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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도 몰랐던 조선 - 신봉승의 조선사 행간읽기
신봉승 지음 / 청아출판사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그동안 모르고 지나쳐온 조선의 역사를 한권의 책으로 만났다.
그리고 ‘현시점을 기준으로 나는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자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고구려, 백제, 신라 등도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 흔적일 뿐이었던가!....
책에 등장하는 50여 편의 역사를 주제로 한 에세이들은 무지한 조선에 대한 내 지식의 밑거름이 되어주었고, 내가 살고 있는 현재와 가장 근접했던 조선. 그 조선에 대해 알아가는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국사시간에 배운 조선의 27대 왕들의 순서대로 정렬되어 있어 조선의 시작과 끝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책의 첫 장 프롤로그에서 조선의 굴욕외교의 원천을 알고 나서는 조선의 고통이 내 마음속까지 와닿아 쓰라렸다.
내용은 이러하다. 조선왕조가 창업되면서 명나라의 국가문서에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의 역신 이인임의 아들로 기록되는 불상사로 인해 조선은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우리의 태조는 환조 이자춘의 아들’이라고 눈물로 호소하고, 180년 동안이나 계속된 명나라의 잔혹하고 비열한 탄압에 굴종하며 지내다 비로서 선조 6년 11월 1일에 매듭지어져 개정되었다는 사건은 충격이었다. 조선왕조를 창업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말의 역신 이임임의 아들로 적힌 명나라의 문서를 고치지 못한다면 조선의 임금들은 자신의 무능과 불충을 감당할 길이 없었기에 모든 국력을 동원해서 명의 요구를 받아들여 주었다는 사실은 정말 울분을 토해내게 한다.
책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흥미로운 사건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임금의 이름 뒤에 붙는 조와 종의 차이점은 왕조초기에 태조나 세조와 같은 ‘조’가 자리 잡고 있는데다가 그들이 모두 쿠데타와 같은 정변으로 왕권을 탈취했던 임금이었으므로 ‘조’의 기념에 투쟁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스물두살에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른 세종의 식견은 한권의 책을 1만번씩 읽어낸 독서량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즉 배우고 익힌 바는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는 조선주자학의 근본을 실천한 셈이다. 그러기에 오늘날까지도 위대한 업적을 이룬 왕으로 존경받고 있지 않나 싶다. 오늘의 정치지도자들이 성군 세종의 따뜻한 인품과 강력한 실천의지를 흉내라도 내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 든다.
(p.43) 역사는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금가루도 거울에 묻으면 때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조광조의 이야기는 조선시대의 언로가 완벽하게 트여있음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였다.
직속상관의 파직을 요구하는, 그것도 언관의 우두머리격인 대사헌과 대사관의 파직을 직간하는 조광조의 뜻이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사항이다. 자기 몸사리기에 바쁜 정치인들은 보고 배워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조광조가 시행한 과거제도 개혁도 본받을 만 하다. 각국의 초야에 묻혀있는 인재를 천거하게 하여 그들에게 시험을 보게 함으로써 이론과 실행을 겸비한 참된 인재를 가려 뽑아야 된다고 한 주장으로 인재등용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과거제도가 비리에 찌들어 있던 시기에 능력위주로 인재를 등용한다는 것 자체가 멋진 일인 것 같다.
10만 양병의 허구에 대해 알고 나서는 이땅의 지식인들 모두가 식자우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웠다.
병자호란으로 인해 청나라에 9년간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는 조선이 그토록 섬겨온 명나라가 패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했고, 앞으로 섬겨야 할 청나라의 내정까지 꿰뚫어 그들의 언어도 능숙하게 구사할줄 알았다. 게다가 중국땅에 들어와 있던 서양문물까지 접했다. 그런데 어이없는 인조의 광태가 소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가 조선왕조에 서양문화가 접목되는 기회를 상실하게 만들었다는 내용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생겨난 ‘환향녀’의 이야기는 청에서 돌아온 그녀들은 이미 더렵혀진 여인네들이라며 ‘화냥년’으로 몰고가 받아들이지 않아서 가족에게 버림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고,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등장한 이야기를 통해 조선말기의 부패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준다.
애낳은지 사흘밖에 안됬는데 군적에 오르고, 시아버지가 죽은지 몇 년인데도 아직 군적에 올라와있고, 군역을 않는다고 소를 잡아가고, 그런 현실이 오죽이나 답답하고 분통터졌길래 자신의 생긱기를 자른 농부의 이야기는 정약용의 가슴을 저미게 했고, 울며 밤을 지새워 목민심서를 쓰게 했다. 이 내용에선 나마저도 조선의 부패덩어리인 지방관아들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고, 농부의 슬픔과 분통터짐이 내 마음까지 후비는 슬픔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으며 부러웠던게 있다면 조선시대의 상소제도 였다.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백성, 천민이라도 올릴 수가 있고, 정책의 잘못과 양반들의 착취, 임금의 비정까지도 기록할 수 있었다. 또 올라온 모든 상소문은 승정원(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에 접수되고, 승정원에서는 접수된 상소문을 추리거나 내용을 수정할 수가 없었다. 올려진 그대로 빠짐없이 그대로 임금에게 올렸다는 것이다. 요즘은 대통령 비서실에서 민원이 담긴 문건은 해당부처에 이월하고, 조금 중요하다 싶으면 그 내용을 요약하여 대통령에게 보고한다는데, 이런식으로는 국민과 대통령이 소통한다고 볼 수 없다. 차라리 조선시대가 상소제도로 왕과 백성들의 의사소통이 더 잘 됐던 것 같아 부럽기만 하다.
“역사를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 라는 저자 신봉승의 말에 동감하는 바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역사교육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주변국가인 중국과 일본만 하더라도 자국의 청소년들에게 정체성을 확립하게 하기 위한 역사교육을 강화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
영어교육은 유치원때부터 가르치면서 정작 알아야 될 역사를 등한시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을 뒤돌아보면 서글프다. 지금부터라도 반성하고 바로잡아야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