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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ㅣ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평점 :
김이설 작가의 6년 만의 신작 경장편 소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200페이지 남짓 짧은 분량이라 금세 읽을 수 있었는데요.
작가정신 '소설,향'이라는 중편소설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소설, 향'은 1988년 '소설의 향기, 소설의 본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처음 선보였는데요.
새롭게 '소설의 본향 / 영향/ 방향'이라는 슬로건에 따라 책이 출간되고 있어요.
이전에 <0영 ZERO 零>과 <붕대 감기>를 읽어본 터라 이번 책도 기대가 됐답니다.
사실 김이설 작가님의 책은 이번에 처음 읽어보았어요.
이번에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을 읽고 나서, 김이설 작가님의 전작도 읽어보고 싶어졌답니다.
구병모 작가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시더라고요.
마지막에 '우리의 문장을 싣고 달리자'라는 제목으로 글을 실으셨네요.
평소 좋아하는 작가님이라서 반갑기도 했고, 공감되는 부분도 많아서 참 좋았어요.
목차만 보았을 때는 연작소설인가 했는데 그런 건 아니더라고요.
분량이 200쪽 정도로 짧은 편인 경장편 소설이에요.
우리의 정류장
목련빌라
필사의 밤
치우친 슬픔이 고개를 들면
여름 그림자
시인의 밤
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해보자면, 주인공 '나'는 40대, 비혼, 장녀입니다.
시인을 꿈꾸어 왔지만, 이혼한 여동생의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현실은 하루 종일 티도 안 나는 집안일을 하면서 지쳐갑니다.
돌봄 노동과 가사 노동으로 지쳐가는 사이에 시인이라는 꿈은 멀어져 가고요.
사귀던 남자친구와도 멀어지고, 식구들은 그런 그녀를 당연히 여겨요.
그리고 나 주변의 인물인 아빠, 엄마, 조카들, 남자친구 등과의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나'는 필사를 하면서 현실을 잊고 싶어 합니다.
무엇보다도 흰 종이 앞에 앉아야 했다.
쓸 수 있든 아니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단 1초만이라도 흰 종이 앞에 앉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대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중략)
내 안의 언어를 꺼내지 못한 실패자가 된 나는
필사 노트를 펼쳐 시집의 한 페이지를 한 글자 한 글자
아주 천천히 베껴 써 내려갔다.
- 42~43쪽 발췌
나는 하고 싶은 게 없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걸 못 찾은 것도 아니라,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걸 모른 척 무시하고 안 보이는 척
외면해왔던 것이다.
- 62쪽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가족의 모습
그런데 문장으로 한 발짝 떨어져서 보고 있으려니 답답하기도 하고 화도 나더라고요.
주인공은 고단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왜 시인이 되지 못했는지 스스로 묻고 답을 찾으려고 하죠
아침에서 저녁으로 시간이 흐르고,
때가 되면 계절이 바뀌듯이,
너무 당연해 이유를 붙일 까닭 없이,
그 사람과 나는 만나왔다.
(중략)
당연한 계절의 변화를 같이 바라보고, 느끼며,
이야기해왔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내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 11 / 13쪽
가장 힘든 집안일은 부엌일이었다.
매일 세끼를 차리고 치우는 일,
그 반복적인 일이 끝나지 않는 소모품으로 전락되는 기분이 들게 했다.
105쪽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은 하지 않았다.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린 적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잠시만이라도 나는 나로 살고 싶었다.
170쪽
주인공과 작가님처럼, 다시는 언어를 잃지 않기 위해서,
나의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해서,
나만의 무언가를 찾아 꾸준하게 매진하는 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돌봄 노동과 가사 노동으로 지쳐가는 주인공을 묘사할 때는
너무나 공감이 되어 화도 나고 슬프기도 했지만
스스로의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나도 힘이 났답니다.
아름다운 문장도 많아 밑줄도 열심히 그어가며 푹 빠져 읽었던 책이에요.
* 작가정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