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에 핀 빨간 봉선화 - 1948년 한국, 10·19 여순항쟁 한울림 지구별 그림책
안오일 지음, 장선환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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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중 5종 교과서에서 “여순 사건은 반란이다”라는 문구가 들어갔다고 한다. 한국에서 역사를 배운 성인이라면 여순 항쟁에 ‘반란’이라는 말이 같이 따라붙는 것이 그리 어색하진 않을 것이다. 군인들이 국가의 명령을 어긴 것을 건조하게 ‘반란’이라고 표현하는 게 무엇이 문제인가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레드 컴플렉스가 여전한 한국에서, ‘그 군인들 공산주의자들 아니었느냐’고 묻는 이들도 여전하다. 작년 여름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여수와 순천의 명예 회복은 요원하다. 제주의 사람들을 내 손으로 죽일 수 없어, 죽음을 각오하고 국가의 명령을 거부한 이들을 ‘반란’이다 ‘폭도’다 명명하는 것에 아직도 관대한 세상이다.


그런 와중 만난 이 동화책은, 여순 사건의 큰 흐름이 아닌 어느 음악 교사와 그 제자, 그리고 그의 동생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교과서 속 건조한 텍스트로 만났던 것과 달리, 나물 뜯고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소녀, 그리고 그 소녀의 동생이 목격한 참상은 담담하여 오히려 생생하다. 이유도 모른 채 그냥 ‘거기에 있었다’는 이유로 무고히 죽어나간 수만의 시민들,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과 목격자들은 이 시대 우리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을까? 이웃이었던 경찰 아저씨가 내 학교 선생님의 목숨을 앗아가는 비극을 체험한다는 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깊고 진한 상처를 남기는 것일까?


자라나는 아이들이 반란인지 항쟁인지를 배우기에 앞서, 그 때 그 시간과 장소를 살았던 이들의 삶을 상상해보기 위해 이 책을 먼저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교과서 속 몇 줄에 납작하게 눌린 이야기들 속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숨어있을지 조금이나마 가늠해보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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