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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선인장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사사키 아츠코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2는 머리가 혼란스러웠습니다.
모자와 오이가 찾아왔을 때 무척 기뻣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갑자기 텅 비어버린 방안이 너무 쓸쓸해서 당혹스러운 것 또한 사실입니다.
p28
지금 내 상황이 이런 걸까.
그냥 혼자 지낼때는 몰랐다.
누군가가 방문하는 반가움과
또 그 뒤에 남는 쓸쓸함.
왠지 방이 더 커보이고 싸늘해보인다.
2에게 문학은 수수께끼였습니다.
때문에, 뭔가 으스스하고 수상쩍은 것은 죄다 '문학적인 것'이었습니다.
2에게 그것은 편리한 단어였습니다.
p33
수북히 쌓인 책들과 그 사이를 기어다니는 거북이에게도 거미줄이 쳐져있는
'모자'의 방을 둘러보고 2가 내린 결론이다.
수수께끼라는 건 알지 못하는 것, 그러니까 미지의 것이다.
문학적이란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가득 들어있는 것일까.
으스스하고 수상쩍진 않은데,
2와 오이는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합니다.
2의 눈에는 모자가 마치 '도망중인 범죄자'처럼 수상쩍게 조였기 때문이며,
오이의 눈에는 '일상에 지친, 그저 글너 아저씨'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두 사람 모두,
그 모습이 모자와는 '다른 사람'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모자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p72
호텔선인장이 아닌, 밖에서 무심코 바라본 상대가 낯선 사람으로 보였다.
그것도 좀 지루하거나, 질나쁜 사람으로.
그들은 모두 서로 아는 사이라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겉모습이 말해줄수 있는 건 얼마나 될까?
그리고 나는 나를 모르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숨긴다는 것은 도둑질의 시작이니까."
p73
'오이'가 생각도, 악의도 없이, 그저 말해본 말이었다.
근데, 내겐 생각도 악의도 떠오르게 한 말이다.
정말? 그럼 나는 무수히 많은 도둑질의 시작을 하고 있었나.
숨기는 것과 말할 필요가 없어 말하지 않는 것은 무슨차이지.
아니, 이해하지 못할 게 뻔해서 말하지 않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 걸까.
그래도 말해야 할까.
상대편이 나의 이야기를 완전 이해까진 아니라도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세상은 변하는 거야.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난 여행갈에 나섰어.
'모자'란 한 곳에 안주하며 살 수 있는 게아니.
그런 사실, 아주 오래전에 알았으면서,
어쩐 일이지 지금까지 잊고 있었어……."
p153
호텔선인장의 철거 소식을 듣고, 또 한번 세상은 변한다는 것을 실감한 모자.
그래, 모자의 말처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래서 세상살이는 슬프고, 또 그래서 아름답다.
에쿠니 가오리, <반짝반짝 빛나는>이후에 보는 두번째 책.
처음에 '숫자 2','오이','모자'가 호텔 선인장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이게 사람이름인가? 싶었다. 근데 읽다보니, 사람이 아닌 진짜 그 사물인 것 같았다. 근데 또 읽다보면 사람인 듯도 싶었다. 대체 뭘까. 처음에는 2와 오이, 그리고 모자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라 생각했다. 오이와 모자는 어느정도 이해를 하겠는데, 숫자 2는 뭐지? 왜 하필 2일까? 혼자 사는 사람인데. 3도 4도 아니고 왜 2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그냥 그냥 숫자 2는 2라고, 오이는 오이라고, 모자는 모자라고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2가 될 수도 있었고, 오이가 될 수도 있었고 모자가 될 수 있었고, 또 그 호텔선인장에 살고 있는 검은 고양이가 될 수도 있었다. 그제야 이해가 됬다. 여기 나오는 2,오이,모자는 딱히 내가 아니더라도 우리 옆집에 사는 그 사람, 앞집에 사는 저 사람이 될 수 있는 거다. 작가는 그렇게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거다.
사람같기도 한데, 모자를 쓴 2,를 본 순간 패닉이 된건 내가 너무 현실적인 책만 읽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판타지'나 '동화'같은, 어릴 때는 몇번이고 읽었던 그런 책들을 지금은 까먹고 있었다. 이 책은 어른을 위한 동화책이다. 그렇게 가볍지도 않지만 또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다. 읽고나면 뭔가 모를 먹먹함이 남기도 한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호텔선인장이라는 이상한 나라에 초대되었다가 책이 끝나면 우리도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호텔선인장이 그 곳에 이젠 없다는 말을 보며, 뭔가 모를 섭섭함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현실로 돌아왔다. 음..그래요..
별점을 몇점을 줘야할지 고민했다. 재밌었다. 뭐 나한테 재미없는 책이 어디있겠냐만은, 어쩌면 이해할 수 없을 것도 같고, 어쩌면 너무 이해하기 쉬울 것도 같고, 어쩌면 재밌을 것도 같고, 어쩌면 지루할 것도 같아서. 3개만 줬다. 뭐 별점은 지극히 주관적이니까. 솔직히, 책이나 영화같은걸 평점보고 읽는 사람을 별로라 생각한다. 뭐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정보가 없으면 그런 정보도 효과적이니까. 그래도, 좀 그렇다. 음... 언젠가부터 내가 그러지 않아서 일 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