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가 어쨌다구? What's Up 2
슬라보예 지젝 지음, 한보희 옮김 / 새물결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전체주의가 어쨌다고?] 슬라보예 지젝

제길. 또 질 것 같다. 이번 지방선거도 그들의 승리로 끝날 것 같다. 뭐, 절망감에 자살하지는 말라고, 지난 선거에서 강기갑이 당선되었던 것처럼, 소소한 위안은 있을지라도, 대세는 결국 그들이 차지이다. 하긴, 대한민국 65년의 역사 중에서 민주주의가 정권을 잡은 것은 10년 남짓. 그것도,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베버식으로 말하자면) 카리스마적인 권위를 가진 인물들에 의해서, IMF라는 일종의 그들의 원죄를 가졌으며, 이회창이라고 하는 무능한 대표자를 가진 그들을 상대로, 모든 상황이 민주 진영에게 유리한 조건이었음에도, 민주진영은 똥줄 타며 가까스로 겨우 이겼을 정도이니. 어지간해서는 우리나라의 구조상 그들이 정권을 잡는 것은 옛날 신라가 당과 손잡아 민족을 팔아넘겼을 때부터, 일본이 침략을 하든 말든 조선시대 사림을 거쳐 이완용, 박정희, 전두환, 쥐, 조중동 까지 쭈욱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인 듯하다.

왜 우리는 항상 지는 걸까. 왜 그들은 항상 이기는 걸까. 왜 그들의 공세는 항상 좋은 위치를 선점하는걸까. 그들이 퍼붓는 낙인 - 잃어버린 10년, 대북퍼주기, 어뢰로 돌아온 대북지원 등 - 사회적 담론을 선점하며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반면에 우리의 언어는 왜 이리 무력하기만 하는가. 왜 그들이 양산한 수많은 헛소리들은 쉽게 먹히는 걸까. 왜 가든파이브나 ‘여자는 아는게 쥐뿔도 없어요’와 같은 저들의 삽질들은 왜 씨알도 안 먹히는 걸까.

한가지 잘 못 이해해왔던 것이 있었다. 우리는 이성적인 담화에 의한 상황을 전제해왔지만, 실은 이것은 무의식의 문제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정책을 제시하고 설득력 있는 언어로 보수주의자들을 격파하고 시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진보를 실현하려고 하지만, 대개 그러한 노력은 헛수고로 돌아간다. 진보주의자들은 한국의 시민들, 한국사회, 그리고 수구세력의 의식 너머 심연에 있는 무의식을 보지 못한다. 의식의 영역에서의 설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틀렸다. 그들의 행위는 이성, 의식에 기초하지 않는다. 그들의 행위는 무의식의 영역에 놓여있다. 아직도 김대중, 노무현의 유령에 사로잡힌 그들의 모습은 편집증적 증후이며, ‘미국’이란 아버지, 즉 대타자를 갈망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아버지를 언제든 죽인 준비는 되어있다. 실은 이미 ‘일본’이란 아버지를 한 번 죽인 적이 있었던 그들이기에.

파시스트, 전체주의자들이 성공했던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그들은 대중들의 무의식을, 대중들의 욕구를 잘 이해하였으며, 효율적으로 이용하였다. 우리나라의 수구세력과 조중동 역시 한국사회의 무의식에 능통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그들은 한국사회의 무의식을 형성하였다.

바로 이곳은 정신분석학이 필요한 지점이다. 정신분석학의 역할, 그것은 환자의 무의식의 너머에서 욕망의 모순과 환상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 환자가 자신의 욕망과 환상을 대면함으로써 자신의 외상을 치유하는 것. 따라서 기라타니 고진이 [일본 정신의 기원]을 통해 일본 사회의 정신분석학을 시도했듯이, 한국 사회의 정신분석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들의 무의식을, 그들의 대타자와 objet petit a 한국사회의 정신분석학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욕망과 환상을 드러냈을 때 우리는 한국사회가 지닌 무의식의 영역 그곳에 존재하는 욕망과 마주치며 그들의 진실과 대응전략을 찾을 수 있다. 지젝의 글을 현재 한국사회에서 읽어야 할 이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