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쉬 스토리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현실적인 꿈이라고 해야 할지, 몽환적인 현실이라고 해야 할지.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피쉬스토리>를 읽으면서 나는 굉장한 즐거움과 함께 고민에 빠졌다. 이 사람, 어쩜 이렇게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할까! 나는 왜 시답잖은 말장난에도 유쾌해지는 걸까! 이사카 코타로를 놓고 아무 죄책감 없이 ‘허풍’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다음 장을 넘기고 싶은 마음에 안달복달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지하철에서 어쩌면 나는, 앞 장을 제대로 읽지 못한 상태에서 다음 장으로 넘겨버렸는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읽어보면 처음보다 더 나은 감동과 색다른 기분을 느끼게 될 것 같다.
 

단편과, 단편보다 약간 짧은 단편 그리고 그보다 약간 긴 네 개의 단편이 모인 <피쉬스토리>. 표지가 정말 마음에 쏙 들지만 나는 제목에 불복하겠다. [동물원의 엔진]이기를 바란다. 나는 동물원의 엔진이 가장 좋았다.
 

* 한밤중의 동물원에 가보지 않겠어? - 동물원의 엔진
* 관습이라는 거, 뭔가를 숨기기 위해서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거야. - 새크리파이스
* 당신의 고독이 물고기라면, 누구에게 헤엄쳐 가서 닿을까? - 피쉬스토리
* 울면서 먹는 포테이토칩이라면 종류를 착각해도 괜찮아. - 포테이토칩
 

한밤중에 엉뚱한 친구 녀석과 함께 동물원에 가봐야겠다. 하나 혹은 둘을 데리고. 그러면 늑대 우리 앞에서 엎드려 자고 있거나 혹은 깨어 있지만 미동조차 하지 않는 한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남자의 사연에 대해 제멋대로 추리한다. 어쩌면 남자의 뒤를 밟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복병은 분명히 우리의 예상을 빗나간, 전혀 다른 곳에서 매복하고 있을 것이다. 가령 동료를 위해 장난감을 땅에 묻은 팀버 늑대 같은…….
아쉬운 것은 추리를 좋아하는 선배의 자살, 의외의 강도짓을 하고 도주까지 했던 친구, 살해당한 시장과 사라진 팀버 늑대의 행방, 사이비 종교에 빠진 공무원 친구의 결말이다. 그러나 이사카 코타로는 능숙한 거짓말쟁이이며, 매력적인 최면술사이다. 딸과 아내를 쌍둥이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절대 거절할 수 없는 거짓말쟁이.
그 결말을 명확히 하지 않은 것은 이사카 코타로의 능력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담백한 상태의 소설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동물원에 가자! 휴일을 사자와 함께!]
 

빈집털이가 본업이고, 부업으로 탐정을 한다? 이런 독특하고 기발한 발상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관습이라는 것, 그것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거나, 글로 써서 세상에 알리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바로 이사카 코타로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지나친 관습은 분명 문제를 발생시키게 된다. 마치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구로사와에게 좋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그건 내 취향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냐]
 

나는 언제 단 한 번이라도 내 고독을 물고기로 여겨본 적이 있었을까? 물고기가 아니라면, 가령 썰지 않은 치즈나 미디엄 사이즈 티셔츠쯤으로 여겨봤던 적은?
뭐랄까,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노래 한 곡 혹은 한 장의 앨범을 통째로 들었다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책의 제목이 ‘동물원의 엔진’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토라짐은 여전하지만) [피쉬스토리]가 좋은 작품이라는 것에서 만큼은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역시 내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 고독이 물고기라면 그 지독한 거대함과 맹렬함 앞에 고래마저도 달아날 것이 틀림없다]
 

유쾌함? 슬픔? 이사카 코타로 소설에서는 다양한 감정이 스스럼없이 그려지고 있다. 그래서 ‘이건 거짓말이야’ 하고 단단히 마음을 먹어도 어느새 빨려 들어가고 마는 것이다. 그 속에는 너무 치밀한 계산이 들어 있어서 오히려 계산적이지 못한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인물들이 있으니까. 또다시 등장한 빈집털이범. 그래도 한 가족, 한 교실, 한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니까. [새크리파이스]와 [포테이토칩]은 너무 다르다.
 
[홈런이 나온다고 해서 그걸로 무엇이 변해? 그까짓 홈런 하나로 사람을 구할 수 있어?]
 
여기까지가 끝인 것은 아니었다. 왜냐면 작가와의 인터뷰가 남아 있었으니까. 나는 인터뷰 내용을 읽으며 소외감을 느꼈다. 그 이유는 이사카 코타로의 전작을 단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사카 코타로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열망이 끓어올랐다. <피쉬스토리>가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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