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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그대,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 뛰는 청춘이다.
어리석은 답사를 지금부터 시작하라.
프롤로그 2010년 겨울 김난도
"나는 너무 늦었어!"
라고 단정 지으려는 것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기만'의 문제다.
혹시라도 포기나 좌절의 빌미를 스스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대, 아직 이르다.
적어도 무엇이든 바꿀 수 있을 만큼은. p21
내 나이 21살. 이제 고작 6시 18분.
지금까지 잠을 자고 있던 시간이었다.
이제 막 깨어나야 할때.
이런 걱정 저런 걱정 다 접어두고,
일단 잠에서 깨어나,
나갈 준비를 해야지.
늦은 것은 없다.
시작할 일만 남았다.
그대, 좌절했는가?
친구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그대만 잉여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잊지말라.
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 있다.
p34
계절은 계속 흘러간다.
그 흘러가는 계절 속에 꽃들은 저마다 절정의 시기가 다르다.
내가 좀 늦게 피거나, 너무 일찍핀다해서, 그게 꽃이 아니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다.
차분히 자신의 개화를 준비해야하지 않을까.
Blossom
꽃은 피고, 지고, 또 피고, 또 지는 것이다.
나중에 정말 큰 돈을 만들고 싶다면,
푼돈으로 몇 년 일찍 재테크를 시작하기보다는
'더 나은 나'를 만드는데 돈을 써라.
p65
그래도 아직 학생이란 신분을 가지고 있는게 대학생이다.
니가 아무리 돈 되지 않는 일을 한다고 해서 나무랄 사람은 없다.
그저, 좋아하고,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니가 꿈꾸는 일을 하라.
생산적인 투자.
일회성의 소비적 투자가 아닌,
잠정적이고 장기적인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투자.
지금 몇푼 모아서 적금을 넣는단들 무슨 소용일까.
가장 나에게 투자할 시간이 많은 대학생,
그 시간투자와 함께 너 자신을 위한 투자를 하라.
그렇다면 우리,
열등감을 인생의 밑짐으로 삼고 살아가면 어떻겠는가?
감추거나 부정하려 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성취의 동력으로 인정하면 살아가면 어떨까?
그럴 때, 열등감은 인생의 풍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p80-81
질투를 느낀다는 건 분명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부러워 하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거다.
그 질투를 느끼게 하는 대상이나 그 대상의 행동 하나,혹은 물건 그것을 얻기 위해,
한껏 부러워 하고, 배워야 한다.
누군가를 부러워 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그것에 대한 욕망,소망,의지를 갖고 있다는 거다.
우리는 겨우 30cm 정도 위에서 죽을 줄 알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p97
굉장히 내가 위태로워 보인다. 너무 힘들고 너무 쓸쓸하다.
죽을 것만 같다고 생각하는 건, 엄살일지도 모른다.
나는 엄살이 아니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진짜 엄살이다.
정말 죽겠거든, 지금 매달려있는 그 밧줄을 놓아버려라.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
그저, 보이지 않는 다는 것에 우린 두려움을 느낄 뿐이다.
죽지 않는다, 손을 놓고 숨을 고르고 힘을 길러라.
그리고 다시 도약하라.
그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는 것이다.
포기가 항상 비겁한 것은 아니다.
실낱간이 부여잡은 목푝 너무 벅차거든,
자신있게 줄을 놓아라.
대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날개를 펼쳐라.
p101
사랑을 할 것이거든, 온 몸을 던져 사랑하라.
무엇이 두려워서 그렇게도 이리저리 계산하는가?
p112
사랑에는 종류가 많다고 생각한다.
하, 근데 요즘 젊은 사람들(물론 나도 젊은 사람이지만ㅋ)의 사랑은 어떤가,
이리재고 저리재고,
밀고 당겼다, 만났다 헤어졌다, 어장관리만 하기 급급하다.
'너로 설레고 온통 흔들리던'그런 느낌을 느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랑은 당연히 가변적이다.
그러나, 청춘인데, 내 온 마음 다 받쳐 사랑한번 해봐야 하지 않을까.
뭐, 청춘이 무슨 벼슬은 아니지만,
청춘이란 변명으로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아주 뜨거운 사랑한번 해보자.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그러무로 너무 흔들리지 말라고.
담담히 그 성장통을 받아들이라고.
그 아픔을 훗날의 더 나은 나를 위한 연료로 사용하라고.
p318 에필로그_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어쩌다어쩌다, 이 책을 사게 되었고, 과제를 한다고 읽게되었다.
이제 막 지독한 입시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해방이 아니라 더 무섭고 치열한 사회에 내던져진 것이다. 대학교 1학년 학기초만 해도 놀고 마시고, 이제 막 주어진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근데, 그 자유라는 것이 무섭다는 걸, 2학기가 다 지나가기도 전에 느꼈다. 내가 무심코 지나간 학교의 도서관에는 저마다 두꺼운 책들과 씨름하는 선배들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나는!, 나는?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 뭐가 됬든 이젠 내가 나를 책임지고 먹고 살아야한다. 근데 난 무얼 할수 있나? 지금까지 배웠던 것들은 죄다, 주어진 공식에 미지수의 해답을 구하는 것이었고, 윤동주의 시 속 시어가 가지는 의미, 인구공동화 현상, 등등, 그냥 문제를 보고 풀고 정답을 맞추는 일이었다. 근데 갑자기 알아서 생활하라니, 돈을 벌라니, 취업을 하라니, 어른이 되라니? 대체 가르쳐준게 뭐가 있다고 이렇게 내가 하찮게 느껴지도록 만들어 버리는 거지?.
난 뭐지? 난 뭘 할 수 있지? 남들이 다 하는데, 난 왜 아무것도 안하지? 뭐 부터 시작해야하지? 끊임없는 고민과, 좌절과, 의지가 떨어졌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좋을때다'란다. 너만 힘든거 아니랜다. 자기들도 분명 다 겪었을 텐데, 고작 하는 말이 그정도다. 뭘 해라 가르쳐 주지도 못할 망정 그것도 못한다고 나무란다. 내가 뭘 어쨋길래? 앞으로 해야할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해.관심. 그것만 있으면 됬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이 책이 아직까지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이유는 그것이 아닐까.
어느 누구도 아닌, 나의 이야기. 어른들이 그냥 무시해버리는 나의 이야기. 그리고 그런 나에 대한 관심과 이해.
사람들이 점집을 찾아가 점쟁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게 나의 이야기니까 더 집중해서 듣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에서 위로를 받는 것이다.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속에서 나의 모습을 찾고, 나만 그런것이 아니다라는 위안과 나의 이유모를 힘듦을 위로받는 것. 이게 그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이다. 뭐 어떻게해라 이렇게 해라 이런 말보다, 힘들었구나, 이랬었구나. 이말이 더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솔직히 뒷부분에 이렇게이렇게하라는 것은 지루했지만, 딱 책을 읽기 시작한 그 순간은 아주 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청춘이니까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