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신중한 해결책은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고 친족을 인터뷰하는 거예요. 텔레비전이 바로 그렇게 하고 있어요. (중략) 독일어에 그런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좋은 단어가 하나 있어요. <샤덴프로이데>, 즉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이죠. 모름지기 신문은 그런 감정을 존중하고 북돋워야 해요. 그러나 현재 우리는 그런 비참한 사건에 관심을 가질 의무가 없어요. 불의에 분개하는 것은 좌파 신문에 맡깁시다. 그게 그들의 전문이니까요.
올해의 한 문장,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에서
초록을 바라보면서 ‘숲의 봄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으로는충분하지 않다.자신이 보고 있는 그것이되지 않으면 안 된다. 땅 위를 기어가는 검은 줄기와꽁지깃 같은 양치식물의 잎이 되어야 하고,그 잎들 사이의 작은 고요 속으로들어가야 한다.
올해의 한 문장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큰 혼란이 벌어져요. 영혼은 머리를 잃고, 사람은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거죠. 영혼들은 그래도 자기가 주인을 잃었다는 걸 알지만, 사람들은 보통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