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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집
기시 유스케 지음 / 창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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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내가 겁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두운 밤에 혼자 다니는 것도 무서워진다. 귀신이 나올까 무서워서가 아니다. 난 귀신보다는 사람이 더 무섭다. 어린 시절에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별로 겁이 없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커가면서 싫든 좋든 이 세상의 온갖 잔인하고 무서운 일들을 알게 되기 때문에 그래서 겁쟁이가 된 것이 아닐까 하고 내 나름대로 추측해 본다.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은 평소에 내가 '귀신 따위보다는 사람이, 우리 인간이 훨씬 무섭고 잔인한 존재다.'라고 생각해 왔던 것을 잘 나타내 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보험을 매개로 하여 벌어지는 잔인하고 소름 끼치는 사건들. 단지 잔인하기 때문에 무서움을 주는 소설이 아니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섬뜩한 분위기가 시종일관 나를 전율케 만들었다. 새벽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드나들 때 주인공 신지의 집을 몰래 찾아가던 사치코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얼마나 섬뜩하고 무서웠는지.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사치코가 칼을 들고 덤벼들어 나를 토막내지 않을지 무서움이 절로 들 정도였다. 

이 소설에서는 '사이코파스'라는 단어가 나온다. 유전적으로 범죄자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한다. 주인공의 애인인 메구미는 사치코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했지만 그래도 그것은 환경의 잘못이라고, 사치코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옛날의 나였더라면 메구미의 그런 의견에 찬성을 했겠지만 나이가 들어버린 지금의 나는 확실하게 그렇다고 단언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유전적으로 범죄의 기질이 있다고 단정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모호하게 대답을 유보할 수밖에 없는 심정, 그래서 씁쓸하다. 

고모다 사치코의 놀라운 범죄, 그리고 잔인함. 그녀는 죽었지만 또 다른 고모다 사치코들은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암안리에 활동하고 있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사이코파스이기 때문에? 아니면 메구미의 말처럼 환경의 잘못? 어느 쪽이든 우리 사회의 병폐를 '검은 집'은 호러 소설로 포장하고 꼬집어 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우리 사회의 일면이기에 이 소설이 더욱 더 섬뜩하고 무서웠던 게 아닐까? 

호러 소설로서는 정말 드물게 내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에필로그처럼 아직도 수많은 고모다 사치코가 우리 사회에, 우리 주변에 숨죽이고 있다는 소름 끼치는 사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무섭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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