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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평점 :
해철은 "다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는 자들을 멀리 하라고 당부했다.
자신을 위한 자기 만족을 위한 행동이 대부분이니까.
진심으로 위한다면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움직이는 것이라 했다.
부담 듬뿍 주면서 "내가 너를 위해 이만큼 했다."고 하는 건
행한 만큼의 억압도 행사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P29
바로 어제, 막 <닥치고 정치>를 읽었기 때문일까,
왜 자꾸 정치와 연관이 되어 생각나는 걸까.
우리는 어쩌면 그게 억압인지 알면서도 당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근데,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것도 그저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흔히 드라마들에선 잘난 남자주인공의 기쎈 어머니들이 나온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오드리나,
<제빵왕 김탁구>의 엄마는
자신의 아들의 사랑을 받해하고, 자신의 아들의 생활을 억압하며
'다 너를 위한 거야'라고 말한다.
그래, 진심으로 아들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엄마가 생각하는 아들, 내 아들의 위치를 자신이 정해놓고선 하는 말이다.
아들이 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아들이 원했으면 하는 것.
다 자기 욕심이다.
자식의 좋다 싫다는 의견은 그저 의견일 뿐,
이혼 재혼의 결정은 어른들이 하는 거였다.
결과가 뻔하니 차라리 미우니까 이혼에 찬성하고,
좋으니까 재혼에 찬성한다고 하는 게 덜 비참했다.
그 과정에서 지란은, 어른들의 어떤 사과로도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p66
시각커뮤니케이션의 이해 수업 중, 경노훈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대게, 남자는 여자의 외모에 홀려 결혼하고, 여자는 남자의 뻥에 속아 결혼한다'고
그래서 이혼율이 그렇게 높다고하셨다.
'사랑'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저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 내 귀에 실제로 들리는 것에만
속아
진짜를, 그 속을, 마음을, 실재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결혼이 늘어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만큼 이혼이 늘어나고,
그보다 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안게 된 아이들이 늘어난다.
담임은 연구실이 떠나가도록 웃었다.
고구마 줄기와 병아리, 그리고 백숙......
이 소박하고 따뜻한 말들을 열여덟살 남학생에게 들었다.
고등학생의 뇌는 무조건 대학으로만 채워야 할 것처럼 세상이 떠들어 대는 바람에,
본인들도 그래야 하는지 알고 0.1점마저 절박해한다.
대학을 통과하지 않으면 추레한 인생이 될 거라는 무언의 협박에,
점수와 동떨어진 세계를 탐색하는 아이들은 죄라도 진 것처럼 큰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해일은 그냥 꽂혔고, 그래서 직접 부화시키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고등학교 2학년이다.
담임의 숨통이 트였다.
p111
그리고 나도 숨통이 트였다.
분명 존재한다. 해일같은 아이가. 해일같은 부모님이.
입시를 위해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남들이 하니까, 해야만하니까 누군가가 정해버린 잘못된 틀속에 갇혔다.
난 소심하게 발악한 적이 있다. 그 답답함에. 어쩌면 무서워 숨어있었던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게 다가 아니란 것은 알고있었다.
아니, 지금 이시간에도 생활에 쓸모도 없는 삼각함수 앞에서 무릎끓는 학생이 있을거다.
무릎을 왜 거기서 꿇나.
하. 근데. 이런얘기. 지금해서 뭐해.
이미 난 지나왔고, 지금 거기있는 애들에게, 이런말은 와닿지않겠지.
당신이 내 앞길을 책임져 줄꺼냐라는 불만만 듣겠지.
사실, 대학생이 된 나는 아직도 보이지않는 어떤 것에 갇혀있다.
참. 아직 답답하다.
"문제는 자기가 누굴 죽여도 된다고 믿는 멍청한 자들이지."
"말이 좀 샜는데, 하여간 왕비의 거울이 자기 내면의 거울이라는 거다.
자기가 묻고 자기가 대답하는 거야.
그러니까 거울이 남을 지목하면 독사과를 먹일 게 아니라,
왜 그런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다.
자만심과 자존심은 격이 다르다."
p150
하. 난 용창느님같은 선생님.스승을 만나지 못했을까.
물론, 좋은 선생님들은 많았다.
근데, 이렇게 멋진 스승은 만나보지 못했다.
용창느님의 말씀들을 다 옮겨 적고 싶었으나, 책을 아직 읽지 않는 사람들이나,
내가 나중에라도 궁금해서 다시 찾아 읽도록, 아껴야지.
자만심과, 자존심의 격
멋진데?
고백 실패.
뽑아내지 못한 고백이 가시가 되어 더 깊이 박히고 말았다.
잘못 고백했다가 친구들을 잃을까 겁이 났던 것이다.
p171
고백. 그것도 실수를 고백하는 것.
그 고백은 시간을 먹을 수록 더 깊이 박힌다.
용서와 이해는 한시라도 빨리 진정성을 가진 고백을 해야
더 잘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룰수록, 신뢰도 잃는 것이다.
오랜 야간 자율 학습으로 밤길에 익숙한 아이들이다.
어둠을 쓰고 목적지만 바라보며 걷는.
누가 말을 거는 것초자 귀찮다.
혹시 누구 아니세요?
글쎄요.
실례했습니다.
뒤돌아, 사실은 내가 그 누구 맞습니다만......
지쳐버린 아이들의 의도적인 숨김.
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주변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한다.
그리고 쓸쓸해한다.
p173-174
고등학교 딱 2학년
딱 공감하기 시작할 말들.
내가 이 책을 고등학생때 읽었다면 어떻게 됬을까.
위로받았을까, 아니 그러면서도 어쩔수없잖아 해버리고 말았을까.
내 의지가 담긴 자발적인 생활이 아니기에,
귀찮다.
그리고 쓸쓸하다.
명료하게 판결할 자신이 없으면, 중재 그거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다.
중재의 탈을 쓰고 이쪽 저쪽 어느 쪽이 자신에게 더 이로운지 간을 보는 아이.
그런 아이에게는 빛이 없다.
검은 빛이든 하얀 빛이든 존재감 제로다.
p222
박쥐같은 아이들이 꼭 있다.
여기붙었다 저기붙었다.
진짜 존재감 제로다.
그렇기에 더 간을 보는 것일까.
삶의 근육은 많은 추억과 경험으로 인해 쌓이는 것입니다.
뻔뻔함이 아닌 노련한 당당함으로 생과 마주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합니다.
p289 작가의 말
어디서부터 정리의 말을 시작해야할까. 올해 내 생일에 선물받은 책이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 책을 선물해준 친구들과 조금 거리감이 생겼다. 아마도,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가시를 고백하지 못했기 때문이니라. 가시가 박힌채 서로에게 다가가려니, 그 박힌 가시들이 자꾸만 나를 더 깊게 파고드니까,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딱 이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대체 이 가시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박혔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가시따윈 박혀있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하루만에 읽었다. 이말도 우습지. 몇시간만에 가뿐히 읽어내려갔다. 킬킬거리며, 끄덕거리며, 수많은 공감과 이해를 반복하며 읽었던 것 같다. 내 고등학교 2학년, 딱 그때가 떠올랐다. 내가 절때 잊을 수 없는 그 2학년. 반마다 '미연이'가 존재한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선생님의 알바를 하는 아이들. 자기 손은 직접 더럽히지 않고, 그 깔끔하지 못한 입으로 헛소리를 옮기는 아이들. 책을 다 읽고 나니, 결국은 이 책은 미연이를 욕하는 책인 것 같았다. 그리고 제일 불쌍한 것도 미연이었다. 해일과 지란의 가시는 뽑혔다. 그리고 가시가 뽑힌 자리에는 뽀송뽀송한 새 살이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미연은? 마지막까지 혼자 남았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고치지도 못했다. 그대로다. 성장이 없다. 그래서 가장 안타깝다. 미연이를 위한 해결방법은 없다. 담임선생님의 말씀은 그저 자기를 헐뜯는 얘기일 뿐이다. 왕비의 거울을 깨뜨려줄 무언가가 없었다. 미연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완득이>를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마구마구 완득이가 땡기게 만드는 책인 것 같다. 대학생인 아닌,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정말 어떻게 되었을까. 참 궁금하다. 아무튼, 모든 고등학생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저마다 마음속에 가시를 품고 있는 대부분의 고등학생에게 전해주고 싶은 책이다. 가시를 고백하세요. 시원하고 깔끔하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