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피스토
루리 지음 / 비룡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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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악마와 인간을 두고 내기를 합니다. 애시당초 이길 수 없는 베팅이였죠. 신은 모두를 구원하고 악마만을 버려두었습니다. 악마는 버림받은 떠돌이 개의 모습이 되어 살아갑니다.

길을 가던 소녀가 우연히 뒤를 돌아본 것을 계기로 떠돌이 개의 모습을 한 악마와 소녀는 친구가 됩니다. 서로의 비밀을 하나씩 나누어 가지고 둘은 온갖 장난과 짖궃은 행동을 하며 세상을 누빕니다. 무서울 것도 거리낄 것도 없는 둘에게는 웃음만이 추억으로 기억으로남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인간인 소녀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악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소녀는 나이가 들어 노파가 됩니다. 둘이서 함께한 기억들도 하나 둘씩 잊어가려고 합니다. 악마는 안타까워 어쩔 줄을 모릅니다. 악마는 소녀의 기억을 되살리는데 금지된 마법을 쓰기로 합니다. 그렇게 악마개가 찾아낸 구겨진 소녀의 기억들은... 그리고 소녀가 신과 내기를 하며 빌었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요.

많은 어른들을 울게 만들었던 「#긴긴밤」 의 작가 루리님의 새 작품이 그래픽 노블의 형태로 찾아왔습니다. 책은 둘의 이야기부터 개의 이야기, 소녀의 이야기, 다시 둘의 이야기로 이어지며 마음을 두드립니다. 글도 그림도 너무 좋아서 몇번을 반복해 읽었어요. 둘이 하는 장난들은 웃음이 피식 나오게 귀엽고, 시간이 지나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은 눈물이 핑 돌고 맙니다.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조용한 소녀와 신도 버린 외로운 악마개. 서로가 구원이었던 이 관계에서 인간의 소멸을 지켜보는 마음은 악마의 어떨까요? 인간은 결국 기억을 잃어가고 잊어가게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마개가 인간이 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신은 인간을 구원했고, 인간은 악마를 구원했고, 그래서 악마는 인간이 되고 싶었을까... 그래서 소녀는 내기에서 이기고 싶었을까...

루리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오랜 친구와 친구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했어요. 기억이 사라져가는 어머니와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친구와, 아주 작은 기억들까지 붙잡고 또 붙잡으려는 친구의 어머니 이야기를요. 결국은 기억을 잃었다는 비극으로 맺음하는게 아니라 작고 새로운 기억들까지 다시 쓰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요. 작가님은 오랜친구의 이야기라고 했는데, 저는 그 친구가 작가님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해 보았어요.

「긴긴밤」에서도 느꼈지만 루리 작가님이 보여주는 그림과 글 속에서 서로 맞잡은 손, 같이 걸어가는 발걸음, 마주보는 눈의 힘은 아주 크고 강한 것임을 느껴요. 캄캄한 어둠을 비추는 것이 작은 불빛 하나일 수 있는 것처럼, 서로가 등불이 되어준다면 세상이 차갑지만은 않을거라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비룡소 서평단 이벤트 당첨으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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