 등을 정기적으로 운영한다. 한편, 저자가 직접 운영했던 서점 ‘서사’의 이야기도 있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나만의 서사를 찾아가는 공간”으로 정의한 저자는 공간 곳곳에 오래 머물 수 있는 디테일(의자와 테이블 높이 등)을 심어두었다. 지금은 여러 종류의 독서 모임이 진행되면서, 책으로 연결되는 체험을 제공한다고 한다(다른 건 몰라도, ‘연결 경험’은 정말 좋은 것 같다. 나도 책 수다를 좋아한다).⠀사실 이런 변화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기는 했다. 가령 소셜 미디어의 책 계정을 보면, 저자가 언급한 종이, 무게, 디자인 등 책을 일상의 감각으로 들여오는 모습이 확연히 늘어난 게 체감될 정도다. 리커버 에디션을 출시하는 출판사, 이제는 없으면 아쉬울 온라인 서점의 굿즈 코너 등을 볼 때, 책은 이제 생산-유통-소비 모든 단계에서 매체인 동시에 소품이 되어가고 있었던 거다.<br>——<br>나는 예전 서평에서 독서 경험이라는 말을 자주 썼는데, 그 경험이란 책의 메시지를 따라가며 저자와 대화하는, 텍스트에 한정된 경험이었다. 책을 읽는 이유도 성장보다는 세계 탐구에 가까운 데다, 몰랐던 걸 알게 되었을 때 도파민이 뇌를 적시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 다시 책을 읽게 하는 순환고리가 모 스포츠협회의 카르텔만큼이나 단단하다 보니, 『읽는 감각』이 펼쳐놓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담글 가능성이 그리 크진 않을 것 같다.⠀그렇다고 이런 변화가 불만이냐면, 딱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독서율은 하루가 다르게 낮아지는 와중에, 책 외에도 우리가 소비하는 거의 모든 제품이 감각 경험을 제공하는 시대에, 독자 나아가 출판사들이 변하는 걸 탓해봐야 변화를 거부하다 단두대에 오른 ‘왕당파’밖에 더 되겠나. 도리어 새로운 독자 덕분에 지금까지 좋은 책이 계속 출간되고 있으니, 그분들께 감사해하면서 내 방식대로 책을 즐기면 될 일이겠지. 아니, 책을 다르게 감각해주시는 분들이 더 늘어나서 출판 시장이 “단군 이래 최초로 전년 대비 성장 기록!” 이런 뉴스를 듣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읽기의 바깥에서 책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분들이라면 『읽는 감각』은 내가 『적독 생활』에서 느꼈던 것과 흡사한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 같다.<br><br>——⠀⠀덧. 아! 그러고 보니 『거의 모든 것의 역사 2.0』과 『유혹하는 글쓰기』 개정판은 사고 싶긴 했다. 구시대의 유물도 새 시대의 빛을 피할 수는 없나 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7/86/cover150/k3721308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078646</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AI한테 멱살 잡히지는 맙시다 - [사고외주 -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68914</link><pubDate>Wed, 01 Jul 2026 23: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689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0873&TPaperId=173689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8/96/coveroff/k5521308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0873&TPaperId=173689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고외주 -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a><br/>홍진기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했습니다.⠀지난 6월 1일 업로드한 『뇌 과학의 모든 역사』 서평에서 말했듯이 나는 인공지능(AI)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편이다. 인간 지능(자연지능)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않은 와중에, 인간 지능의 어떤 강약점을 뛰어넘고 보완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와중에, 어쨌든 다 해내겠다는 AI 회사들의 자신감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나는 AI의 성능 향상보다도 오히려 AI의 출시 이후부터 지금까지 일어날 변화들이 좀 걱정스럽다. 일자리 축소리든지 과제 작성 시 높아지는 AI 의존도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이런 변화가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을 대체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AI 개발사들의 희망사항을 필터링 없이 수용하고 그들의 입지를 꾹꾹 다져주는 현상 같아 마음이 좀 꺼림칙해진다.몇몇 돈 많은 너드(Nerd)에게 인류의 미래를 맡기는 것 같아서 더 그렇다.⠀“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뒤따를 텐데, 나는 AI의 발전 속도보다는 쓰임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럼 또 “무엇을, 어떻게?”라고 묻는 이들이 있겠지? 그분들을 위해 내가 『사고외주』(@across_book)를 먼저 읽어봤고, 꼭 한번 같이 읽어보자고 권해야겠다.⠀——⠀“이렇게 답이 빨리 나오는 시대에 우리가 왜 굳이 힘들게 생각해야 하나요?” 언뜻 그럴 듯해 보이는 질문이 『사고외주』의 문제 의식이다. 사실 무작정 답을 내놓기도 애매한 것이, 어떤 작업은 정말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운영 결과보고서를 자주 작성하는데, 며칠이 걸리던 초안을 몇 분 안에 그럴 듯하게 해내는 걸 보면, 안 쓰는 사람이 도태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사고외주』는 (‘답정너’의 뉘앙스가 또렷하게 담긴) 이 질문에 다른 답을 내어놓는데, 나는 그 답을 “이것저것 다 맡기다 보면 도태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정도로 요약해보겠다. 어떤 영역에서 AI는 분명 인간의 능력을 아득히 넘어서지만, AI에게 맡길 수 없는 영역이 있으며, 정작 미래에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수행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그래서 그 능력이 무어냐면, 저자는 정체성, 욕망, 윤리를 꼽는다. 여기에서 조금 적극적으로 행간을 읽어보면, 나는 문제 설정과 해결책의 적합성 도출에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내가 누구인지, 무얼 원하는지 알아야 문제(question)를 설정할 수 있고, 그 해법이 문제(problem)를 일으키지는 않는지를 판단하는 것만큼은 AI가 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자의 경우, 명시적인 문제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 AI의 해결 능력이 인간 대비 0.1% 수준에 불과하다는 연구가 있었으며, 후자의 경우 개발자의 성향이 알고리즘에 반영될 수 있다는 점에서(알릴레오북스 최태웅 의장 편 참고) ‘AI에게 맡겨서는 안 될’ 일일 것이다(이미지에서 트롤리 딜레마에 대한 AI 답변 참고).⠀——⠀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렇게 답이 빨리 나오는 시대에 우리가 왜 굳이 힘들게 생각해야 할까? 저자의 답은 ‘그렇다’이고, 나도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자신 있게 답하기에는 몇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가령 AI의 활용에 따른 ‘인지적 부담 덜기’1️⃣가 비판/반성/분석 추론 능력의 저하를 유도하는 것은 대체로 입증되었으나, 도구가 AI인 경우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라는 점이다. 현재 AI 활용과 사고력 저하 사이의 인과 방향이 확인되지 않았고(현재는 상관관계까지만 확인), 상관 관계를 확인한 연구 공통으로 AI의 사용 방식에 따라 오히려 추론 능력 향상될 수 있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A근거 문헌 확인 완료).⠀다만, AI 시대에 필요한 인간 능력의 향상을 위해 이 책에서 소개한 방법들은 소개한 방법들은 실제로 입증된 방법인 만큼, ‘대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고 싶다면 『사고외주』를 꼭 읽어보는 게 좋겠다. 참고로 책에는 없지만, (비판적) 독서도 사고력 향상에 괜찮은 방법이라고 하니, 이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br>——<br>1️⃣ 인지적 부담 덜기(cognitive offloading): 외부 도구를 사용해 정보를 저장하거나 처리함으로써 내부 인지 자원을 절약하는 것⠀덧 1. 참고문헌을 표기해주었다면 더 깊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책의 분량 때문인지 실리지 않은 점이 아쉽다.⠀덧 2. 나는 인공지능을 공부할 때 뇌과학 분야의 책을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업계의 현재를 객관적으로 살피는 데 큰 도움을 주는 것 같다(업계 종사자에게 투자 유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8/96/cover150/k5521308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089663</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던 이유 - [니체를 쓰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62448</link><pubDate>Mon, 29 Jun 2026 17: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624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5861745&TPaperId=173624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22/27/coveroff/895586174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5861745&TPaperId=173624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니체를 쓰다</a><br/>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3년 02월<br/></td></tr></table><br/>20대 시절, 나는 니체라는 바다 한가운데 빠져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오른손에는 망치를 들고서 세상의 가치를 모두 부숴버리는(써놓고 나니 얼굴을 들 수가 없네). 지금 생각하면 대단히 부끄럽긴 하지만, 그 또한 내 일부였다는 걸 애써 지우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때 나는 (그때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우울감이 절정에 다다랐고, 니체의 철학은 최선의 돌파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2500년 가까이 세계를 억압해온 객관적 질서를 전복하는 차이의 철학, 운명을 긍정하며 스스로 가치를 창조해내는 초인(위버멘쉬)의 철학. 나를 홀려버린 니체의 철학이었다. 극에 달했던 정신적 방황을 니체의 철학과 함께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마침 완역되었던 니체 전집(책세상 판)을 사서 경전처럼 읽던 시절이었다.⠀시간이 오래 지났다. 그동안 우울감은 현대 의학이 도움을 받아 어느 정도 극복했고 방황도 그럭저럭 잠재웠지만, 여기에 니체 철학의 기여도가 얼마나 큰지는 모르겠다. 세상 일 때문에 철학을 진지하게 파고들 겨를이 없었고, 니체가 남긴 흔적도 세월의 바람과 함께 희미해졌으니까. 그런 와중에 『니체를 쓰다』 서평을 읽었고, 문득 니체를 파고들었던 그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니체는 어떻게 다가올지, 지금의 나는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그들 모두는 확고하고 분명한 걸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길을 나아가는 데 반해, 니체는 항상 쫓기면서 자신도 모르는 길로 접어들곤 했다. 이런 이유로 니체의 인식의 역사는(돈 후안의 모험처럼) 완전히 극적으로 형성되었고, 위험하고 놀라운 에피소드의 연속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끊임없는 흥분의 도가니속에서 돌발적 급전으로부터 더 높은 단계로 뛰어 오르다가, 결국에는 바닥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떨어져버리는 하나의 비극이었다.” p.57⠀『니체를 쓰다』에서 다시 만난 니체는 여전히 서양 세계를 규정지은 질서를 깨부수며 새로움을 탐닉하던 철학자였으며, 그의 철학은 언뜻 규격 바깥의 세계(혹은 사람)를 무시하면서 생겨나는 모순을 지적한 『평균의 종말』의 메시지와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그의 철학에 다시 한번 주목할 수도 있었겠으나, 결국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인식이라는 것에서 “맹안盲眼은 오류가 아니라 비겁”이고, 선한 마음은 범죄인 것이다. 왜냐하면 수치와 아픔을 고려하고, 알몸의 절규나 추함에 대해 두려워하는 자는 결코 마지막 비밀을 밝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종 한계까지 가지 않는 진리, 철저함이 결여된 진실성은 윤리적 가치를 갖지 못한다. 이 때문에 니체의 엄격함은 태만이나 소심한 사고로부터 결단을 위한 성스러운 의무를 소홀히 하던 모든 자들과 대립하게 되었다.” p.72⠀적어도 이 책에서 내가 읽은 니체는 더 나은 것, 더 높고 위대한 것을 갈망하는 철학자였다. 다시 말해, 그가 추구했던 차이는 질서에서 소외된 약자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철학은 위대함을 위해 투쟁하는 개인(초인)을 위한 것이었을 뿐, 공존하는 세계를 지지하지 않는다. 니체가 ‘파시스트’였다는 일부 평론가의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는 츠바이크가 그린 니체(와 그의 철학)를 강자의 언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그가 자신의 철학을 예술의 테두리에 가둬두었다면, 이 책을 읽으며 20대 시절에 보냈던 공감을 온전히 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삶이 예술보다 더 크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되었고, 초인이 될 수 없는, 혹은 되지 않으려는 삶 또한 긍정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때와 다른 나는 “선한 마음은 범죄”가 되고, “수치나 아픔을 고려하고” “추함에 대해 두려워하는 자는 결코 마지막 비밀을 밝혀내지 못하는” 그의 철학에서 더는 이정표를 찾을 수가 없었다.⠀『니체를 쓰다』 속 니체와 그의 철학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격정적인 문체를 만나, 특유의 아우라를 뿜어낸다. 그 어느 책보다 또렷한 니체를 나에게 데려다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또렷하게 내 앞에 나타난 니체의 초인 때문에 나는 니체에게서 여러 발짝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초인이 되기에는 버거운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니체를 쓰다』는 좋은 책이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작가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저 내가 변했을 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22/27/cover150/895586174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222796</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원전 번역본) - 톨스토이 단편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58930</link><pubDate>Sat, 27 Jun 2026 22: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5893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738584&TPaperId=173589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266/28/coveroff/k71273858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738584&TPaperId=1735893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원전 번역본) - 톨스토이 단편선</a><br/>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홍대화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02월<br/></td></tr></table><br/>현대지성 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실린 작품 대부분은 종교 세계관에 바탕해 쓰였다. 그런데 하필 그 종교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물의를 일으키는 바람에 서평을 비아냥으로 꽉꽉 채워두겠다고 마음먹었지만(‘요즘 그 종교인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톨스토이의 신앙이 아무리 깊었어도 차마 이런 소설을 쓰지는 못했을 것’ 같은…), 표제작이자 첫 번째 수록 작품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기 전부터 그런 마음을 제쳐두었다. 작가의 솜씨인지, 소재의 강력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 작품에서 구두수선공 세묜이 이름 모를 청년을 추위에서 구했던 그 선행을 읽으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온기가 차오르는 걸 느꼈던 것이다.⠀그렇다. 이 책은 조건 없는 선행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이야기이다. 세묜을 비롯해 자신의 가게에 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준 제화공 아브제이치(「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있다」), 가족을 믿음으로 대했던 옐리세이(「두 노인」), 형들과 달리 도깨비의 꾐에 넘어가지도 않았으며, 도리어 타락한 형들에게 바보같이 내어주었던 이반(「바보 이반」), 은수자에게 도움을 주었던 황제(「세 가지 질문」)는 자신의 것을 모두 거리낌 없이 나눠주었고 이들 모두 어떤 형태로든 구원을 받으면서 이야기들은 마무리된다.⠀냉소를 머금고 보면 이 모든 이야기가 세상에 없는 동화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선의보다는 욕망으로 가득 차있는, 그래서 온갖 충돌이 일어나는 지금 냉소 하나를 보태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이들의 구원을 다르게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들이 선행을 실천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선행 그 자체가 구원이었다고 말이다. 구원의 성격은 「세 가지 질문」에서 잘 나타나는데, 황제가 힘겨워하는 은수자를 돕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면, 다른 세계선에서 황제는 ‘선행을 베풀던 그 시간’에 미리 매복해있던 원수의 가족에게 복수를 당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톨스토이의 구원은 인과가 아니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으로 읽었다는 이야기다.⠀지금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하지만, 톨스토이가 살았던 시대라고 크게 다르진 않았을 거다. 급격한 산업화, 열강의 충돌,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 차르까지, 어쩌면 그가 살던 러시아의 혼란은 지금보다 덜하진 않았을 터. 그런 시대에 살았던 톨스토이가 이런 작품들을 발표한 것은, 인류가 서로 사랑하기를 바랐던 자신의 희망을, (신의 의지를 빌어) 세상에 전한 것 아니었을까? 15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이야기가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도 그런 톨스토이의 희망이 담겨 있기 때문은 아닐까? 내 희망을 과하게 투영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감상을 남기고 싶었다. 연대, 배려, 사랑을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요즘, 이 소설이 도도한 흐름을 돌려세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이 책을 이렇게 읽어서였을까?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끼어 있던 냉소는 「바보 이반」의 세 도깨비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266/28/cover150/k71273858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2662801</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언제나 궁금한 애서가의 책 생활 - [적독 생활 - 다 읽지도 못할 거면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53820</link><pubDate>Thu, 25 Jun 2026 00: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5382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7354&TPaperId=173538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18/31/coveroff/k04213735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7354&TPaperId=1735382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적독 생활 - 다 읽지도 못할 거면서</a><br/>타이키 라이토 핌 지음, 정아영 옮김 / 서해문집 / 2026년 04월<br/></td></tr></table><br/>모든 애독가가 애서가인 것은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겠지만, 애서가는 애독가일 가능성이 아무래도 높지 않을까? 정말 필요한 책을 제외하면 대부분 빌려 보던 이들이 문득 짧은 대출 기간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렇게 책을 한권 두권 사다 보니 아니 이게 웬걸, 사고 싶은 책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깨달음을 득한 후로는 자기 읽는 속도는 안중에 없이 책을 사들이면서 결국 집은 어느새 책 창고가 되어버리는 과정. 내가 애서가가 된 과정인데, 아마 다른 애서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을 거쳐왔으리라.⠀재미있는 것은 애독가에서 애서가가 되는 과정에서 책의 성격이 변한다는 것이다. 초보 애독가 시절, 나에게 책은 ‘읽으면 좋은 것’ ‘읽어야 하는 것’이었다면, 애독가 경력을 나름 적지 않게 쌓은 지금은, 다음 달 장바구니에 골라 넣어야 할 고민거리,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훌륭한 구경거리, 내 지적 성향을 보여주는 수집품, 읽은 책에 대해서는 지적 허영을 뽐내게 해주는 자랑거리, (사실과 달리) 박식함을 전시하는 인테리어까지, 책은 단순히 정보 전달을 아득히 넘어서는, 천하무적 만능 아이템이 되어버렸다.⠀다만 하나 결정적인 아쉬움이 있다면 내 덕질을 소재로 함께 떠들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적독 생활』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냉큼 주문한 것도 그래서였다. 책 수다에 대한 갈망을 이렇게라도 풀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되어 소구 포인트를 정확히 채워준 것이다. 반갑지 않을 수가 있을까.⠀특히 마음을 꺼내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공감이 갔던 대목을 요약해보면 이런 것들이다. 필요한 책만 얼른 사서 나오겠다는 마음을 아무리 굳게 먹어도 그럴 수 없는 우리 종족의 (아마도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할) 버릇, 필요한 책을 집에 가지고 있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책에서는 이 감정을 낭만으로 표현했지만, 크게 다른 감정은 아닐듯), 과제 때문에 꼭 읽어야 할 책은 이상하게도 꼭 미뤄두는 습관, 읽던 책을 마무리하고 새로 읽을 책을 고르는 데 몇 날 며칠이 걸리는 우유부단함(모든 책이 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사야 할 책이 늘어나는 탐욕(?)까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내 습관을 신묘한 무당처럼 지적하는데, 책을 읽는 내내 가지지 않아도 될 양심의 가책과 공감의 사이를 오가느라 무척 바쁘면서도 무척 즐거웠다는 이야기.⠀단 하나, 아쉬웠던 것은 이 책을 쓴 독자 집단이 그렇게 쌓아놓은 책을 공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만 그런지는 몰라도, 남이 읽는 책, 남이 채워놓은 책장이 그렇게 궁금하고, 또 엿보는 과정이 즐거운 사람인데 그 과정이 생략되어서 무척 아쉬웠던 것이다. 그래서 내 거실 책장을 구역별로 나눠 보여주는 것도 나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궁금한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혼자 북 치고 장구치는 것만큼 민망한 일은 없으니까. 혹시 궁금한 분이 계신다면, 댓글에 남겨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서평 끝.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18/31/cover150/k04213735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183180</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평균의 폭력을 해부하다 - [평균의 종말 -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52507</link><pubDate>Wed, 24 Jun 2026 13: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5250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95875&TPaperId=173525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418/5/coveroff/895099587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0995875&TPaperId=1735250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평균의 종말 -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a><br/>토드 로즈 지음, 정미나 옮김, 이우일 감수 / 21세기북스 / 2021년 06월<br/></td></tr></table><br/>요즘 뇌과학 서적을 자주 읽으면서 귀가 닳도록, 아니 눈이 닳도록 눈에 띄는 부분이 있는데, 인간 인지 능력의 한계에 관한 것이다. 인공지능과 달리 인간의 뇌는 입력된 정보(자극)를 모두 처리하지 않는데, 우리 뇌가 가뜩이나 코끼리가 물을 마시듯 열량을 먹어치우는 마당에 주변의 모든 자극을 처리한다면 터져나갈 게 분명하다. 터진 뇌가 없지 않느냐고 먼저 물어볼까봐 얼른 답하자면, 입력된 모든 정보를 처리하는 인공지능의 전력 소모량을 보면 되겠다. 사람이 불완전한 정보의 빈틈을 메우는 이 과정을 ‘예측 처리(predictive processing)’ 또는 ‘예측 부호화(predictive coding)’라고 부른다.⠀『평균의 종말』을 다 읽은 나는 이 책이 다룬 평균 개념을 곱씹어보았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아! 평균 개념을 몰랐다는 게 아니니 오해는 말아주시길(확률·통계가 어렵긴 했다. 그것도 매우 많이). 저자가 제목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낸 목표, 즉 종말시키고자 한 평균(또는 평균주의)이 아주 익숙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뇌과학 책에서는 기시감 또한 예측 처리의 여러 결과 중 하나라고 말하는데, 혹시 나도 뭘 잘못 본 건 아닐까?⠀이 책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평균에 관한 이야기이고, 평균에서 시작해 평균으로 끝난다. 책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다. 주의할 것은 평균을 곱게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끝장을 내고 싶은 쪽에 가까운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는 평균 바깥을 바라볼 때가 되었다는 거다. 저자는 평균이 일군 공헌을 다짜고짜 부인하지는 않는다. 너무나 거대해서 도저히 알아낼 수 없었던 세계의 많은 일들을, 평균의 탄생과 함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정치인들은 평균 덕분에 시민이 무얼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었고, 가격을 매길 수 있었다. 정치 경제 행정 사회 과학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평균은 마법의 힘을 발휘했다. 저자가 평균의 공헌을 부인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책을 덮었을 거다.⠀책을 덮지 않았던 것은 저자의 평균 비판, 정확하게는 평균의 공헌만큼이나 중요한 평균의 빈틈을 날카롭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책의 서문에 소개된 예부터 강렬했는데, 1940년대 말 이상할 정도로 잦은 전투기 추락 사고 때문에 골치를 앓던 미국 공군이 찾은 원인이 바로 평균이었던 것이다. 당시 전투기의 조종석은 조종사 신체 평균 치수에 맞춰 생산됐는데, 아니 당장 자동차 시트조차 위치가 바뀌면 운전이 어려워지는 마당에 전투기 조종은 말해 뭐할까. 여기에서 더 재미있는 사실은? 평균에 해당하는 인원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거다.⠀저자 자신의 이야기는 ‘평균의 비극’처럼 느껴질 정도다. ADHD 진단을 받은 저자는 친구들의 따돌림과 선생님의 무관심 가운데 낙제점을 받아 고등학교를 중퇴해야 했다. 철저히 평균에 기반해 설계된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문제아이자 낙오자였던 그가 십수년 후에 하버드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 교수가 되었다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ADHD인의 멋진 개과천선 스토리? 학교가 품지 못한 평균 바깥 아이들의 이야기? 그는 버림 받듯 평균의 전당인 학교를 그만둬야 했지만, 어느 순간 자신에게 최적화된 학습법을 깨달았고, 이후 학창시절과 달리 공부에 대한 열의가 불타올랐다. 그렇게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일 때문에 야간 강의를 들으며 대학을 졸업했으며, 하버드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리고 끝내 하버드 교육대학원 교수가 됐다. 이러한 인생 경로를 걸어온 저자는 자신처럼 평균 바깥에서 가능성을 찾지 못했던 이들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꼬리를 물던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니 서두에서 느낀 기시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예측 처리가 만들었던 정보의 빈틈을 개개인이 인지하지 못했듯 평균이 만든 사회의 빈틈을 우리 또한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랬기에 내게 예측 처리와 평균은 서로의 존재를 모르던 쌍둥이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렇게 알 듯 말듯한 기시감을 걷어낸 채로 책을 덮었다. 하지만 기시감이 남긴 답답함은 같은 자리에 남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br><br>각해보면, 사람 개개인의 뇌가 만들어낸 빈틈은 과학, 나아가 학문을 통해 완전하진 않더라도 상당부분 보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사회의 빈틈은? 이걸 메울 방법이 있을까? 저자는 8장에서 학생들의 재능을 빠르게 발견하고 그에 맞는 특성화 교육을 실시한다는 대안을 제시했지만, 솔직히 이 대안이 이상론처럼 느껴진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특히 평균적 경로 의존 성향이 뚜렷하고 강력한 우리나라에선 더더욱 그럴 것이다.⠀그러나 설익은 대안이 이 책의 가치를 낮추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사람들에게 평균의 빈틈을 알렸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자기 할 일을 충분히 해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418/5/cover150/89509958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4180509</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페이퍼</category><title>우리가 놓친 세종의 진면목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48932</link><pubDate>Mon, 22 Jun 2026 14: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4893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733375&TPaperId=173489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436/10/coveroff/k60273337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931216&TPaperId=173489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180/39/coveroff/k58293121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7754X&TPaperId=173489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0/71/coveroff/890107754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br><br><br><br><br><br><br><br><br><br><br><br><br>세종대왕에 관한 책은 읽을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데, 그의 행적을 현대적 리더십으로만 해석하기 때문이다. 대개 세종대왕께서 그 누구보다 공부도 열심히 하시고, 남의 이야기는 잘 들으시며, 천재적인 학습 능력으로 한글까지 만들어냈다는 서술에 그치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이 위대하다는 사실은 잘 알겠다. 잘 알겠는데, 사실 그 정도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만 따라 부를 줄 알아도 꿰고 있는 사실 아닌지.&nbsp;<br>아쉬운 걸 넘어 ‘불호’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책들도 있으니, 그에게서 회사 경영의 리더십을 발견하는 책들이다. 세종대왕이 이윤 창출을 위해 권력을 쓰는 모습을 상상해봤는데, 그려지질 않는다. 유교와 비즈니스는 세계관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 내 생각에 후손들이 그런 모습을 그려봤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세종대왕이 ‘불경하다’며 불같이 화를 낼 것 같다.<br>『세종대왕실록』 또한 앞서 읽었던 세종의 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실록 요약에서 세종의 행적을 상세히 다뤘다는 것은 장점이었지만, 신하들의 일대기와 논평이 정작 책의 주인공인 세종의 분량보다 더 많은 것이 그 장점을 상쇄하고 말았다. 이 책 역시 내가 읽고 싶었던 ‘그 책’은 아니었다.&nbsp;<br>-----<br>아쉬운 마음에 박시백 화백의 『조선왕조실록』 세종·문종 편을 급하게 꺼내 읽었는데, 단순 나열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세종대왕실록』보다는 좋았던 것 같다. 청소년을 위한 학습 만화임에도 한글 창제나 과학기술 발달, 궁중음악 정비 등의 성과가 무엇을 계기로 어떤 과정을 거치며 이루어졌는지 상세히 서술했는데, 이 점이 세종의 통치에 입체성을 더했달까. 개인적으로는 이 책 덕분에 만원권 지폐 밖에서 살아 움직이는 세종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br>하지만 이 책에도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는데, 일단 청소년 학습 만화인 탓인지 세종의 업적이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부각되었다는 점이 그랬다. 대군 시절부터 책벌레로서 유교 경전을 꿰고 살았던 임금이라기엔 너무나 단순한 설명이었달까. 게다가 부민고소금지법 관련 대목에선 현대적 관점을 지나치게 투영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유교적 상하관계의 수립이란 관점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하극상으로 인해 극심했던 고려사회의 혼란, 중앙에서 파견한 지방관이 지방 출신 아전을 통제하지 못했던 배경까지 아울렀다면 그 서술이 입체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nbsp;<br><br>📚 식민사관을 넘어&nbsp;<br>그래서 대체 어떤 책을 읽고 싶어서 이러는 거냐고 묻고 싶은 분들께 드리는 답변은 이런 것이다. 나는 세종의 업적이 그의 통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 업적을 그 철학에 기반해 해설하는 책을 기다렸다. 재위 후반기에 불교 친화적인 모습이 잦아지면서 신하들과 충돌하기도 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철저한 유교적 이상 국가를 완성하는 것이 세종의 최종 목표였다. 그렇다면 그의 업적은 유교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는 없는지 궁금해졌고, 그의 통치를 통해 유교를 지금과는 다르게 바라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br>어떤 분들은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굳이 지금 유교의 다른 면모를 고민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 반문에 나는 이런 답을 내어놓고 싶은데, 하나는 세종의 시대와 유교를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인 대부분은 유교를 청산해야 할 구시대의 유물 정도로 취급하지만, 사실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존경받는 세종의 사상적 기반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런 취급이 꽤나 부당해 보인다. 게다가 세종이 유교를 기반으로 한글 창제,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과학기술 발달, 국방력 강화 등을 일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br><br>📚 유교 때문에 망한 조선?⠀최근 들어 유교의 전근대성과 경직성을 이유로 조선의 존재(또는 정통성)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유교의 후진성이 민중의 부양을 방해한 동시에 그들을 억압했으며, 그것을 국시로 삼은 조선은 비문명국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중 몇몇은 이런 논리로 근대화 실패, 나아가 한일합방의 책임까지 유교와 (세종을 포함한) 조선 왕조에 추궁한다. 이들에게는 유교가 제국주의 이상의 적폐였던 것이다. 마치 식민 지배를 피지배민족의 무능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은 논리인데, 혹시 이거, ‘식민사관’으로 부르기로 하지 않았던가?⠀약육강식의 세계질서가 재현될 조짐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런 식민사관을 내면화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 어이없어서, 마시던 커피가 비강으로 넘어올 지경이다. 양보해서 ‘유교=구시대 유물’이란 고정관념까지야 이해할 여지가 있다 치더라도 말이다. 세종과 유교가 시대에 미친 영향을 보다 정확하고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더욱 필요해진 것도 그래서다. 힘의 논리가 전부였던 시대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서평을 쓰다 보니 읽은 책보다 다른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책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정리한 셈 치려고 한다. 만원권 지폐 밖에서 살아 있는 사유의 대상으로서 세종과 유교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덧. 이어서 『세종의 선택』이란 책을 읽고 있다(대체 병렬로 몇 권을 읽는 건지). 이런저런 정책의 시행 배경을 두 책보다 깊게 파고든 덕분에 당시의 조선과 세종이란 사람이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수확 하나는, 세종 치세의 조선이 결코 태평성대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것이다. 기후 이상으로 인한 흉년, 전염병 등등 별별 자연재해가 정말 잦았고, 세종은 끊임없이 대처하는 와중에 나라의 기틀까지 세워갔다. 이러니 조선 왕들이 장수할 리가 있겠나 싶어지는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70/71/cover150/89010775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07115</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권력과 진보 - [권력과 진보 -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 2024 노벨경제학상 수상작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48912</link><pubDate>Mon, 22 Jun 2026 14: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489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833258&TPaperId=173489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953/94/coveroff/k42283325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833258&TPaperId=173489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권력과 진보 -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 2024 노벨경제학상 수상작가</a><br/>대런 애쓰모글루.사이먼 존슨 지음, 김승진 옮김 / 생각의힘 / 2023년 06월<br/></td></tr></table><br/>AI로 인한 일자리 감소 때문에 온 세계가 난리인데, 이 책에 따르면 이런 사태가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산업혁명기의 고용 충격은 지금보다 크면 컸지 결코 작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산업혁명 시절부터 자본가는 노동자를 가능한 한 배제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산업혁명기는 이 노력이 결실(?)을 맺은 (아마도) 최초의 시기인 것이다.⠀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 자본가들의 성향은 이제나 저제나 한결같은데, 자본가가 노동자와 함께 부흥했던 60~70년대 자본주의 황금기는 대체 어디서 뚝 떨어진 황금알이었을까? 그냥 지구인, 아니 노동자의 운세가 좋았던 걸까? 그렇다면 AI 시대에 우리 노동자들의 운은 이대로 다해버린 걸까?⠀그럴 리는 당연히 없고, 책에서 제시하는 대답은 ‘기술 발전의 방향’이다. 예를 들어 생산성의 혁명을 불러온 1910년대 ‘포드 혁명’은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을 사회가 ‘노동 친화적’으로 합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후 60~70년대에 맞이한 (너도 나도 잘 사는)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기술의 발전이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게 책의 주장이다. 참고로 그 사회적 합의의 주체 중 하나는 ‘노조’이며, 저자는 귀에 못이 박힐 때까지 노조의 필요성을 반복한다(세상의 모든 책이 그런 것처럼, 저자는 수백 년 동안 축적된 역사적 자료를 발굴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저자 선생님 이야기 잘 알겠고, 그래서 AI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는 대체 뭘 해야 할까? 사실 위의 언급이 거의 해답지 수준으로 답을 내어놓아서 굳이 생각할 필요조차 없어 보일 지경인데, 문제는 사회적 환경을 떠올릴 때마다 명치 한가운데서 깊은 한숨만 나온다는 것이다. 이 한숨 때문에 더 많은 분들, 아니 정말 많은 분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되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953/94/cover150/k42283325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9539452</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좋은 일을 하기 위해 야망을 가질 것! - [모럴 앰비션 - 이기적 야망의 종말]</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36688</link><pubDate>Mon, 15 Jun 2026 19: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366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9606&TPaperId=173366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54/80/coveroff/k15213960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9606&TPaperId=173366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럴 앰비션 - 이기적 야망의 종말</a><br/>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이정민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06월<br/></td></tr></table><br/>✳️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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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내내 한강공원을 덮어버릴 기세로 쏟아지는 자기계발서 홍수 속에서 나는 다짐한 적이 있다. 언젠가 자기계발서 말고 ‘관계계발서’ 같은 걸 써보면 어떨까? 나는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꼭 자기만 계발하라는 법은 없을 뿐 아니라, 관계를 계발한다면 무려
연대나 평화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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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신경과학계의 석학인 로버트 새폴스키도 “평화학(peaceology)”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인간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능력에 교역, 인구 통계, 종교, 집단 간 접촉, 화해, 기타
등등이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 말이다. 이 지적 시도는 세상에 크나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행동』, p.780)고 말했으니, 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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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내가 A4 열 장 이상의 글을 써본 경험이
없다는 거였고, 아이디어만 품은 채 하염없이 보내고 있었는데, 『모럴
앰비션』 출간 소식을 들었다. 꽤나 화제를 모았던 『휴먼카인드』의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후속작이라고
한다. 본능적으로 이 책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내가 (쓰려고) 상상만
했던 그 책이었기 때문이다. 읽어보지 않을 이유가 있나? 마침
서평단을 모집하기에 일정 다 제쳐두고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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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요약해보면 매우 간단한 이야기다. 선한 야망을
가질 것, 그리고 그 야망을 실현시킬 것. 책은 강한 어조로
독자에게 세상을 바꿀 것을 주문하면서, 동시에 ‘성과’를 반드시 거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냥 강조하는 게 아니라, 거의 강박적으로 강조하는 바람에 솔직히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가뜩이나
나는 실패에 관해 긴 글을 쓰고 있는데(혹시 궁금하신 분은 프로필 링크를 참고해주시길!), 이렇게 성공해야 한다는 노래를 부르면 대체 어쩌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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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이런 저자의 조급함을 이해 못할 것도 없는 것이,
정말 많은 일들을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위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기후변화 문제만 봐도, 국제사회는
2015년 파리 기후 협정에서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내
상승 수준에서 관리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미 (2015년 대비) 지난해에 1.58℃가 상승했다고 한다. 저자가 언급하는 또 하나의 위기, 핵무기 위협도 다르지 않은 것이, 미국 역사상 가장 정서가 불안해보이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15일이면
끝난다던 이란 전쟁은 무려 4개월이나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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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저자는 무턱대고 성공을
주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처럼 다양한 성공 사례를 소개하면서, 그들이 성공에 이를 수 있었던 방법을 분석한다. 그 방법들을 내
나름대로 요약해보면 더 큰 성과가 필요한 일에 나설 것, 성과를 수치화하여 공유할 것(KPI), 더 많은 사람의 관심(또는 공감)을 살 것 등이다. 성과 없이는 보상도 없다는 자본주의적 논리 같지만, 그 방법을 고스란히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청소하는 데 사용하자는 것도 나름 신선하면서도 대담한 주장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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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소개된 역사적 사실도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로자
파크스 사건(백인에게 버스 좌석을 양보하지 않았던 사건)이
몽고메리의 버스 보이콧 운동의 시발점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흑인 민권단체들이 이전에 벌어진 갖가지
인종차별 사건에 섣불리 반응하지 않은 것은, 그 사건들에서 최대 다수를 동원할 ‘상징’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로자 파크스 사건이 터졌을 때에야 버스 보이콧 운동을 시작했고, 시내버스
인종 분리 규정의 위헌 판결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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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럴 앰비션』은 도덕적 혹은
이타적 야망을 가지고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꽤나 선동적인 책이다. 동시에 각자 자신의 소명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리해놓은 이성이 녹아 있는 책이기도 하다. 내가 막연하게 구상했던 관계계발서의
모습을 대략 83% 정도 구현했다는 점에서 읽지 않았다면 큰 일이 났을 법한 반가운 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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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실현할 수 있는
이타적 욕구에 대해 등 떠밀리듯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강박에 가깝도록 반복되는 저자의 독려 때문이기도
했지만, 관계계발서 단락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을 읽기 전부터
고민해왔던 일이기도 했기에 속 편하게 책만 읽을 수는 없었다. 공존에 관한 책을 소개하고, 설득하기 위한 서평을 계속 써왔던 것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고 생각하지만, 첫
발의 보폭이 이제 만 세 살이 된 엄지발가락 길이 수준이어서 크게 내세우기는 어려울 것 같고, 소개할
만한 성과까지 없다는 게 문제다. 그나마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구상을 구체화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선물 같은 경험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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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책 또한 더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나와 같은 독서 경험을 한 이들이 많아지고, 그만큼 새롭고도 좋은
일을 많이 시도할수록 세상은 더 빠르게 변할 테니까.<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54/80/cover150/k1521396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548033</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돈보다 중요한 것 - [돈 때문에 불안하다는 착각 - 경제적 불안을 권하는 사회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32012</link><pubDate>Sat, 13 Jun 2026 09: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320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139492&TPaperId=173320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45/5/coveroff/k8321394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139492&TPaperId=173320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돈 때문에 불안하다는 착각 - 경제적 불안을 권하는 사회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법</a><br/>다우치 마나부 지음, 김정환 옮김 / 부키 / 2026년 06월<br/></td></tr></table><br/>✳️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br>바야흐로 불안의 시대다. 나도 (아직 오려면 한참 남은) 노후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한숨을 쉴 지경인데, 주변에서 틈만 나면 몇 억은 모아둬야 한다고 떠들어 댈 때면 뇌 한 구석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한국의 중위소득과 중위자산 모두 세계 상위 10~15% 수준에 이르는 상황에서 불안이 얼마나 합리적인 건지 의문이 들 때면, 머리가 블랙홀 강착 원반에 진입한 것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버린다. 혼돈의 카오스.<br>막연했던 의문이 풀린 것은 『돈 때문에 불안하다는 착각』을 읽은 후였다. 책의 제목이 이미 결론을 내렸듯이, 돈 때문에 느끼는 불안은 착각인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근거들을 매우 합리적이면서도 명쾌하게 풀어간다.<br>-----<br>그래서 왜 우리는 항상 돈 때문에 (헛된) 불안을 느끼게 되는 걸까? 책에 소개된 여러 가지 이유를 나는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적 과제가 그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폐 경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오히려 새로운 부의 창출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nbsp;<br>전자부터 살펴보자. 지난 2019년, 일본에서는 금융청에서 발표한 “노후 자금이 2,000만 엔(26년 환율 기준 약 1억 9천만 원) 부족할 것”이란 보고서가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일본 사회에 작지 않은 변화를 일으켰다. 미래에서 불안을 느낀 개인들이 본격적으로 투자에 나섰고 기업이 이 수요에 대응하면서 새로운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불안이 훌륭한(?) 마케팅 소재가 된 것이다.&nbsp;<br>후자는 좀 더 문제가 심오해지는데, 화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때문에 정작 진짜 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소개한 예시를 살펴보는 게 좋겠다. 시장에서 첫날 만 원짜리 판매되던 주스가 다음 날 오천 원, 그 다음날에는 삼천 원에 할인 판매되었고 고객 A와 B, C는 주스를 각각 만 원과 오천 원, 삼천 원에 구매했다. 이 경우 제일 큰 이익을 본 사람은 누구일까? 많은 분들이 자신있게 정답을 외치겠지만, 사실은 알 수 없다. 주스를 가장 맛있게 즐긴 사람, 즉 그 주스에서 가치를 느낀 사람이기 때문이다.<br>나는 불안의 기원을 두 가지로 정리했지만, 둘은 사실 떼어놓고 생각하기에 관계가 지나치게 긴밀하다. 가령 이런 것이다. 노후 불안은 화폐 가치로 변환되어 설명하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화폐를 불리는 데 최선을 다한다. 문제는 화폐만으로 가치를 만들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이 문제는 특히 일본 같은 심각한 노령화 사회에서 더 심각해진다(우리는 더 심각할지도 모르겠다). 가령 돌봄 서비스 인력이 심각하게 부족한 경우에, 잔뜩 쌓아놓은 화폐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nbsp;<br>이런 의문은 자연스럽게 투자 문제로 이어진다. 2024년 일본의 주식 거래액 1,300조 엔 가운데 기업이 신규로 조달한 자금은 1.4조 엔에 불과했다고 한다. 즉, 주식 거래액의 0.1%만이 가치 투자에 동원되었다는 이야기다. 만약 주가 상승이 통화량 같은 금융 요인에 따른 결과라면, 내가 1년 전에 목표로 했던 자산 1억은 1년이 지난 지금의 1억원과 가치가 같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화폐가 늘어난 만큼 돈의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nbsp;<br>-----<br>저자의 제안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보유한 화폐를 늘리기 보다는 가치를, 사회가 함께 창출하는 것이다(더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하시기를!) 이 결론에서 나는 아쉬움과 반가움을 동시에 느꼈는데, 아쉬움은 이미 전 세계 나라 대부분이 이 가치 창출에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다. 말인 즉, 이 제안이 이 책 고유의 인사이트라고 보기는 어려웠다는 것이다.&nbsp;<br>하지만 개인에게 주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투자만 답’이란 인식이 확고해지면서 투자 행위의 가치는 수직 상승한 반면, 노동의 가치는 그 인식 속에서 추락에 가까운 하락을 거듭했다. 그 와중에 가치의 진짜 기원을 상기시켜주었다는 점에서 무척 반가운 책이었달까. 물론 인식의 전환을 몇몇 개인이 해낼 수는 없는 일이고 그래서 실질적인 변화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겠지만, 일단 반전의 계기로 삼을만한 책을 만난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했다.&nbsp;<br>나는 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함께 읽으시면 좋겠다. 『돈 때문에 불안하다는 착각』은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45/5/cover150/k8321394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450559</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우리는 언제나 공감의 시대에 살았다 - [공감의 시대 - 다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것]</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27239</link><pubDate>Wed, 10 Jun 2026 16: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272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21609&TPaperId=173272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59/7/coveroff/89349216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21609&TPaperId=173272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공감의 시대 - 다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것</a><br/>프란스 드 발 지음, 최재천.안재하 옮김 / 김영사 / 2024년 11월<br/></td></tr></table><br/>그 유명한 『침팬지 폴리틱스』의 저자이자 동물행동학의 권위자인 프란스 드 발이 쓴 책이다. 제목 그대로 ‘공감’에 관한 이야기인데, 저자는 사람 의 행동이 아닌, 자기 연구 분야인 동물의 행동에서 그걸 찾았다. ‘공감’이란 말 때문에 홀린듯 들여왔고, 읽는 내내 매우 공감했지만, 시차를 두고 생각해보니 저자의 주장에서 꽤 많은 부분 공감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이래서 생각도 시간을 가지고 다듬어야 하나보다).<br><br>📚 적자생존을 향한 카운터 어퍼컷<br>마치 내 의지와는 관계 없이 내 공감을 강탈해간(?) 부분부터 시작해보자. 내 생각에 이 책이 남긴 가장 중요한 성과는 자연계(또는 과학)에서 공감의 지위를 회복시켰다는 것이다.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또는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이없도록 많은 사람들이 자연 선택을 부자나 권력자, (더 이상하게는) 근육을 부풀린 개체들이 생존 경쟁에서 이긴다며 착각하는데, 드 발은 시작부터 “삶에 대한 투쟁이 자연의 본질이니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도 믿지 마시라”라고 못을 박는다. 다시 말해 포유류나 영장류의 행동을 보면 생존을 위해 협력하는 경우가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사실상 전체가 이 주장에 대한 증거라고 봐도 좋을 정도인데, 그러다 보니 책을 읽다 보면 적자생존 광신도들을 신나게 비웃게 된다. 과학책 읽으면서 이런 카타르시스를 느낄 줄이야.&nbsp;<br>이런 카타르시스도 좋았지만, 적자생존 신도들이 하고 싶어 안달이 난 힘 자랑을 ‘과학의 탈’을 쓰고 할 수 없다는 게 더 좋았다. 이전까지는 ‘자연주의 오류’ 같은 어려운 말을 써가며 길게 반박해야 했는데(당연히 상대방은 이런 말도 모른 척했지만), 이 책이 좋은 레퍼런스가 되어준 덕분에 그건 ‘네 희망사항’이라거나 ‘미신’이라고 자신 있게 반박할 수 있으니까. 사실 과학자 입장에서 이런 책을 쓰는 게 쉽진 않았을텐데, 반대 진영에서 날을 세워가며 논쟁을 위한 논쟁에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그러나 프란스 드 발은 용기를 냈고, 좋은 과학 레퍼런스를 안겨주었다. 이러니 의미 있는 책이 될 수밖에.&nbsp;<br><br>📚 과학도 껴줄 때가 되었다<br>기억하고 싶었던 또 다른 대목은 “법학, 경제학, 정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객관성을 가지고 자신의 사회를 볼 방법이 없다”면서 과학이 확인한 협동 “경향을 간과하는 사회는 이상적인 사회가 될 수 없다”는 드 발의 주장이었다. 과학이 발견한 협동-친화적 성향을 사회과학 연구자들, 나아가 정치인들이 모른 척한다는 이야기다. 가령 경제학은 인간을 아직도 최대한 자신의 목표을 실현시키기 위해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존재로 간주하고 논리를 펼치는데, 과학자들은 이런 인간관을 흡연 호랑이 연구하던 시절에 내다 버렸다는 걸 알고 계시는지. 문제는 손가락만 가져다 대도 먼지 날릴 것 같은 경제학의 영향력이 사회과학 중에서도 끝판왕이라는 거다. 한정된 재화의 효율적 분배를 목표로 한다는 경제학이 목표를 잘 수행해냈을까? 아니, 설명은 잘 해냈을까? 책에서 소개한 앨런 그린스펀의 사례를 보면 전혀 안 그런 것 같다.&nbsp;<br>드 발은 호모 사피엔스가 마냥 친절한 종은 아니더라도, 반대로 폭력적이기만 종 또한 아니라고 말한다. 포유류 대부분이 협동이 필요한 상황에선 언제든 뭉치고, 심지어 연대감까지 발휘한다는 것이다. 인류 또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렇기에 정치는 기존의 사회과학에 더해 과학적 발견을 보태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드 발의 주장을 내 방식대로 읽어보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적어도 사람이 세상을 모두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점, 사람의 뇌가 열량을 최대한 아껴 쓰다보니 편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신경과학의 발견 감안한다면, 인간이 받아들이기에 ‘편안한’ 사상 또는 제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nbsp;<br><br>📚 모듈론 vs 구성론<br>하지만 이 책의 몇몇 대목은 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내 마음에 남았는데, 공감의 기원을 ‘진화’라고 못 박은 대목이었다. 아니 대목이란 말도 맞지 않는 것이, 진화가 공감의 기원이라는 말은 책의 논지를 세우는 철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의 몸과 마음은 사회적 삶에 맞게 만들어져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희망을 읽고 낙담하게 된다.”(p.26)는 말이나, “공감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 인간 종보다도 훨씬 더 이전에 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p.100)는 발언이 그 예시인데, 처음엔 공감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나도 모르게 실눈을 뜨거나 고개가 자꾸만 한쪽으로 기울이게 된 것이다.<br>내 의문은 인간의 협동이 생물학적 진화에서 유래했느냐는 것이다. 『위어드』의 저자 조지프 헨릭은 유전자 진화에 문화가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의 대표 주자인데, 전작인 『호모 사피엔스 - 인류를 지배종으로 만든 문화적 진화의 힘』에서 그 이론을 아주 잘 정리했다. 짧게 요약하자면, 인간이 지배종이 된 것은 ‘학습 능력’ 덕분이고, 생존에 필요한 지식은 문화의 형태로 전수된다는 것, 그리고 문화가 생물학적 진화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다. 헨릭은 후속작인 『위어드』에서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의 실제 사례를 소개한다. 유럽이 산업혁명을 전후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2000여년 전 유럽에 자리 잡은 이러저러한 문화(여기에 대해선 서평 작성 예정)을 학습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 2000년 동안 자리를 잡은 문화 때문에 유럽 바깥의 사람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관찰되었는데, 헨릭은 이걸 문화가 생물학적 유전에 영향을 미친 사례로 생각한다.<br>헨릭의 논의를 거드는 또 한 명의 학자가 있으니, 바로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리사 펠드먼 배럿이다. 배럿은 구성된 감정 이론(theory of constructed emotion, TCE)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인데, 구성된 감정 이론의 요지는 대략 이런 것이다. 기존 심리학은 사람이 즐거움, 기쁨, 슬픔, 공포 등을 뇌에 장착한 상태로 태어난다고 설명했는데(basic emotion theory, BET)(이 이론이 만약 사실이라면, 이걸 가능하게 한 것은 진화일 것이다), 우리(뇌)가 학습 능력을 타고난 탓에 이러한 감정 또한 태어난 후에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배운다는 것이다(감정을 구성하는 복잡한 절차는 생략). 이 경우에도 학습이 주요한 화두인데, 드 발이 협동, 나아가 (협동을 이끌어내는) 공감이 내재된 본능으로 간주한다면 배럿은 그게 다 태어나서 학습한다는 이야기다<br>이렇듯 드 발이 『공감의 시대』에서 공감에 관해 펼친 논리는 헨릭-배럿의 입장과 대척점에 놓인 셈인데, 드 발이 협동의 기원을 진화, 더 정확하게는 공통 조상으로부터 찾고 있으며, 이는 협동이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헨릭은 『위어드』에서 “문화적 진화 과정은 유전자에 작용하는 자연선택에 비해 빠르고 강력하다”고 주장하면서 근거로 20세기 동안 교육 제도(문화)와 자연선택이 유럽 청소년들의 학업 성취도 향상에 기여한 수준을 들었는데, 아니 글쎄 교육이 9~11년 향상, 자연선택이 8개월 퇴보라는 압도적 차이를 기록한 것이다.&nbsp;<br>내 생각에 이는 문화와 유전자 중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는데, 여기에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람의 행동에서 문화의 영향이 이 정도로 크다면, 협동의 기원을 ‘진화’에서 찾은 드 발의 주장이 얼마나 설명력을 지닐 수 있을까? 드 발이 후천적 학습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완전히 무시한 것 같진 않지만, 이러나저러나 논지가 목에 걸린 생선가시 같을 수밖에. 그렇다고 누굴 지지하네 마네 선언(?)하기도 어려운 것이, 두 입장이 각각 모듈론(Modularity / Nativism)과 구성론(Constructionism) 진영으로 나뉘어 한창 논쟁중이었던 탓이다. 전혀 없는 일개 서평러로서 누굴 지지하기엔 학술적 배경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열혈 지지자가 된다면 그것도 우스운 노릇이니까. 어쨌든 책을 덮고 나서도 마냥 후련하기만 하진 않았다는 게 책이 남긴 약간의 아쉬움이었다.<br>-----<br>이런저런 의문이 남았어도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을 남겨준 책인 걸 부인하진 않으련다. 요즘 사회가 바닥을 드러낸 호수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그만큼 협동, 공감 같은 걸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감의 시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곤 해도, 충분히 단비 같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책은 무조건 추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59/7/cover150/89349216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2590778</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아이들의 가난함을 외면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놓치는 것들 -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25463</link><pubDate>Tue, 09 Jun 2026 16: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254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936706&TPaperId=173254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807/15/coveroff/k502936706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936706&TPaperId=1732546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a><br/>강지나 지음 / 돌베개 / 2023년 11월<br/></td></tr></table><br/>이 책은 빈곤 가정에서 자란 여덟 명의 삶을 청소년기부터 청년기까지 추적 관찰한 기록이에요. 여기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그 여덟 주인공들은 그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든 견뎌냈고, 그렇게 청년이 되었을 땐 자립은 기본, 심지어 몇몇은 부모님까지 함께 책임지고 있던 거였어요(심지어 청소년 시절에 ‘비행청소년’으로 분류되었던 피관찰자조차 열심히 살아갔어요).⠀한편, 청년이 되어서 자기 밥은 스스로 챙겨먹는 ‘1인분’을 해내는 와중에, 하나 같이 심리적·경제적으로 쫓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어요. 그들을 옭아맨 빈곤의 끈은 오랫동안 질기게 남아 있더라구요.⠀이 대목에서 엄빠의 사회경제적 지위 세습 이야기를 떠올릴 분 많으실 텐데, 책판다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피관찰자들의 기록을 읽으면서, 책판다는 우리 사회가 많은 가능성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눈부신 발전을 사람이 거의 다 일군 우리나라는 좋으나 싫으나 사람이 많고 봐야 하는데, 정작 그 사람이 너무나 없는 거예요.⠀하지만 그 사람의 가능성을 알아보기도 전에, 부모님의 자원 유무가 자주 첫 번째 거름망이 되어버려요. 이런 상황에서 가능성 높은 이들을 많이 모으기 어려운 건 당연하구요. 이렇게 거르고 거른 사람만으로 우리가 일군 기적 같은 성장이 앞으로도 가능할지, 저는 회의감이 들었어요.&nbsp;⠀그러니까 구성원의 경제적 기본권과 사화의 안전(박탈감이 클수록 증오도 늘어난다는 연구를 봤거든요)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위해서라도 피관찰자 같은 구성원을 복지 제도로 품어야 한다는 게 책판다의 결론이에요. 지속 가능하지 않은 공동체에선 우리 자녀 너희 자녀 할 거 없이 모두가 힘겹게 살아갈 테니까요.<br>※ 24년 3월에 작성한 서평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807/15/cover150/k50293670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8071557</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학문 영역을 가리지 않는 행동의 지도 - [행동 -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에 관한 모든 것]</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24304</link><pubDate>Mon, 08 Jun 2026 23: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243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635X&TPaperId=173243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21/16/coveroff/895469635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635X&TPaperId=173243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행동 -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에 관한 모든 것</a><br/>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1월<br/></td></tr></table><br/>나는 주기적으로 인생책을 바꾸는 편인데, 로버트 새폴스키의 책 『행동』을 읽고 나서 또 한번 인생책을 바꿀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이렇게 자주 바꾸는 게 인생책이 맞나 싶지만). 얼마 전 다 읽은 『행동』은 내게 그만큼 의미 있는 책이었는데, 세 가지 이유를 꼽아보면 이렇다.⠀첫째, 이건 조금 소소한 이유인데, 그동안 내가 읽었던 가장 두꺼운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 두꺼운 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니, 이런 독서 경험은 몇 번을 반복해도 지겨울 일이 없을 것 같다(김명남 선생님의 믿고 보는 번역도 이 즐거움에 큰 몫을 했는데, 저자의 글재주가 번역에서 단 하나의 손실 없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혹시 두께 때문에 읽을 엄두를 못 낸 독자들은 당장 오늘부터 시작해보시길(참고로 저는 해외여행 갈 때 비행기에 들고가서 읽었다).⠀둘째, 인간행동의 메커니즘을 그 어떤 책보다 명쾌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뇌과학이랑 심리학 책 좀 읽어봤다’며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녔다. 하지만 막상 인간 행동의 근원이나 동기에 대해 답해보라고 했다면, 한참을 궁리하다 이렇게 답했을 것 같다. “잘 모르겠는데요.”⠀문제는 ‘모르겠다’고 넘어가기엔 답이 너무나 궁금했다는 거다. 특히 정치, 성별, 이념, 국제 관계 등등 거의 모든 곳에서 갈등이 터져나오는 요즘, 인간 행동의 기원만 알아낸다면 세상 모든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그 와중에 이 책이 그 어떤 사이다보다 시원하게 더 답을 알려준 것이다!⠀셋째, 그렇게 알려준 답이 뇌와 유전자, 호르몬, 환경, 문화, 사회구조 등등이 거미줄처럼 엮여 나타난 결과물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새폴스키는 책을 통해 사람의 행동을 단 하나의 원인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행동 직전의 신경생리, 며칠 간의 스트레스와 감정, 성장기의 경험, 문화·제도·진화까지 여러 층위의 기제가 서로 얽혀서 비로소 ‘하나의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자신의 연구를 포함해 신경과학, 내분비학, 심리학, 인류학, 정치학, 경제학(게임이론)까지,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데, 이 연구들을 절묘하게 엮어내며 신뢰도를 한층 끌어올린다.<br><br>-----<br>나는 심리학과 뇌과학 책을 그렇게 읽었는데도 뿌리를 뽑기 어려운 편견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사람이 뭐 하나라도 (잘) 하려면 타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벽돌 세 개 두께의 책을 쓴 새폴스키는 “세상일은 언제나 책보다는 복잡하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만큼 세상은 복잡한 곳이고, 사람의 행동은 단 하나의 원인만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새폴스키가 이 이야기를 귀에 피날 때까지 강조 또 강조하는 건, 사람들은 세상 거의 모든 문제들을 가능한 한 단순하게 이해(또는 설명)하려는 경향 때문일 것이다. 우리 뇌가 다른 일로 워낙 열량을 많이 쓰다 보니 이런 문제까지 고민하고 싶어하질 않다고 한다(우리가 지나치게 자주 “아 됐고, 결론이 뭔데?”라고 되묻는 이유인데, 이걸 심리학 용어로 이를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로 부른다고 한다). 나라고 예외일 리는 없어서 단단한 편견을 내 마음 속 깊이 묻어두고 있었는데, 새폴스키가 『행동』에서 완벽한 논증과 강박적인 강조를 거듭한 끝에 이 편견을 통해 깨뜨려준 것이다. 오, 이런 독서 경험은 얼마나 즐겁고 소중한지!<br>-----⠀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훌륭한 독서 경험이었지만, 나는 여기에서 조금 더 욕심을 내보고 싶어졌다. 책에서 소개된 예시 하나를 생각해보자. 옥시토신 호르몬은 내부 구성원에 대한 친밀감과 외부 구성원에 대한 적대감을 동시에 유발한다고 한다. 아기에게 한없이 너그러웠던 엄마가 낯선 타인에게 쉽사리 경계를 높이는 이유가 바로 이 호르몬 때문이라는 거다.⠀좋아! 그럼 새폴스키의 말대로 ‘행동’이 유전과 문화가 뒤섞인 결과물이라면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작은 넛지 하나를 심어본다면 어떨까? 이를테면 ‘강남구민’을 ‘서울시민’으로, ‘서울시민’을 ‘대한민국 시민’으로 호칭하며, ‘우리’의 테두리를 슬그머니 넓혀보는 것이다. 교양 이상의 전문 지식이 없다 보니 장담은 못하겠지만, 이 가설이 유효하다면 꽤 많은 일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가령 ‘외국인 노동자’를 대할 때 막연한 친절을 기대하기보다는 ‘같은 사람’으로 바라본다면, 어떤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br>마침 미국의 심리학자 조슈아 그린이 쓴 『옳고 그름』이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기에(아마도 공통의 도덕성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다) 냉큼 책을 구했다(절판 소식에 절망했지만 온라인 중고서점엔 있었다!). 더 깊이 있는 이해와 의미 있는 변화를 찾는다면, 『행동』은 진정한 의미의 ‘인생책’으로 남게 될 것 같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21/16/cover150/895469635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9211677</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자유의지와 운명 사이에서 - [운명의 과학 - 뇌는 어떻게 우리의 운명을 만드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18519</link><pubDate>Fri, 05 Jun 2026 15: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185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034208&TPaperId=173185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36/80/coveroff/k28203420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034208&TPaperId=173185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운명의 과학 - 뇌는 어떻게 우리의 운명을 만드는가</a><br/>한나 크리츨로우 지음, 김성훈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12월<br/></td></tr></table><br/>※ 2022년 1월에 구판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br>‘자유의지냐 운명이냐’는 어느 시점에 마무리되는 것 같다가도, 어디선가 땔감이 나타나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논쟁 주제인 것 같아요. 한쪽에선 ‘내 성공은 내가 다 했지 말 보태지 마라’하는 반면, 다른 쪽에선 ‘야, 넌 3루에서 태어났잖아’라고 비판하고 있어요. 이 논쟁이 끝없이 이어지는 건 아마 우리 삶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치는 ‘운’을 수치화하기 어렵기 때문은 아닐까, 책판다는 생각하고 있어요.&nbsp;<br>관련해서 책판다는 얼마 전 읽었던 ‘돈의 심리학’에서 운에 관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었는데요. ‘우리가 얻은 수익은 (우리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운(=리스크)이 영향을 미친 결과이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겸손해야 한다’는 게 교훈의 핵심이었어요.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지 말라, 겸손하게 할 수 있는 걸 하자, 이런 뜻으로 받아들였네요.<br>최근 타고난 집중력, 지능이 다른 상황에서 개인의 성취만 부각되는 게 옳은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잖아요? 이에 대해 마이클 샌델 교수 선생님은 인문학적 기반에서 논의를 풀어주셨었죠?<br>이 와중에 책판다는 ‘운’과 관련된 아주 재미있고 중요한 책을 하나 발견한 거예요! 바로 ‘운명의 과학’이란 책이었어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운에 관한 책은 아니었고, 주로 우리가 부모님 또는 조상님으로부터 물려받는 생물학적 특성(특히 두뇌)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공정하다는 착각’이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를 풀었다면, 이 책은 ‘타고난 신체적 재능을 극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관한 이야기를 풀고 있어요. 생물학적 특성에 대항해 우리는 얼마나 자유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냐라는 거죠!&nbsp;<br>책판다는 책을 읽기 전, ‘자유의지 그거 이제는 환상 아니냐?’라는 시각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는데요.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더라구요. 관련해서 책판다는 왜 때문에 생각을 다시 하게 됐는지, 포스팅 두 개에 걸쳐서 책의 알맹이들과 함께 곱씹어보려구 해요.&nbsp;&nbsp;<br><br>📚 날 때부터 모든 게 정해져 있다? 발달 중인 뇌<br>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들 많이 하시죠. 책판다도 아이를 키우는 주변 지인들이 좀 있어서 요리조리 관찰을 해보곤 하는데요. 아, 이 아이는 나중에 어떻게 크겠다, 저 친구는 저렇게 크겠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타고난 성격이 보인다는 이야기죠.&nbsp;<br>요 ‘타고난 성격’은 웬만한 교육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모든 창을 막아내는 방패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타고난 성격은 부모님도 고칠 수 없으니, 아이가 있는 그대로 자라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걸까요?<br>저자 선생님은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변하세요. 사람의 뇌는 어쨌든 변한다는 거예요. 요즘 자기계발서에서 앞다투어 이야기하는 ‘뇌의 가소성’, 즉 뇌의 변하는 성질이 무한한 것은 아니지만 성격(두뇌)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들은 얼마든지 있다는 거예요.&nbsp;<br>가령 아이들의 뇌 구조물은 아직 완전한 ‘배선’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감정 조절 등이 쉽지 않은데, 어린 시기에 부모님 또는 다른 성인과 어떤 관계를 맺었느냐에 따라 배선이 연결되는 정도가 다르게 나타난대요.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뇌가 자라는 만 세살 즈음 성인으로부터 다정한 말투(예를 들면 엄마 말투)로 언어에 자주 노출시킬 경우, 뇌의 배선이 최선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거죠.<br>퇴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래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같은 특정 뇌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 인자가 존재한다고 하는데요. (그 메커니즘이 하도 복잡해서 특정 유전자를 콕 찝어내기가 어렵다고는 합니다만..) 하지만 치매를 유발하는 결정적인 유전자를, 결정적으로 무력화하는 행동들이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 활발한 신체 및 사회 활동, 좋은 수면, 공부, 긍정적인 마음 등을 계속 이어간다면 발병 시기를 최대한 늦출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br><br>📚 살찌는 건 자기 관리 실패? - 배고픈 뇌<br>한편 ‘비만’은 대표적인 자기 관리 실패의 사례로 손꼽히잖아요. 책판다도 먹는 걸 참 좋아해서, 웬만큼 배가 부르지 않고서는 중간에 먹는 걸 참아내는 게 쉽지 않은 편인데요. (뱃살을 보며 울고 있는 책판다)<br>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FTO(Fat Mass and Obesity-associated protein)라는 유전자가 있고, 세계 인구 중 절반이 비만의 확률을 25% 높이는 버전으로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해요. 만약 책판다가 이 유전자 변이 2개를 가지고 있다면 원래 체중보다 3킬로그램 더 무거울 가능성이 높고, 비만이 될 위험은 50퍼센트 더 높다고... (Hoxy 책판다도..? 🙄)<br>특히 좌절스러운 부분은 이 유전자의 힘을 개인의 인내심만으로 극복하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말씀하신 대목이에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 유전자의 존재를 알고 있다 해도, 장기적으로 다이어트를 이어가기란 대단히 어렵다고 하네요.. 아.. 우리에게는 정녕 방법이 없는 걸까요?<br>다행히 해답이 없지는 않았어요. 관련해서 책판다가 예전에 읽은 ‘넛지’에서도 답이 될 만한 사례를 다룬 적이 있는데요. 학교의 교내 급식 책임자가 구내식당의 음식을 재배열했더니 특정 음식의 소비량을 25%가량 줄일 수 있었다고 해요! 사회적 합의를 통해 환경만 바꾸더라도 비만을 줄일 수 있다면, 우리 가뜩이나 선거도 가까워졌는데 관련 논의를 충분히 제기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br><br>📚 아름다운 신념과 고집불통 사이에서, 믿는 뇌<br>사람은 누구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잖아요. ‘응? 내가 무슨 신념을?’ 하고 반문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아마 반문하신 분들도 다 가지고 계실 거예요. 굳이 ‘민주주의’ 같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더라도, 가령 ‘상스러운 욕을 배설하는 사람과는 절대 상종도 안 하겠다’는 일상적인 생각도 신념의 하나니까요.<br>그럼 신념은 대체 무엇이고, 왜 때문에 생겨난 걸까요? 책을 보면 심리학 교수이자 과학잡지 ‘스켑틱’의 창립자인 ‘마이클 셔머’라는 분께서 “신념을 형성하는 능력은 인간의 진화에서 필수적인 부분이었다고 주장”(200)하셨대요. “뇌는 자기가 받아들이는 모든 감각 입력을 분류하고 상호참조해서 패턴을 생성함으로써”(201) 신념을 만들어내고 있는데요. “포식자의 얼굴 패턴을 알아보고 그 포식자의 점심거리가 될 수 있으니 꽁지 빠지게 달아나는 것이 좋을 거라 예측하는 능력은, 해당 개체로 하여금 하루라도 더 살아남아 이 기술을 자손에게 전달해 줄 수 있게 해주었다”라고 해요. 특정한 사실(포식자의 얼굴)로부터 패턴(나는 점심거리가 된다)을 추출해, 생존에 써먹었다는 이야기죠!<br>이런 신념은 때때로 우리에게 생존과 자부심을 선물해 주었지만, 책판다도 여러분도 넘모나 잘 알고 있듯 부작용도 만만치가 않아요. 가령 신념의 최정점이라 할 수 있는 종교 때문에 목숨을 빼앗긴 사람은 헤아릴 수가 없어요. 정치 갈등 때문에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또 어떻구요. 인간의 타고난 신념 형성 능력은 빛과 그림자가 뚜렷한 것 같아요.<br>신념을 가지는 거 좋아요 좋은데, 신념 때문에 사람이 죽고 갈등이 폭발하면 그 신념은 대체 무슨 소용이겠냐 싶어지네요. 저자 선생님은 똥고집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운동과 휴식, 성찰 등을 추천해 주셨어요. 조금 빤하고 김이 빠지는 방법이지만, 뭐 정석이란 대부분 재미없고 김빠지는 이야기들이니까.. ​<br><br>📚 스스로를 구원하는 방법, 협동하는 뇌<br>자, 책판다는 포스팅 두 개에 걸쳐 우리의 뇌(신체)가 무엇을 어떻게 타고나는지 몇 가지 내용을 살펴봤는데요(책에는 일곱 가지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세 가지만 소개해드렸어요. 궁금하신 분은 책 구매 고고!). 저자 선생님은 이 모든 특성을 살펴본 결론을 이렇게 내리셨어요.<br>이 책을 쓰고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는 결국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확신하게 됐다. 바로 인간의 본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없다. 우리가 종의 전체적 특성을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다. 개인의 수준에서는 생물학이 상당히 결정론적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 집단이 전체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것은 또 하나의 지나친 단순화 모형이다. 그렇게 얘기하면 수십 개의 고유한 현실 모형인 뇌가 서로와 마주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장엄한 복잡성과 유연성, 수십억 명이 제각기 갖고 있는 고유한 현실 모형들이 부정되어 버린다.&nbsp;p.286(구판)<br>여기 저 책판다는 사람으로서(곰 아님) 다른 사람들과 이런저런 특성을 공유하고 있지만, 이 특성에 사람을 억지로 끼워 맞춰 설명할 경우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이해했어요. 나아가 자유의지를 부정한 채 자신을 자기 인식 속에 스스로를 가둘 경우, 도리어 충동적인 행동이 늘어날 수 있다고 하네요.&nbsp;<br>그러니까 우리는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대요. 저자 선생님의 결론이었구, 책판다도 여기에 200% 동의했어요. 자기계발서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는 나의 모든 걸 바꿀 수 있어’도 좀 아닌 것 같지만, 물려받은 타고난 특성에 안주하고 살아가기에는 우리 선배들이 너무 많은 걸 해내왔잖아요? 책판다라고 못할 건 또 뭔가 싶은 거죠.&nbsp;<br>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의 일독을 권해드리면서, ‘운명의 과학’ 리뷰는 여기에서 마무리할게요!&nbsp;&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36/80/cover150/k2820342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368076</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나의 윤리가 모여 사회의 연대가 된다 - [그저 하루치의 낙담]</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16619</link><pubDate>Thu, 04 Jun 2026 14: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166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034189&TPaperId=173166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02/82/coveroff/k1720341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034189&TPaperId=173166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저 하루치의 낙담</a><br/>박선영 지음 / 반비 / 2025년 12월<br/></td></tr></table><br/>얼마 전 『에세이즘』이란 책을 사들이면서 말했지만, 언제부터인지
에세이는 내 촉수에 걸리지 않는 장르가 되어버렸다. 어쨌거나 경험에서 의미를 길어올리는 게 중요한 장르인데, 요즘 들어 개인적인 경험에서 사소한 의미를 애써 부풀리는 에세이들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내 시야가 좁은 걸 괜히 남탓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어차피 읽어야 할 책도 많은 마당에 굳이 찾아 읽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내 마음에서
에세이는 점점 멀어지나 싶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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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나는 이 거대한 세상의 조각 하나조차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이고, 그래서 편견은 반드시(!) 깨지게 마련이다. 이번에 읽은 『그저 하루치의 낙담』은 내 편견을 (꼴 좋다는 듯) 비웃는 책이었는데, 이런 에세이를 얼마만에 읽었는지 모르겠다. 책에 대략 백번쯤 나올 법한 “엉엉 울었다”는, 그 단순한 문장에 눈이 덩달아 시큰해진 적이 있었나? 한참 기억을 뒤져봤지만 딱히 건져내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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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에서 느낀 그토록 커다란 매력은, 나와
같은 고민을, 현장에서 치열하게 이어가며, 나름의 해답까지
명쾌하게 내렸다는 점이었다.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내가
이곳에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떠드는 주제가 하나 있는데, 바로 ‘공존’이다. 익명성 덕분에 좀 뻔뻔하게 떠들고는 있지만, 온라인 바깥 세상에선 그런 이야기를 떠들어도 괜찮은 사람인지 자꾸만 검열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공존을 위해 딱히 한 일도 없고, 자칫 적자생존의 대한민국에서
그저 생존이 목표인 이들에게 모욕처럼 들릴지도 모를 일이니까. 혹은 사람이라면 응당 가질 수밖에 없는
결점 하나를 발견할 때마다 ‘역시 세상은 어쩔 수 없다’는
냉소를 더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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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저자와 나는 이 고민을 함께 나누게 된 것이다.
공존, 윤리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가슴
위에 올려둔 벽돌 같은 고민을. 게다가 저자는 ‘기자’였고, 그 직업에 대한 이미지는 누구나 다 안다(굳이 그 별명을 여기에서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아서). 입만 열지 않으면
그럭저럭 괜찮을 수 있었던 나와 달리, 그는 일선에서 화살 십 만 발을 받아가는 중에도 치열하게 윤리를
고민했으니, 나 같은 소시민은 이런 책을 읽으면서 배우고 또 배워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 이건 선택이 아닌 의무여야만 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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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란 게 그렇다. 아무리 읽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마음가짐이나 태도 같은 것들이 그렇다.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생각과 결론을 다 내것으로 만들지는 못하겠지. 열에 하나라도 건지면 다행이 아닐까? 나름의 방식으로 딱 하나만 건져보겠다는 결심과 함께 책을 덮었다. 이
정도 결기를 안겨 준 것만으로도 이 책은 (적어도 내게는) 할
일을 다 해냈다. 그래서 이 책은 좋은 에세이의 모범사례로 남길 수밖에 없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02/82/cover150/k1720341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028287</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자본주의 기초 공부하기 -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13165</link><pubDate>Tue, 02 Jun 2026 15: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1316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365796&TPaperId=1731316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4/26/coveroff/89573657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7365796&TPaperId=1731316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a><br/>EBS 자본주의 제작팀 지음 / 가나출판사 / 2013년 09월<br/></td></tr></table><br/>(2021년 2월 23일 작성)<br>어떤 책으로 자본주의를 공부를 시작해야 하나 싶어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던 중 EBS에서 출간한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책이 눈에 띄었어요.&nbsp;이 책은 EBS 다큐 ‘자본주의’를 책으로 만든 건데, ‘책판다’ 답게 책을 먼저 읽기로 하고 얼마 전에 다 읽고 왔어요. 지금부터 책판다와 함께 자본주의 여행을 떠나보기로 해요.⠀<br>📚 ‘빚’, 자본주의의 문지기<br>자, 이렇게 책판다는 ‘자본주의’를 향한 첫 발을 내디뎠어요. 그런 책판다를 현관문에서 반갑게 맞아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빚’이 그 주인공이었요! ‘빛’ 아니고 ‘빚’ 맞아요. 김빠지게 시작부터 빚이라니, 사회초년생이 학자금 대출 갚기 시작하는 그런 기분이 드네요. 김은 빠졌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한 걸음 더 들어가볼게요.⠀최근 경제 뉴스를 보면 “경기 부양을 위해 세계 각국의 정부가 돈을 푼다”는 말이 정말 많이 등장하잖아요? 아, 그럼 돈은 어떤 방법으로 풀게 될까요? 경제학원론 교과서에 등장하는 것처럼 헬리콥터를 띄워 돈을 투하하는 방식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책에 따르면 돈을 푸는 방식 중 하나가 “이자율(기준금리)을 통제하는 것”(p.47)이라고 해요. 요즘 가계대출이 늘었다는 뉴스가 여기저기에서 들리잖아요. 주변에 보면 대출 받아 부동산 또는 주식에 투자하는 분들 많으시죠? 이게 다 금리가 낮아진 덕분인데요. 중앙은행에서 금리를 낮추면, 이자 부담이 낮아지니 돈을 쉽게 빌려 쓰게 되겠죠?⠀그럼 대체 왜 때문에 ‘빚’은 ‘자본주의의 현관문’ 앞을 지키고 서서 우리를 반기는 걸까요? 책의 설명을 요리조리 살펴보면 대략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자본주의는 “‘돈의 양’이 끊임없이 많아져야”(p.23) 하는 경제 체제래요. 그럼 왜 돈의 양이 끊임없이 많아져야 하나요? 바로 ‘이자’ 때문인데요. 책 속 예시를 짧게 소개해 드릴게요. 한 고립된 섬의 중앙은행이 1만원을 발행해 시민 A한테 빌려줬다고 가정해 볼게요. 시민 A는 1년 동안 5%의 이자를 쳐서 갚기로 했어요.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바다에 나가 열심히 고기를 잡았어요. 그럼 시민 A는 1년 후에 중앙은행에 원금 1만원에 이자 500원을 갚을 수 있을까요? 답은 ‘아니다’예요. 발행된 통화가 1만원밖에 없으니 500원은 아무리 땅을 파도 구할 수가 없는 거죠. 고로 중앙은행은 500원을 더 찍어야 하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빌려가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돈이 끊임없이 늘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죠!⠀그리고 눈치 채셨을지 모르겠지만, ‘이자’를 지불하기 위해 돈을 더 찍어낸다고 했어요. 이자를 갚기 위해 돈을 찍어내고, 또 이자를 갚아야 하고, 또 돈을 찍고…. 결국 돈이 늘어난다는 건 ‘빚’이 늘어난다는 말의 다른 버전인 셈이겠죠! 이제 조금 감이 잡히네요! 결국 통화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빚’이 늘어난다는 이야기인 셈이죠!⠀<br>📚 은행을 거치면 돈이 몇 곱배기!<br>그리고 자본주의를 떠받드는 또 하나의 시스템이 있으니, 바로 ‘은행’이 그 주인공이에요. 만약 1만원을 풀었는데 10명이 빌려버린다면? 시중에 풀리는 유동성은 1만원이 되겠죠? 그런데 ‘은행’을 거치면서 조금 요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해요. 은행은 고객이 저축한 돈을 ‘(부분)지급준비율’만 남겨준 채 빌려준다고 해요. 만약 10만원을 저축으로 받았다면, 1만원만 남겨둔 채 9만원을 대출해주는 식이죠.⠀만약 A은행이 10만원 중 9만원을 B은행에 대출하고, B은행이 C은행에 90%인 8만 1천원을 대출하고. 이런 방법으로 대출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시중 유동성은 무려 100만원까지 늘어난다고 해요! 😱(이 과정을 전문 용어로 ‘신용창조’, ‘신용팽창’ 이라고 한다네요)<br><br>📚 너는 내 운명, 빚♥인플레이션♥자본주의<br>지난 1년 간 세계 각국 정부는 코로나19 때문에 얼어붙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영혼을 끌어 모아 돈을 풀었어요. ‘제로금리’를 유지하면서 돈 빌리는 비용을 낮췄고, 정부는 정부대로 돈을 풀기 위해 국채를 발행했어요. 나라든 가계든 주체를 가리지 않고 빚이 늘어났겠죠. 조금 전에 ‘빚’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끊임없이 많아질 수밖에 말씀드렸죠? 코로나19 팬데믹은 그 현상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br>다른 한편에서는 자산 가격이 우주까지 뛰쳐 올라갈 기세로 뛰어올랐어요. 이 시기에 아마 책판다 빼고 전부다 돈 버셨을 것 같을 정도로 엄청나게 뛰어올랐죠? 그런데 최근 이러한 자산 가격 상승을 두고 논란이 있는 것 같아요. 버블이냐 아니냐를 두고 말이죠. 아는 게 없는 책판다는 그 논란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을 거예요! 다만 이런 의문은 들어요. 진짜로 버블이 되어서 세계 각국 정부가 돈줄을 조인다면 물가 상승이 과연 멈출까요? 우리의 자본주의가 과연 그걸 해낼 수 있을까요?<br>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답은 ‘그럴 수 없다’라고 해요! 한 가지 예를 들어 볼게요. 우리가 맛있게 먹는 짜장면 있잖아요! 그 짜장면 한 그릇을 먹으려면 요즘은 대략 6천원을 내야만 해요. 그런데 50년 전에는 얼마였을까요? 무려..! 15원이었다고 하네요! 50년 동안 400배가 오른 거예요! 50년 동안 400배가 올랐는데 짜장면 가격이 내린 시절이 있었을까요? 내렸더라도 아주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까요?<br>이렇듯 우리 사회로 흘러든 돈은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구요. 고로 ‘인플레이션’은 ‘자본주의’ 체제의 필연일 수밖에 없어요. 사실 ‘인플레이션’의 본질은 ‘돈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거든요. 우리 사회에 돈이 끊임없이 늘어났으니, 돈의 가치는 계속해서 하락해온 거죠!<br><br>📚 그래서 자산, 지금이 제일 쌀 때일까요?<br>여기까지 읽고 나니 모든 게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정부들이 하나 같이 돈을 풀어대는 이유, 자산 가격이 뛰어오르는 이유, 투자 열풍이 부는 이유. 이게 다 ‘인플레이션’ 때문이었다는! 물론 지금 흘러넘쳐나는 돈의 정체가 ‘빚’이었다니 많이 놀랍긴 하지만요(어디까지나 부정적으로).<br>사실 이 책은 ‘자본주의’를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로보기 때문에, 투자의 관점에서 어떤 단서를 주는 책은 아니에요. 사실 투자의 관점에서 이 책을 읽어도 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사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대안을 열어보자는 내용의 책이거든요.&nbsp;<br>다만 지금 일어나는 현상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책을 통해 많은 걸 공부할 수 있었어요. 투자를 시작하는 분이든 경제 전반을 알고 싶은 분이든, 경제 공부를 시작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보면 좋을 책이었다는 점!<br><br>-----<br><br>p.s1. 참고로 이 리뷰는 ‘자본주의’ 중 “PART 1. 빚이 있어야 돌아가는 사회, 자본주의의 비밀”만을 읽고 정리한 내용이에요. 나머지 파트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뤄보도록 할게요)<br>p.s2. 다음 책은 ‘부의 대이동’을 다음에 다뤄볼까 해요. 사실 ‘부의 대이동’을 먼저 읽긴 했는데… ‘자본주의’를 먼저 읽으면 좋을 뻔했네요. 첫 책 리뷰 길이가 요즘 자산만큼 인플레가 심했는데, 여하튼 다음 책도 열심히 읽고 써볼게요. 기대해주세요!<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4/26/cover150/89573657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642609</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우리는 아직 뇌를 모른다 - [뇌 과학의 모든 역사 - 인간의 가장 깊은 비밀, 뇌를 이해하기 위한 눈부신 시도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12288</link><pubDate>Tue, 02 Jun 2026 00: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122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32734337&TPaperId=173122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509/15/coveroff/k43273433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32734337&TPaperId=173122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뇌 과학의 모든 역사 - 인간의 가장 깊은 비밀, 뇌를 이해하기 위한 눈부신 시도들</a><br/>매튜 코브 지음, 이한나 옮김 / 심심 / 2021년 09월<br/></td></tr></table><br/>처음 뇌과학에 흥미가 생겼던 건, 이 과학이 사람의
가장 깊숙한 곳을 들여다볼 수 있는 렌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 몇 권을 읽었을 땐 이제 곧 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인간은 결국 뇌의 노예였다는 사실을 마음껏 외칠 수 있는
자신감. 그 후에도 몇 권을 더 읽었다. 그리고 나는 꼭대기에
다다랐다. 그게 더닝 크루거 곡선 속 ‘우매함의 꼭대기’였다는 게 문제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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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우매함의 골짜기 정도인 것 같은데,
이번에 읽은 『뇌 과학의 모든 역사』를 보니 사실 내가 아니라 이 학문 자체가 그 골짜기에 서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일단 저자 스스로 “여러 세부 분과들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도 많기에”, “수면 연구, 비시지각, 호르몬, 정서, 뇌 발달
및 유전자가 뇌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 등에 대한 내용을 깊게 다루지 않는다”고 말하는데(p.284), 다른 과학에서는 드문 광경이었으리라(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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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미래 파트에선 에누리 없이 “뇌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는 이제 교착 상태에 다다르고 있는 듯하다”고 말하는데(p.499),
이 말이 꼭 ‘우리는 골짜기에 빠졌다’는 선언으로
들리는 것이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뇌를 알면 인간도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만만했으니, 지금의 내가
보기에도 딱히 보기 좋았다곤 못하겠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은 역설적이게도 이 책에서 얻은 큰 수확이기도
했다. 일단 겸손해질 수 있었고, 뇌과학의 지금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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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이 여기에 그쳤다면 『뇌 과학의 모든 역사』는 그저 그런 책으로 남았겠지만, 이 책은 그 수준을 가뿐히 넘어선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오늘 서평에선 그걸 정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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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가소성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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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을 아주 조금은
줄일 수 있었단 점이다. 인공지능이 여러 면에서 인간의 능력을 훌쩍 뛰어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지능(인간 지능)을
이렇게나 많이 모르는 와중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 만큼’ 발전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인간의 뇌는 단순 연산 기계를 넘어 감각과 상호작용하며 정보를 처리하는 반면, 인공지능에겐 아직 어려운 일이고, 기술 발전을 감안하더라도 그 감각을
완벽하게 이식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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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경가소성이 있다. 나는 자연지능의 신경가소성이 인공지능 개발자와 신경과학 연구자들에게 사차원의 벽처럼 느껴지는데, 이것이 뇌를 미궁으로 끌고 가는 견인차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개발자의 입장에선, 환경에 적응하면서 변해가는 뇌를 어떻게 구현해낼 수 있을까? 최근 인공신경망으로 어느 정도 구현해냈다고 하지만, 저자는 그 또한
동물과 다른 종류의 인지 오류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동물 뇌의 메커니즘과 다르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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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를 더하는 트릭처럼 가소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연구자들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저자는 우리 뇌가 유전의 유산을 물려받았더라도, 그로 인한 기능적
제약은 대단히 미미하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든 최근의 사회 변화가 더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것이 바로 가소성의 결과라는 것이다. 책의 비유를 빌려 말하자면, 가소성은 “높은 고도로 날면서 동시에 기존에 제작된 모든 부품들을
기내에서 새로 생산한 성분들로 교체하는 비행기와 같다”고 한다(p.344).
이런 뇌에서 법칙을 찾는 일이, 나에게는 마치 중력과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만물 이론처럼 느껴진다. 스티븐 호킹이 찾다가 끝내 포기했던 그 이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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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지능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까지 부족한 마당에 ‘일반지능’(AGI)의 탄생을 장담한다는 건,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 물론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점 때문에 일자리 위협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넘어 일반지능의 탄생과 인간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게 뭐랄까, 저 허풍쟁이들에게 잡히지
않아도 될 멱살을 내어주는 모습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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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인간 본성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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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 같은 건 없다는 게 이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이다.
어떤 본성도 (앞서 인용한 것처럼) 환경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 내가 이해한 신경가소성이었기 때문이다. 타고난 기질을 부인하려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뉴런 사이에 연결이 뛰어나서 빠른 학습이 가능할 테고, 누군가는
테스토스테론이 넘쳐나서 누가 봐도 ‘상남자’ 같을 수 있겠지. 하지만 예전에 읽은 『나의 뇌를 찾아서』에서 말하길 “상호의존성이야말로
두뇌가 발휘하는 놀라운 능력의 핵심”이라고 한다. 기질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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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본성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여기저기에서
넘쳐나는 본성 타령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특히 『이기적 유전자』를 잘못 읽은 이들이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각자 도생은 자연 법칙”이라 여기며 지금의 아수라장을 정당화하는 꼴이 몹시 마땅치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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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펠드먼 배럿은 이제는 내 인생책이 되어버린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셀 수 없이 강조한다. “다양성이 표준이다.” 배럿 또한 뇌의 신경망 배선이 환경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배럿의
책은 감정의 형성을 따져보는 책이지만, 우리 생각에서 감정이 차지하는 무게를 따져보면, 나는 배럿의 저 선언이 우리 본성에 대한 설명으로 읽힌다. 우리는
환경에 따라 다른 본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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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과학의 방식으로는 우리 뇌, 나아가 인간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래서다. 만약 환경에 따라 신경망의 배선이 변한다면, 환경에 대한 공부 없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의식에 관한 연구를
이끌었던 프랜시스 크릭은 “그들(철학자들)의 물음에는 귀를 기울이되, 그 답에는 귀 기울일 것 없다”(p.482)고 말했지만, 글쎄, 환경이
본성을 좌우할 정도로 큰 압력을 발생시킨다면, 다가올 미래에는 두 학자 집단이 함께 답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509/15/cover150/k43273433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5091569</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보지도 못한 싱아가 왜 그리워졌을까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09327</link><pubDate>Sun, 31 May 2026 22: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0932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9690X&TPaperId=173093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931/7/coveroff/890129690x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9690X&TPaperId=1730932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a><br/>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08월<br/></td></tr></table><br/>솔직히 박완서 작가를 잘 몰랐고, 그의 작품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트위터(지금은 X라고 불리는)에서 어떤 기자의 추천사를 보고는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는 못하겠더라. “저는 박완서 작가를 도스토옙스키보다 위대한 작가라고 생각하는데요.”라는 내용이었다. 도스토옙스키도 그닥 관심은 없었지만, 책장에 꽂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마음의 짐처럼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위대하다고 하는데, 심지어 한국 작가라고 하니 읽지 않으면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그렇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었고, 내 감상은 ‘기자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거였다. 마음속 거품을 그대로 두고 말하자면, 이보다 잘 쓴 (한국어) 이야기를 읽어본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아니, 한국어뿐 아니라 내가 읽은 모든 이야기를 통틀어봐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대체 이런 글은 뭘 먹으면 쓸 수 있는 걸까?⠀각설하고, 아주 개인적인 의미를 되새겨보자면 그 어떤 역사책도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냈다는 점이다. 1930년대 중반 즈음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이야기를 읽으며 그 시절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듯 생생하게 다가왔다. 개성에서의 (나에게는) 꿈 같았던 작가의 어린 시절, 서울로의 이주와 함께 마주한 여러 고민들, 해방 이후 시대상, 그리고 전쟁의 비인간성을 묘사한 대목까지. 마치 그 시대를 살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역사책으로는 얻기 어려운 감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느꼈다. 이게 바로 문학의 힘이었구나!⠀이런 대문호를 몰라뵈었다니 빚 보증 잘못 선 수준의 손해를 본 기분이 들었고, 그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최대한 빠르게 읽어보자고 마음먹었다. 혹시 나처럼 이 작가의 책을 한 권도 안 읽으신 책스타그래머가 계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 하나를 놓치는 셈이니.]]></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931/7/cover150/890129690x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9310737</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그레이스와 로키의 우정에서 읽은 것들 - [프로젝트 헤일메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04361</link><pubDate>Fri, 29 May 2026 18: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043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88730&TPaperId=173043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045/43/coveroff/k692135851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88730&TPaperId=173043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프로젝트 헤일메리</a><br/>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05월<br/></td></tr></table><br/>나는 소설(을 포함한 서사 장르)에 긴장감과 개연성,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좀처럼 흥미를 붙이지 못하는 편인데, 내 주의력 수준이 진입 장벽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 최고의 장점은 당연히 손발에 이마까지 땀을 솟게 하는 재미와 긴장감이 되겠다. 태양에 기생한 이상한 생물체 때문에 멸종을 불과 수십 년 앞둔 지구인들이, 늦어도 십수 년 안에 성간 우주 여행 기술을 개발해 11.9광년 거리의 항성계에 보내 태양의 기생충을 처리할 방법을 어떻게든 알아내야 한다는 설정에서부터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미션 수행 과정에서 이쯤이면 장애물 하나 넘었네 싶은 순간에 적절하게(?) 일어나는 사고 때문에 긴박함과 안타까움을 강제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것만 해도 내 문학 수준에선 별 네 개를 꽉 채웠다.<br style="">⠀<br style="">또 하나, 적어도 석사과정 이상은 되어야 언급 가능한 과학 설명으로 (조금 과장하면) 소설 분량 절반을 채우는데, 이게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잘 만든 영화조차 긴 과학 해설 때문에 ‘설명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별 반 개 정도는 깎이기 십상인데 말이다. 간혹 이해가 쉽지 않았지만, 인과 정도는 알 수 있도록 풀어 쓴 필력, 나아가 해설이 필요한 시퀀스를 기막히게 배치한 본능이 더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br style="">⠀<br style="">그리고 이 소설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 외계인 로키와 주인공 그레이스의 이야기였다. 로키와 그레이스가 만나는 과정부터 내 마음의 설렘 수치는 이미 맥스를 채웠는데, 둘의 협업 과정은 정말 환상적이면서도 즐거웠고, 로키와 그레이스가 죽음을 무릅쓰고 서로를 구하기 위해 번갈아 자기 목숨을 걸었을 때, 우주선 폭발 사고 때 로키가 자신은 생존이 불가능한 공간으로 나가 그레이스를 치료하고, 그리고 결정적 오류 때문에 위험에 빠진 로키와 그의 종족을 위해 그레이스가 우주선의 항로를 틀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여버렸다.<br style="">⠀<br style="">나는 두 대목을 소설의 절정이자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로 읽었는데, 두 인물이 결정적 위기 상황에서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희생이 가능했을까? 인류와 에리디언(로키 종족의 이름)은 멸종을 막기 위해? 그 또한 당연히 중요했겠지. 다만 독자의 입장에서 썩 공감하기가 어렵다. 소설 후반부에야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그레이스는 헤일메리 프로젝트에 우주인으로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헤일메리 프로젝트’가 연료 부족으로 인해 수행원들의 자살로 마무리된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레이스는 ‘인류’라는 집단에 대해 애정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br style=""><br style="">그랬던 그레이스가 로키를 위해 죽음을 감수하고 로키를 위해, 망설이지 않고 진로를 돌린 이유는 아마도 우정 때문이었을 거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거리에서 만나 함께 임무를 수행하고, 위기 상황에서 목숨을 걸어가며 자신을 지키려 했던 로키를, 자신 또한 지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이 소설이 어떤 경지를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도덕 또는 윤리가 세워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br style=""><br style="">흔히 도덕 또는 윤리는 철학에서 논증 등의 과정을 통해 세워져왔다. 조선 시대의 유학이 그랬고, 칸트의 윤리학이 그래왔으니까. 물론 철학의 방법으로 세워가는 것은 당연히 중요한데,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걸 너무 먼 곳에서 찾으려 들어왔던 건 아닐까? 도덕이나 윤리는 결국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일 테고, 그렇다면 일상에서도 충분히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레이스와 로키의 우정이 그걸 보여준 건 아니었을까?<br style=""><br style="">물론 도덕이나 윤리는 친구가 아닌, 보편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 우정이 윤리를 완벽하게 재현해낸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생각에 이 장면은 보편 윤리로 나아가기 위한, 충분히 멋진 출발이었던 것 같다. 둘은 우정으로 인류와 에리디언을 구해냈던 것은 상상의 한계를 넘어선, 말 그대로 숭고한 순간이었다고 해도 부족함 없었다. 이렇게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이렇듯 좋은 이야기는 쇼츠의 시대에도, 아니 쇼츠의 시대이기에 더 소중한 법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045/43/cover150/k692135851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0454373</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생각보다 공정하지 않은 세계 - [공정하다는 착각]</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00975</link><pubDate>Thu, 28 May 2026 00: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3009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633826&TPaperId=173009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470/6/coveroff/k092633826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633826&TPaperId=173009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공정하다는 착각</a><br/>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br/></td></tr></table><br/>코로나19와 부의 증식, 과연 공정했나요?<br>자산 시장만 두고 봤을 때 코로나19 시대 최고 화두는 ‘자산 증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실물 경기는 역성장했는데 코스피 지수는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금 같은 자산 가격 또한 우주까지 뻗어갈 기세로 올랐어요. 그리고 이 상승 열차에 올라타느냐 못 올라 타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렸죠.⠀반대로 이 시기에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들도 적지 않아요. 바로 자영업자와 일용직 근로자가 그 주인공이죠.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일용직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자영업자들은 돈을 벌기는커녕 가지고 있던 돈조차 소진해야 했어요.⠀지난 2020년을 수놓았던 이런 풍경은 ‘공정’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죽어가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거의 모든 세계 정부들이 돈을 풀기 시작했잖아요. 유동성 확장이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한 투자자들은 돈을 벌었지만, 방역의 최전선에서 비용을 부담했던 자영업자들은 벌어놓은 돈 마저 써야 하는 풍경. 이런 상황은 ‘공정’했을까요?⠀<br>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의 함정<br>마이클 샌델 선생님이 쓴 ‘공정하다는 착각’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실마리가 담긴 책이에요. 우리 사회(뿐 아니라 거의 전 세계)를 강력하게 사로잡은 이념, ‘능력주의’가 과연 ‘정답’인지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생각해보자고 제안하고 있어요.⠀저자 선생님이 책이 던지는 질문 중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몇 가지만 소개해 볼게요.⠀✏ “능력은 과연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가?”✏ “능력주의는 정말 노력하는 만큼 보상을 돌려주는가?”✏ “능력주의는 1원칙이 된다면, 구성원 모두 보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저자 선생님의 답은 모두 ‘아니다’에 가까워요. 가령 능력 측정 문제부터 살펴볼게요. 미국의 최상위권 명문 대학(아이비 리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최상위권 SAT 성적을 받아야 한다고 해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최상위권 성적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노력’이 아니었다는 점! 바로 부모님의 소득이었다고 하더라구요. 이미 ‘부모님의 소득’이 ‘명문대 입학의 제일 조건’이 되어버린 건데, 과연 이 기준은 ‘학비 지불 능력’을 입학 조건으로 여겼던 100여 년 전과 뭐가 달라졌을까요?⠀이외에도 르브론 제임스만큼 노력한 농구 선수들이 왜 르브론만큼 수입을 올리지 못하는지, 1980년대 일반 노동자들의 30배 소득을 올리던 금융회사 임원들이 왜 2010년대에는 300배 이상의 수소득을 올리는지 등등을 ‘능력주의’는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요.⠀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결정적인데요. 능력주의를 신봉하게 된 결과 맞이한 게 바로 포퓰리리즘(과 브렉시트,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었다는 거예요. 능력에 따라 보상한다고 했지만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해외로 떠나는 일자리를 붙잡을 수 없었잖아요. 경제적 보상도 없는데, 이걸 ‘능력의 문제’라고 지적하니까 무력감이 안 느껴질 수가 있나요? 그들은 사회로 버림 받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세계화에 반대하는 방식으로 자기 의사를 드러낸 거였어요!(그 방식의 옳고 그름은 일단 논외로 할게요)⠀<br>새로운 자원을 위한 새로운 정의를 위한 정치<br>살펴보았듯이 능력주의가 답이 아니라면 우리에겐 어떤 선택지가 남아 있을까요? 다시 한번 우리나라 상황에 빗대어 설명해볼게요. 일단 팬데믹 시기의 혼란 틈탄 자산 증식이 온전히 ‘자기 능력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정치를 통해 이런 생각을 사회적 합의로 이끌어내는 것 또한 남은 과제 중 하나일 테고요.⠀이 모든 게 쉽진 않을 것 같긴 해요. 얼핏 ‘능력에 따라 보상 받는다’는 원칙은 틀린 구석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견고하니까요(사실 이 책을 읽은 저도 쉽게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이 책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보상을 논의하기 위한 첫 걸음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었다고 생각해요.⠀이 논의를 함께 시작하자는 의미에서 여러분께도 일독을 권해드리고 싶어요!]]></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470/6/cover150/k092633826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4700620</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나의 한국 현대사, 유시민 - [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 개정증보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298072</link><pubDate>Tue, 26 May 2026 15: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2980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99908X&TPaperId=172980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075/76/coveroff/897199908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99908X&TPaperId=172980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 개정증보판</a><br/>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1년 01월<br/></td></tr></table><br/>📖 역사를 잊으면 미래가 없다고?<br style="">“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하잖아요. 저는 이 말을 썩 좋아하진 않아요. “너 역사 공부 안 하면 옛날에 맞은 데 또 맞는다? 응? 그래도 안 할 거야?” 세계 최고의 쫄보 책판다는 도리어 이 말에 더 겁이 나는 거예요. “너 이눔 시키 또 맞기 싫으면 열공해!” 라고 하는 것 같았거든요.<br style="">⠀<br style="">그렇게 역사 때문에 겁을 먹고 있었는데, 세상에, 역사책을 읽어버렸네요? 유시민 선생님이 쓴 ‘나의 한국 현대사’란 책이에요. 좋아하는 작가 선생님의 신간이라 별생각 없이 펼쳐 들었어요. 그런데 책을 덮고 나니 꽤나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중 하나가 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이었어요. 역사를 기억해야 할 이유가 꼭 미래 때문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거든요.<br style="">⠀<br style="">📖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나를 긍정하는 매지컬 모먼트<br style="">‘나의 한국 현대사’를 다 읽고 난 뒤에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보기에 유시민 선생님은 ‘지금의 나를 알기 위해’ 역사를 기억하는 것 같다고 말이죠.<br style="">⠀<br style="">책에 소개된 2020년의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예요. 세계에서 꽤나 잘 나가는 부자 나라이자, 서구 선진국 못지않은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나라이구요. 그러면서도 잘 사는 사람만 잘 사는 나라이기도 해요. 코로나19 방역은 꽤나 훌륭했지만, 산업재해가 앗아가는 목숨은 아직까지도 어쩌지 못하는 나라이기도 하구요.<br style="">⠀<br style="">선생님은 이 책에서 과한 자기 긍정이나 부정 없이, 지금 이 순간의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들여다보고 있어요. 그닥 정당하지 않은 출발(건국)을 결국 뒤집었는데(4·19) 그걸 또 뒤집어 엎고(5·16), 그게 또 어찌어찌 곯아 있던 배는 채워내는 과정(경제발전), 죽은 줄 알았던 독재의 망령이 다시 등장했지만(신군부) 그걸 또 뒤집어내는 데 성공한(6월 항쟁) 나라. 그 어느 것 하나 빼먹거나 비난하지 않고 살펴보니 왜 이 나라가 ‘흉하면서 아름다’워졌는지 알겠더란 말이죠. 그걸 알고 나니 역사 공부가 이렇게 신기한 것이었다는 돈오의 순간이 뙇(!) 오고 말았던 것이죠!<br style="">⠀<br style="">📖 타협주의자 아니죠~ 현실주의자 맞구요!<br style="">또 하나 신기했던 건, 이 과정을 서술할 때 선생님의 어조였어요. 이 모든 과정을 어떻게 보면 건조하게, 다르게 보면 평온하게 설명하고 계셨거든요. 제가 그래도 선생님을 아주 모르지는 않는데요. 말로 논평할 때와는 사뭇 달라서(최근에는 논평도 많이 순한 맛 됐지만) 조금 놀라웠어요.<br style="">⠀<br style="">그런데 골똘히 생각해 보니 꼭 놀랄 일은 아니더라구요. 선생님은 책의 말미에 이루고 싶은 소망을 이야기하거든요. 그런데 그 소망이 ‘흉함’을 부정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가령 책판다가 월급을 많이 받고 싶은데, 월급이 적은 현실을 부정한다고 해서 월급이 오르진 않는 것처럼 말이죠. 어쨌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유를 따져보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하니까요. 저는 이 책을 그렇게 이해했어요. 역사나 현상이 흉하든 아름답든 일단 이해부터 하고, 그 다음에 흉한 부분을 고쳐보자는 것으로 말이죠.<br style="">⠀<br style="">꼭 “흉한 건 지금 당장 없애버려야 한다”며 선생님 같은 사람을 ‘타협주의자’라고 낙인 찍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선생님의 방법이 더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진짜 변화는 현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얼마 동안 역사 때문에 겁을 먹었는데(혹시나 미래가 없어질까봐…), 이 책을 읽고 나니 역사를 공부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막연하나마, 앞을 뭔가 변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br style="">⠀<br style="">이 책을 읽은 보람은 순전히 이 지점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과거를 열심히 공부했는데 반대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혹시 그 보람과 희망을 책판다와 같이 느끼고 싶은 분들 계신가요? 그렇다면 ‘나의 한국 현대사’를 꼭 읽어보실게요~]]></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075/76/cover150/897199908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0757688</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나쁜 유전자, 정우현 - [나쁜 유전자 - 세계사를 뒤바꾼 문제적 유전자 바로 읽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294712</link><pubDate>Sun, 24 May 2026 17: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2947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031375&TPaperId=172947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38/94/coveroff/k26203137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031375&TPaperId=172947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쁜 유전자 - 세계사를 뒤바꾼 문제적 유전자 바로 읽기</a><br/>정우현 지음 / 이른비 / 2025년 09월<br/></td></tr></table><br/>읽는 내내 ‘좋은 독서 경험’에 대해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좋은 독서란 ‘호기심 있는 분야에서 유익한 정보를 얻는 것’이라고 정의해 왔는데, 『나쁜 유전자』를 읽으면서는 솔직히 이런 의문이 들었다.<br/>⠀<br/>“이게 유익한 정보 맞아?”<br/>⠀<br/>내 안의 뿌리 깊은 상식, 그러니까 ‘공부 머리 같은 능력은 타고난다(유전된다)’는 믿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어댔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나의 상식이었던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반박이었던 것이다.<br/>⠀<br/>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결국 유전이 전부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가령 책에서는 동성애 여부를 결정하는 유전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함께, 태아 시절 산모가 분비한 호르몬 같은 환경 요소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br/>⠀<br/>저자의 이 치밀하고 탄탄한 논증을 (사실 조금은 힘겹게..) 따라갔더니, 어느새 내 머릿속엔 ‘유전이 전부인 게 더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br/>⠀<br/>그래서 책장을 덮은 후엔 끝내 ‘너무나 좋은 독서 경험이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편견이 똬리를 틀었던 곳에 새로운 상식이 뿌리를 내린 셈인데,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연 ‘좋은 독서’였다. 더불어 그동안 내가 찾던 ‘유익한 정보’라는 게 사실은 ‘내 입맛에 맞는 정보’는 아니었는지 반성하는 계기도 되었으니, 더더욱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이렇게까지 좋은 독서 체험을 안겨주신 저자 선생님(@romanc_grey)께 감사 인사를! 🙏<br/>⠀<br/>➕1️⃣ 얼마 전 읽었던 로버트 새폴스키의 『행동』을 보면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정보가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행동』을 먼저 읽은 것이 『나쁜 유전자』의 독서에 깊이를 더해준 것 같다. 벽돌책에 도전할 용기가 있다면 함께 읽어보시길 강력 추천!<br/>⠀<br/>➕2️⃣ 그렇다고 전적으로 ‘환경 결정론’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은 꼭 밝혀두어야겠다. ‘그래서 얘 결론이 대체 뭐야?’ 싶으신 분들은 아래 인용한 『행동』의 서문 일부를 참고해보시기를!<br/>⠀<br/>“이 책은 과학에, 특히 생물학에 바탕을 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 점에 따른 중요한 사실이 세 가지 있다. 첫째, 생물학을 알지 못하고서는 공격성, 경쟁, 협동, 감정이입 등등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기를 손톱만큼도 기대할 수 없다. 굳이 이 말을 하는 것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논할 때 생물학을 끌어들이는 것이 부적절할뿐더러 이념적으로 수상쩍다고 여기는 일군의 사회과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못지 않게 중요한 점으로, 둘째, 오직 생물학에만 의존하더라도 똑같은 곤경에 처한다. 굳이 이 말을 하는 것은, 사회과학은 언젠가 ‘진짜’ 과학에 흡수될 운명이라고 믿는 일군의 분자생물학 근본주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여러분이 이 책을 다 읽으면, 어떤 행동의 ‘생물학적’ 측면과 이른바 ‘심리학적’ 혹은 ‘문화적’ 측면을 구별하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임을 깨달을 것이다.”<br/><br/>➕3️⃣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나니 못 쓴 이야기가 너무 많이 생각나서 브런치에 다시 한번 긴 서평을 써볼 예정. 서평을 두 번 써도 좋을 책 맞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38/94/cover150/k2620313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1389434</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아버지의 해방일지, 딸의 화해일지 - [아버지의 해방일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291503</link><pubDate>Fri, 22 May 2026 15: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2915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8832&TPaperId=172915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48/51/coveroff/893643883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8832&TPaperId=172915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버지의 해방일지</a><br/>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09월<br/></td></tr></table><br/>1980년 어느 날, 빨치산 출신 아버지가 감옥살이를 끝내고 돌아왔다. 하지만 화자이자 딸, 고아리가 훌쩍 자란 어느 날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처음 본 남자처럼 낯설었”고(226), “아버지와 나와의 거리가 아득해졌다는 걸”(226) 깨달았다. 가장 예민한 사춘기에 아버지의 빈자리는 두 사람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골짜기를 만들었다.<br>두 사람은 그렇게 멀어졌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빨치산 경력 때문에 할아버지 집안의 가세가 기울었고, 조카 또한 희망하던 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경력이 자신의 앞길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웠음을 깨달은 딸은 마음에 아버지의 공간을 남겨두지 않았다. 형식적인 관계만 유지했을 뿐이다.<br>그렇게 딸은 아버지의 세계에 무심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빨치산의 굴레가 무거웠”던 만큼, 굴레를 벗어던질 상상조차 못했을 터였다. 아버지의 배경 때문에 결혼식 하루 전날 혼사가 깨졌을 때도, 결혼이 깨진 덕분에 방 한칸을 마련했다며 “빨치산 부모 덕을 본 적도 있다”고 읊조리는 딸의 모습에서 나는 체념을 엿보았다. 굴레를 벗어난 삶을 더는 꿈꾸지 않겠다는 체념이었다.<br><br>딸은 장례식을 찾은 조문객 덕분에 아버지가 남긴 세계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고를 당하면 제 논의 모내기를 제쳐두고 수습에 나섰고,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 자퇴한 다문화 가정의 자녀에게 “미국을 이긴 위대한 민족의 후손”이란 위로를 건네며 담배 친구가 되어주었으며, 베트남 전에서 장애를 얻어 공산당을 증오하는 참전 용사와도 술잔을 나눴다. 수감 생활 이후에도 사회주의자로 남았던 그는 사실, 이념의 경계 너머를 바라보고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딸을 사무치게 그리워한 사람이었다. 딸이 모르던 아버지의 얼굴이었다.<br>그 대화가 (이 서평처럼) 마냥 진지했다면 쉽사리 화해하기 어려웠을 터. 투철한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는 뜻밖에도 “삶의 방식이 유머”(7)였고, 그는 딸 모르게 유머와 진지함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가끔은 어이 없고, 때때로 폭소를 자아내며, 이따금 감동을 주는 아버지의 세계와 대화를 마친 딸은 그제야 자신이 체념했다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딸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아파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225) 그제야 딸은 “영정 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231)<br>화해와 함께 마무리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숙제를 남겼다. 이곳에서 어떤 이념은 가져보았던 경험만으로 낙인이 되어버린다. 아버지의 빨치산 활동은 4년에 그쳤지만,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딸은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워서 아버지의 다른 얼굴을 볼 수 없었고, “남한 사회는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아버렸다(252). 그러니까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부녀의 불화에 관한 이야기이자, 이념을 짓누르는 역사 이야기였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도 아버지에게 그랬듯 누군가를 낙인 찍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무엇을 없애야겠다는 강박이 도리어 우리 모두가 원하는 자유를 짓누르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을 남긴 채 소설은 홀연히 독자의 곁을 떠나버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048/51/cover150/893643883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0485187</link></image></item><item><author>책판다</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멸종할 것 같은 순간에도 더 나은 내일을 꿈꿨던 사람들 - [인류 멸종 실패기 - 죽을 운명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지독한 인간들의 생존 세계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250673</link><pubDate>Thu, 30 Apr 2026 22: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haegpanda/172506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7353&TPaperId=172506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17/69/coveroff/k97213735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7353&TPaperId=172506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류 멸종 실패기 - 죽을 운명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지독한 인간들의 생존 세계사</a><br/>유진 지음 / 빅피시 / 2026년 04월<br/></td></tr></table><br/>※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그런데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nbsp;⠀내가 읽고 싶었던 책을 골라읽었던 건 초등학생 때였다. 임진왜란 개전 초기 부산 첨절제사 정발과 동래부사 송상현의 분투를 그린 책이었는데, 전쟁 스펙터클에서 흥분도가 가득 차오른 나는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몇몇 디테일은 아직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생각보다 더 많이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뿐이었을까. 내 도파민은 얼른 다른 역사책을 찾으라고 부추겼고, 나는 그렇게 역사 블록버스터의 세계로 흠뻑 빠져들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정작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들 이야기에 얼마나 귀를 기울였지? 솔직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태어난 시대와 나라가 이렇게 풍족했던 건 더 나은 내일을 꿈꿨던 ‘평범한 사람들’ 덕분일텐데, 그들을 장기판의 말처럼 대했던 것이다. 이번에 협찬 받은 『인류 멸종 실패기』를 읽는 내내 신기하면서도 부끄러웠다. 그런 세상에서 생존해냈다는 게 놀라웠고, 그들을 보지 못했던 내가 참….⠀서론이 너무 길어서 얼른 책 얘기를 해보면, 『인류 멸종 실패기』는 과거 유럽에 살던 평민들의 일상을 소개하는 책이다. ‘멸종 실패기’말에서 눈치챈 분도 있겠지만, 그들의 삶은 ‘상상 이상의 열악함’ 그 자체, 아니 그 이상이었는데, 지금이라면 식품위생법, 공중보건법 위반으로 벌금을 내거나 감옥에 가야 할 일들이 그들의 ‘일상’이었던 것이다. 빵에 핀 곰팡이는 갓 돌 지난 유아의 주먹질 수준. 배설물을 처리할 곳이 없어서 길을 향해 뿌리면 그걸 고스란히 맞는다거나, 빵이 먹음직해 보이도록 별별 중금속을 섞어 색과 컬러를 과장했다. 마취도 소독도 없었던 당시의 수술 장면을 소개할 땐, 마치 내 팔을 자르듯 텍스트가 살아 움직였다(끔찍한 묘사만 소개해서 못 읽을 책처럼 비칠까 걱정이 되는데 오해 말아주시길. 저자는 몇몇 끔찍한 장면들을 덜 끔찍하게 중화해내는 훌륭한 필력의 소유자였다).⠀호기심과 디테일을 고루 채워주는 『인류 멸종 실패기』는 특히 요즘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책이었는데(서평단 활동을 신청한 이유이기도 함), 그 이유가 중요하다. 일단 앞서 말했듯 역사엔 ‘스펙터클’ 또는 ‘(정치)드라마’뿐만 아니라, 일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일상에서 난 두 가지를 깊이 생각해봤는데, 하나는 산소처럼 사방에 널린 풍요가 사실 지극히 예외적 사건이란 점이다. 난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풍요를 갈망할수록 더 깊은 갈등을 낳는 법이기 때문이다.⠀다른 하나는 ‘멸종’이 떠오르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그 시대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살았고, 더 나은 삶을 꿈꿨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 큰 빚을 졌고, 그 빚을 후손에게 갚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는 전쟁에, 인류를 위협하는 기후변화까지, 암울한 미래만 남은 듯하지만, 이전 시대의 사람들처럼 우리도 꿈을 꿔야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테니.]]></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17/69/cover150/k97213735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176902</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