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의 날씨
볼프 하스 지음, 안성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프롤로그가 독특하다’라고 생각하며 다음 장, 그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프롤로그. 소설을 읽을 때 다음 장을 엿보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여기자와 하스의 대화는 책 마지막 장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독자들은, 지난 15년 동안의 휴양지 날씨를 모두 외우고 있는 남자 코발스키와 휴양지의 소녀 아니의 이야기를 여기자와 하스의 대화를 통해 들어야만 한다. 물론 이런 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익숙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걸릴 테지만.
 
볼프 하스는 이 독특한 시도를 통해 소설의 형식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이야기 전개의 취약점을 해결하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서브 스토리와 메인 스토리를 같은 공간에 배치하지 않고 서로 다른 공간에서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하나는 비토리오 코발스키 씨와 아니의 러브스토리, 다른 하나는 인터뷰를 통해 냉소적이고 이지적인 여기자와 소설가 사이의 팽팽한 신경전, 소설을 보는 소설가와 기자의 입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여기자와 하스의 인터뷰는 5일간 이루어진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이 볼 만하다. 문장 하나하나를 놓고도 뜨겁게 벌어지는 신경전은, 나 스스로 그들의 생각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충격을 선사하는 것이었다. 여기자와 하스의 대화는 ‘무엇’에 대해 알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그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경험하게 되는 놀라움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
 
첫째 날 인터뷰는, 형식의 생소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그들 대화는 사소한 것이었고 질문과 대답 사이의 경계도 모호했으며 이런 대화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리고 다소 진지하지만 우아하고 지적인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비토리오 코발스키 씨의 15년과 휴양지의 소녀에 대한 진실은 한참 뒤로 물러나 있다. 나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서서히 드러나는 ‘그날’의 모습과 독자가 원하는 소설의 핵심은 예상치 못한 형태로 다가온다. 그것은 기존 소설들에서와 마찬가지 방식, 즉 묘사하는 형식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공식적으로는 전해 듣는 것이며 비공식적으로는) 엿보는 와중에 접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나는 소설을 읽으며 코발스키 씨와 아니를 직접 만나지 못했다. 그들에 대해, 하스의 소설에 대해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여기자와 소설가를 보았을 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