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 모던걸과 모던보이를 매혹시킨 치명적인 스캔들
이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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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바탕에 신여성의 모습이 그려진 표지부터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제목마저 연애사건을 다루고 있기에 읽기 전부터 가슴이 뛰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존재하던 시대에는 부모님이 정해주시는 배필을 만나 자식을 낳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 그런데 그 시대에 자유의지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려던 신여성이 표지의 주인공으로 등장했으니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은 매우 컸다. 그리고 연애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나이기에, 경성을 뒤흔든 연애사건이라고 하는 제목부터 눈길을 끌었다. 내 눈과 귀가 온통 이 책에 집중 되어 있어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책속에 기록된 모던걸과 모던보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읽을수록 충격 그 자체였고, 이 책은 시대가 남긴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중세조선과 달리 근대경성은 서구사상들이 조선에 유입되면서 사랑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기에 이른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연애사건을 다루었다. 최초로 '연애’라는 단어가 등장했고, 새로운 학문을 익히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젊은이들은 앨렌 케이의 자유연애론을 들여놓았다. “어떤 결혼이든 사랑이 있으면 도덕이고, 없으면 부도덕” 이라는 그녀의 사상은 당시 숨 막히던 결혼 관념을 깨뜨리는 파격적인 연애론 이였다. 그 연애론의 영향으로 새로운 지식계층인 모던걸과 모던보이들의 대담한 사랑이 주를 이룬다.

책은 깔끔하게 연애연보를 4부로 정리해 놓았다. 

 1부에서는 기생 강명화, 신여성 윤심덕, 여급 김봉자를 통해 연애와 정사의 주역이 변화됨을 드러냈다. 죽음으로써 맹세를 지킨 사회주의자 장병천과 기생 강명화, 사의 찬미를 노래하며 현해탄에 몸을 던진 윤심덕과 김우진, 죽음의 연애 공식을 실행에 옮긴 청년 의사 노병운과 카페 여급 김봉자. 그들 모두는 자살로써 삶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사랑을 했다.
2부에서는 여성화가 나혜석, 김원주, 김명순의 이야기를 통해 낭만주의 연애론을 실천한 신여성들의 사랑과 삶을 통해 자유연애가 어떤 사회적 적응 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 있다. 정조란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취미에 불과한 것이라는 정조 취미론을 펼친 나혜석, 정조는 육체가 아니라 정신에 있다는 신정조론을 주장한 김원주, 남성 문인들에 의해 억울하게 문란한 여인으로 낙인찍혀 모델소설의 희생양이 되어 불행한 삶을 살다 끝내는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김명순에 대한 안타까운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땐 언론의 무서움을 다시한번 느꼈다. 정확하지도 않은 사건을 보도하던 시대가 빚은 오보가 그녀를 더욱더 약자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나를 충분히 가슴 아프게 했다. 자유연애의 광풍이 불어 닥친 근대 조선에서 모든 연애가 곧 행복과 자아의 발견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음을 김명순의 생애를 통해 알 수 있었다.

 3부에서는 홍옥임과 김용주의 동성애자 철도 자살사건과 독살미인 김정필에 관한 이야기들로 연애의 과도기에 나타난 색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김용주과 홍옥임의 자살 사건을 통해서는 현재에도 ‘커밍아웃’을 선언하면 세상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기 마련인데, 당시엔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 훨씬 관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이 시대에 존재했더라면 아마 욕을 꽤나 먹고 살았을 듯싶다. 또한 독살 미인 김정필 사건에서는 구여성들이 자신들의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남편 살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는데서 충격적이었다. 어린나이에 강제로 시집을 가서 절망적인 삶을 살던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이 들통 나지만 않으면 비인간적 취급을 받는 이혼녀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에서 저지른 남편살해라는 방법이, 구여성들에게 주어진 한 가지선택 이였다고 해도 정말 잔인한 것 같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4부에서는 낭만주의 연애론을 부르주아의 연애라 비판하며 당시 혁명가들을 중심으로 펼쳐진 프롤레타리아 연애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조국의 독립과 혁명을 꿈꾸며 경성 시내를 활보하던 삼인당과 여성 트로이카의 이야기, 일제하 운동사상 가장 낭만적인 로맨스로 기억되는 박진홍과 김태준의 연안행에는 한국 사회주의 운동사가 그대로 묻어난다. 그러나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조국독립운동에 희생된 그들도 사람이었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하고 , 재혼도 했다. 그런데 박헌영과 똑같이 세 번 결혼했던 허정숙에게는 정조관념이 희박한 여성으로 동지들의 기억속에 남았다. 혁명가들 사이의 붉은 연애마저도 낭만주의 연애가 그러했듯 여전히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에서 안타까웠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사랑과 혁명, 그리고 비극적 결말에 마음이 씁쓸했다.

이 책이 내 가슴에 남긴 여운은...
당시에도 지식에 눈뜬 사람들은 일본과 중국,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 세계를 넘다느는 세계인이었다는 사실, 비겁하지 않고 자신을 기꺼이 희생해가면서 독립을 위해 애쓴 사회주의자들, 교과서에서 배웠던 이름들이 등장하고, 그들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는 것, 그것이 신문에 실려 있어서 당시의 사진도 함께 구경한 점. 그 시대가 만들어 낸 비극적인 사랑과 결말들.. 그것들 모두가 나에겐 흥미롭게 다가왔고, 나를 이 땅에서 편안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게 해준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게 해준 책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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