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보다 - 인문과그림으로 본 한.중.일 삼국지의 세계
김상엽 지음 / 루비박스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저자가 '삼국지에 관한 자료와 그림들을 모은다'고 하자 주위 사람들이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고 에필로그에 나와있는데, 삼국지 팬으로서 이 책에 대한 자신의 오래 된 애정을 표현할 방법을 드디어 찾았다고 기뻐했을 저자가 사람들의 반응에 얼마나 당황했을지 짐작이 간다. 얼마나 멋진 기획인데 저렇게 몰라주다니! 장비의 포효하는 모습을, 적토마 탄 미염공 관우를, 공명을 찾아가는 초조한 모습의 유비를, 서로 다른 세 나라에서 어떻게 표현했을지 보고 싶지 않단 말인가? 그것도 그림으로!

책의 구성은 삼국지의 열렬한 팬이자, 역사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전문가로서의 저자의 면모를 잘 드러내준다. 1부의 삼국지 시대 개관은 당시의 사회, 정치, 문화, 예술 등을 소개해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알게 함으로써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당대 현실 간의 교집합과 차집합을 어느 정도나마 인지하게 해 준다. 2부와 3부, 4부는 삼국지 인기의 요인인 인물들과 극적인 장면들을 한중일 3국의 그림들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사실 2부부터 4부까지의 재미 때문에 책을 두 번 볼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어서 글을 정신없이 보다 보면 그림을 제대로 볼 수가 없고, 기가 막히게 멋진 그림이 등장하면 글을 읽는 흐름이 끊겨 두번째에는 그림만을 정성껏 훑어보았다.

사실 한국사람이 삼국지 보는 재미는 두 가지 알고도 속는 재미 아닌가. 하나는 역사서에 기록된 인물들의 실제 모습과는 다르게 나관중의 문학적 상상력과 대중 취향에 맞게 과장된 인물들의 개성과 활약을 속아넘어가 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중국이 자신들을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펼치는 무용담임을 또한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이다. 저자는 여러 판본의 삼국지연의와 사서의 주요 내용을 비교해 가면서 진행하면서도 위의 두 가지를 세심하게 짚어주고 있다. 맹획이 자기 나라인 베트남에서는 영웅이며 거기에서는 공명을 잡았다 놓아주는 이야기가 있다니 천하의 공명도 그 나라에서는 스타일 구기는 것이다.

일전에 교보문고에 갔다가 이 책의 디스플레이를 보고 잠시 그 자리에서 혼자 웃으며 즐거워 한 적이 있다. 책이 나왔다는 얘기만 듣고 실물은 처음 본 것인데, 벼락처럼 하늘을 뚫고 내려온 것 같은 모습의 장비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나는 표지를 비롯하여 책 곳곳에 나와있는 일본 우키요에 작가들의 섬세하고도 드라마틱한 표현들, 연결동작의 한 면을 칼로 베어낸 것처럼 생생한 표현에 감탄했지만 어떤 사람은 현대 중국 화가가 그린 유려한 삽화에, 또 어떤 사람은 팔을 꽈배기-빵집에서 파는 그것-, 갑옷은 해바라기로 표현한, 나처럼 인정머리없는 아마추어는 '요것도 그림이냐' 싶은 조악한 민화-저자는 코믹호러물 같다고 너그럽게 표현한-에 더 많은 관심과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실로 한 권의 책을 통해 풍부한 글과 그림을 접한다는 것은 이렇게 기쁘고 배부른 일이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있었다. '그림 이야기'이다. 저자가 본문에서 이야기에 해당하는 그림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했고 5부에서 삼국지 그림들과 삼국의 회화 경향 등에 대해 간략하게 짚고 있지만, 그 간략함 때문에 못내 아쉽다. 아마 저자는 글이 길어지고 자기 전공이 너무 두드러질까 봐 저어했는지 몰라도 그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숨은 이야기-삼국지의 장면이 아니라-와 표현에 있어서의 좀 더 전문가적인 설명이 가능했을텐데 그림만 또 훑어보다보니 그 부분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한 가지-역시 <삼국지를 보다>라고 제목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림을 감상하기에 좋은 하드웨어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부분은 쉽게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저자와 출판사가 의기투합해 인터내셔널판으로, 그 때는 정말 그림이 주가 되는 고급스러운 화집으로서의 <삼국지를 보다>를 시도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삼국지를 다시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보다 나도 이렇게 멋지게 내가 좋아하는 삼국지에 오마쥬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삼국지를 먹다>를 생각해 봤지만 그건 인육요리가 나오니 큰일이고, <페미니즘으로 본 삼국지>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처자를 의복같다고 떠들고 다니는 울보 유비부터 한 입 물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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