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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안 잘거야 - 곧은나무 그림책 43 ㅣ 곧은나무 그림책 43
헬렌 쿠퍼 글 그림, 정해왕 옮김 / 곧은나무(삼성출판사)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책을 본 첫 느낌은
'잠자기 싫어하는 아이의 맘을 제대로 읽어주고 있구나'하는 것과
조용 조용 자장가를 불러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아이도, 우리 아이처럼 잠자기 싫어서 자동차를 타고 멀리 달아난다.
아이는 맨 처음 만난 호랑이에게 으르렁 거리며 놀자고 하지만 호랑이는 밤은 드르렁 거리며 잠자는 거라고 이야기 한다.
다음에 만난 병정들에게 아이는 쿵쿵거리며 걷자고 하자, 군인 대장은 밤은 쿨쿨 꿈꾸라고 있는거라고 이야기 해준다.
아이는 작은 기차를 만나 쌩쌩 달려보자 하지만 피곤한 기차는 밤은 새근새근 자는 거라고 말한다.
또 아이는 악사들에게 잔치를 벌이고 춤추자고 하지만 악사들은 자장가를 연주해주겠다고 한다.
악사들의 연주로 모두들 잠들고 달님이 나오자 아이는 울먹이며 같이 놀아달라고 하지만 달님은 피곤하다며 잠들어 버린다.
이미 잠들어버린 자동차를 밀고 가던 아이는 이제 한걸음도 갈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때, 저 멀리서 다가오는 그림자가 있는데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는 잘 수 없는 엄마다.
엄마는 아이를 안고 자동차를 밀면서 집으로 간다. 이제 아이는 "이제 잠 잘 시간이야?"라고 하며 하품을 길게 한다.
점점 어두워지면, 여전히 소리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지금은 다들 잘 시간이니까 내일 하자"라는 말을 하고,
아직 말을 하지는 못해서 대놓고 안자겠다고 하지는 않지만
눈을 말똥말똥거리며 집안을 뛰어다니는 아이에게
"이제 그만 자자"라는 말을 한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의 맘을 알아주지 못하는 엄마가 반갑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엄마의 입장에선 재워야 한다는 생각에 '그만', '안돼'라는 말을 반복하며 재우려고 안간힘을 쓴다.
잠자는 일이 하루를 마감하고, 또 내일을 위해 힘을 충전하는 즐거운 휴식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휴식을 맛보기 위한 전초전은 아이와 엄마에게 매일매일의 소모전인 것이 사실이다.
책에서 아이가 만난 호랑이, 병정, 기차, 악사들은 아이에게 밤엔 잠을 자는 거라고 계속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내가 아이에게 "이제 그만 자", "얼렁 자"라는 짜증섞이고 큰 목소리가 아니라
나즈막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아이를 다독거리면서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그림의 색채와 등장인물들의 반쯤 감긴 눈은 책을 보는 아이와 엄마에게도 졸린 기운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스스로 잠잘 시간이라는 것을 알도록 기다려준다는 것이다.
모두 잠들어 버리자 아이는 어찌할 지 몰라 가만히 서 있는데,
그 때, 아이가 정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엄마가 나타나고 스스로 잠잘 시간이라는 것을 말한다.
엄마인 내가 잘 못하는 그것!
바로 기다려주는 일, 그리고 가장 필요할 때 짠! 하고 나타나는 일을 하도록 엄마들에게도 귓뜸을 해주는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신기하게도 이 책이 잠잘 때 보는 책인 것을 아는지,
낮엔 잘 안보다가도 밤이 되면 책을 뒤적거린다.
물론 이 책을 보고나서, 혹은 보면서 잠드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여전히 여러 장난감 중에 하나이고, 보면서 신나하고 즐거워하기는 하지만
나와 아이는 조용하게 잠 잘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서로를 토닥이며,
"밤엔 드르렁거리는 거고, 쿨쿨 거리는 거고, 새근새근 자는 거래… 우리, 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