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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 사랑의 여섯 가지 이름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게 다가올 사랑을 겸허하고 열렬히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터키의 황석영’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듣는 아지즈 네신이, 독수리와 물고기, 나무와 인형, 담쟁이덩굴, 남자 석상과 여자 석상, 나비와 여자 그리고 시인의 다섯 가지 사랑과, 튤슈를 향한 하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도, 그 대상도, 사랑의 형태도 다양하게 그려진다.
- 하늘의 독수리, 바다의 물고기.
독수리는 용맹스러우며, 강직하고, 두려움을 모르며, 죽음에 임박하기 전에는 낮은 곳에서 날지 않는다. 하늘의 제왕으로 군림하며 독특한 생을 살아왔던 독수리는 사랑에 대해 알지 못했다, 아름다운 물고기 익투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익투스는 너무나 아름다운 바다의 여왕이며, 무엇보다 뛰어난 춤사위로 의사를 전달하는 물고기이다. 익투스는 세상에서 자신보다 더 아름다운 춤을 출 출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 때문에 죽음마저 불사하는 용맹스런 독수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 예상하면서도 내심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독수리와 물고기의 사랑은, 결국 독수리의 죽음으로 끝났지만, 익투스의 마음속에 언제까지나 살아 있을 독수리의 사랑에 가슴이 찡하다.
- 나무와 인형
우두커니 외로운 나무는 커다란 몸과 우거진 잎사귀로 쉬고 싶은 자를 보듬어 안는다. 강렬한 햇살과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되기도 하고, 나들이를 나온 한 가족에게 쉼터를 제공하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오랜 세월이 걸리지만 양심 없는 인간들이 버리고 간 각종 쓰레기를 흡수해 주변을 정리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공기를 정화시킨다.
팔다리가 잘리고, 구멍이 뚫리고, 옷마저 누더기처럼 찢겨버린 인형. 첫 번째 버려짐.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인형은 언제 누구에게 몇 번이나 버려졌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인형은 미지의 주인이 자신을 사랑해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마침내 인형이 처참한 몰골로 정착한 곳은 나무 그늘 아래였다. 인형은 나무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무는 묵묵히 들어준다. 서로가 서로를 소중하게 여길 때쯤, 나무에게 기대고 싶었던 인형, 인형을 보듬고 싶었던 나무. 나무에게 인형이 흡수되는 것으로 합의를 본다. 그것이야말로 최대의 실수이며, 불행의 시작이었음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나무와 인형의 이야기를 보며 사랑하는 것이 ‘똑같아지는 것’ 혹은 ‘누가 누구에게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담쟁이덩굴
황폐한 사막(담쟁이덩굴에게는)에 떨어진 담쟁이덩굴. 함께 그곳에 떨어진 다른 담쟁이덩굴들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버렸지만, 강한 생명력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을 가진 담쟁이덩굴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노력한다.
담쟁이덩굴은 타고 올라갈 만한 대상이 있어야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번번이 실패한다. 담쟁이덩굴이 마음을 다해 사랑을 하고 함께 높은 곳에 이르고자 했던 상대들은 여지없이 담쟁이덩굴을 실망시키고 절망의 나락으로 빠뜨렸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스스로의 몸을 부풀려 지지대로 삼고 높은 곳을 향해 오르던 담쟁이덩굴은 결국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랑에 상처받고, 또다시 사랑에 치유되고, 그래서 사랑을 믿고, 배신당해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쟁이덩굴과 포개진다.
- 석상들의 사랑
오래된 남자, 여자 석상. 그들은 박물관이 새롭게 단장될 때 만난다. 서로 마주보게 되는 운명적인 상황에서……. 비록 오래되어 그들의 모습은 깨지고 부서져 볼품없이 변했지만, 첫눈에 사랑을 알아보는 모습은 막 조각되었을 당시와 같았다.
닿을 수 없는,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안타까움 속에서 맞이한 짧고 열렬한, 환상 같은 사랑의 시간. 그 시간을 통해 그들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박물관에 원인 모를 사고가 일어나 석상들이 완전히 깨어짐으로써 그들은 사랑을 이루게 되었다. 깨어진 남자의 손, 여자의 손이 살짝 맞닿아 있는 결론으로 미루어 본다면.
- 나비와 여자 그리고 시인
나비는 몇 시간 혹은 길어야 며칠 동안의 아름다운 죽음의 춤을 추기 위해 오랫동안 번데기가 되어 스스로를 속박해야 한다. 그들의 목적은 죽음의 춤과 알을 낳는 작업뿐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목적을 달성하기도 전에 허무하게 죽어버린다.
나비의 이야기와 함께 한 여성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결혼보다는 아이를 낳는 일 자체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한 여성의 이야기가…….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는 늙은 시인이 있다.
폭풍에 휘말려 날개가 젖고 알을 낳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 나비와, 진정한 사랑이 결여된 채 아이를 낳는 일에만 관심을 둔 여자의 사랑은 위태롭다. 그러나 나비와 여자보다, 결국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늙은 시인의 사랑은 더욱 위태로웠다.
폭풍 속에서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판자에 알을 낳는 나비, 사랑을 버리고 건강한 유전자를 가진(자신이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해줄) 남자에게 떠난 여자,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에게 버림받고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결국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 늙은 시인의 이야기는,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 마지막,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70이 넘은 남자는 끊임없이 튤슈를 찾아 헤맨다. 튤슈는 어린 여자아이이거나, 발랄한 20대 처녀이거나, 30~40대의 여인이기도 했으며, 매력적인 흑인 여성이기도 했다. 그래서 튤슈는 어디에나 존재할 수도 있고, 그래서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노인은 매일 한 차례 광장에 나가 자신이 튤슈를 사랑하는 이유를, 튤슈를 찾아 헤매는 이유를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친다.
“그녀를 찾고 있지만 찾을 수 없고, 찾는다 할지라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그녀를 향한 열정은 강렬해집니다. 튤슈와의 사랑은 제게 찰나의 삶으로 남을 겁니다. 번개가 치는 그 순간처럼. 이 때문에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항상 사랑할 겁니다.”
더 이상 소리칠 기운이 없어질 때까지,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자신이 튤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소리치는 노인과 단 하루 술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인연으로 그를 위해 전보를 치는 주인공(화자).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조차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아지즈 네신의 동화 같은 문장 때문일 것이다.
노인에게 튤슈는 한 여인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이지 않을까.
위의 다섯 이야기 속에서도 끊임없이 그려지는 환상 같은 사랑.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사랑의 모습을 아련한 동화처럼 풀어내는 작가 덕분에, 동화를 더욱 아름답게 꾸며주는 환상적인 삽화 덕분에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책을 덮을 때까지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