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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이론 -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 테니스 ㅣ 알마 인코그니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알마 / 2019년 11월
평점 :
『끈이론』으로 데이비드 포스트 월리스의 테니스 글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아니다. 작년 4월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출간을 기점으로 김명남 번역가가 소개한 페더러 에세이의 명성에 대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글은 2006년 뉴욕 타임스에 ‘종교적 경험으로서의 페더러’라는 제목으로 처음 실렸고 이후 『살과 빛의 몸을 입은 페더러』로 재출간 되었다. 책 뒤편에 적힌 빌 게이츠의 “테니스를 못 치거나 심지어 안 보는 사람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이라는 표현에 동의하면서도 테니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입장에서 쉬운 독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월리스 특유의 끝없이 이어지는 묘사와 때로는 본문을 위협하는 엄청난 양의 주석을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읽다가 숨이 가쁘고 눈은 휘둥그레지는데 처음에는 당황스럽다가도 어떠한 지점에선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끈이론』에 실린 5개의 글 중 첫 번째 ‘토네이도 엘리에서 파생된 스포츠’를 읽다보면 독서를 시작할 때의 차분한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센트럴일리노이의 거친 바람을 맞으며 테니스를 치던 어린 월리스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기하학적 코트와 공의 궤적과 그림자가 드리우는 각도에 대한 온갖 수학적 단상에 정신 못 차리게 된다. 두 번째 글 ‘트레이시 오스틴이 내 가슴을 후벼 판 사연’에서 월리스는 사람들이 스포츠 스타의 회고록을 찾는 심리를 정확하게 간파한다. 그 뿐인가. 우리가 최상급 운동선수들에 매혹되는 이유에는 그들이 뿜어내는 초월적 아름다움이 있으며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것, 결국 ‘이야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선택, 자유, 제약, 기쁨, 기괴함, 인간적 완벽함에 대한 어떤 본보기로서 테니스 선수 마이클 조이스의 전문가적 기예’에선 월리스에게 역설적인 매혹의 대상이 된 마이클 조이스를 중심으로 테니스 안의 사람들(선수, 코치)과 그들의 관계에 주목했다면 ‘유에스 오픈의 민주주의와 상업주의’는 테니스 바깥의 풍경을, 그 산업을 관찰한다. ‘살과 빛의 몸을 입은 페더러’로 이 책을 마무리하고 나면 서문에 등장하고 부제에 인용된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라는 테니스를 향한 수식은 납득 가능하다.
데이비드 포스트 월리스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장르로 느껴진다. 그 주제가 테니스든 랍스터든 문학이든 간에 집요함과 전문성으로 안전하고 확실한 토대를 마련하지만 지나치게 사적인 영역으로의 침범은 위태롭기도 하다. 그는 ‘중독’을 다루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페더러 보다 페더러에 대한 그의 글에 더 매혹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남다른 재능과 홀린 듯한 열정으로 신체적 위업을 달성한 이 사람들을 알고 싶어 한다. 관객인 우리 또한 무언가에 홀린다.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저 모든 심오함과 친밀해지고 싶다.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우리는 이야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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