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승주나무 > '북역' 열하일기를 추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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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는 이 책이 국내에서 번역되지 않고, 북한에서 먼저 번역되었다. 헌 책방을 유람하다가 '열하일기'의 원문과 '북역'이 함께 있는 세트를 구매했다. 전공이나 성향이 '박지원'과 맞은 터라 사전을 열심히 뒤적거리며 읽은 기억이 있다. 물론 그렇게 읽은 내용은 때가 되면 잊혀진다. '민옹전'은 열하일기가 아니라 '방경각외전'이라는 책에 실린 작품인데, 번역본을 대조해가며, 원문을 훑었던 애틋한 기억이 떠올라 전문을 인용한다.
민옹전(閔翁傳)
민 영감은 남양 사람이다. 무신년(영조 4년, 1728)* 민란에관군을 따라 토벌에 끼여서, 그
공으로 첨사(僉使) 벼슬을 얻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끝내 벼슬하지 않았다. 민
영감은 어릴 때부터 매우 영리하고 총명하며, 말을 잘하였다. 특히 옛 사람의 기이한 절개나
거룩한 발자취를 흠모하여, 이따금 의기에 북받치면 흥분하기도 하였다. 그들의 전기를 읽을
때마다 한숨 쉬며 눈물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는 일곱 살이 되자
"항탁**은은 이 나이에 남의 스승이 되었다."
고 벽에다 크게 썼다. 열두 살 때에는
"감라는 이 나이에 장군이 되었다."
고 썼으며, 열세 살에는
"외황아(外黃兒)는 이 나이에 유세(游說)하였다."
고 썼다. 열여덟 살 때에는
"곽거병(漢나라의 장수)은은 이 나이에 기련(祈連)에 싸우러 나갔다."
고 썼으며, 스물네 살 때에는
"항적(項籍)***은 이 나이에 오강(烏江)을 건넜다."
고 썼다. 그러다가 마흔이 되었지만, 아무런 이름도 이루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또
"맹자는 이 나이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 크게 썼다. 그 뒤에도 해가 바뀔 때마다 이런 글들을 쓰기에 지치지 않았다. 그의 집
벽은 모두 검정투성이가 되었다. 일흔 살이 되자 그의 아내가
"영감, 올해에는 까마귀를 그리지 않으시려우?"
하고 놀렸다. 그러자 민 영감이 기뻐하면서
"그러지. 당신은 빨리 먹이나 갈아 주구려."
하고 말하더니 곧
"범증(范增 ; 항적의 謀士)은 이 나이에 기이한 꾀를 좋아하였다."
고 커다랗게 썼다. 그의 아니가 발칵 화를 내며
"꾀가 아무리 기이하더라도, 장차 언제나 쓰시려우?"
하고 따졌다. 민 영감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옛날 여상(呂尙)****은 여든 살에 장수가 되었지만, 새매처럼 드날렸다우. 이제 나를 여상
에게 비한다면, 오히려 어린 아우뻘밖에 안 된다우."
지난 계유(1753), 갑술년(1754) 사이에 내 나이는 열일여덟이었다. 병으로 오랫동안 시달
리면서 노래·글씨·그림·옛칼·거문고·골동품 등의 여러 잡물들을 제법 좋아하였다. 게
다가 지나는 손님들을 모아 놓고 익살스럽게 우스운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을 달래었지
만, 깊숙이 스며든 우울증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였다.
"민 영감은 기이한 사람이지요. 노래도 잘 부르지만, 말도 잘 한답니다. 그의 이야기는 신
나고도 괴이하고, 능청스럽고도 걸직하지요.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치고 마음이 상쾌하게
열리지 않는 이가 없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몹시 기뻐서 그에게 '함께 놀러 오라'고 부탁하였다. 그래서 민 영감이
나를 찾아왔는데, 나는 마침 벗들과 더불어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민 영감은 서로 인사도
나누기 전에 퉁소 부는 자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그의 뺨을 치며 크게 꾸짖었다.
"주인은 즐겁게 놀자는데, 너는 어째서 성난 꼴로 있느냐?"
나는 깜짝 놀라서 그에게 까닭을 물었다. 민 영감이 말하였다.
"저놈의 눈알이 잔뜩 튀어나오도록 사나운 기운을 품었거든요. 저게 골낸 게 아니고 무엇
이겠수?"
내가 크게 웃었더니, 민 영감이 또 말하였다.
"꼭 퉁소 부는 놈만 성난 게 아니라우. 피리 부는 놈은 얼굴을 돌리고 우는 듯하고, 장구
를 치는 놈은 이마를 찌푸린 채 시름겨운 듯하다우.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물
고 마치 무서운 일이라도 난 듯, 아이와 종놈들까지도 웃지 못하고 말도 못하게 되었으니,
이런 음악으로 어찌 기쁠 수 있겠수?"
나는 곧 그들을 돌려 보내고 민 영감을 맞아들여 앉혔다. 그는 비록 몸집이 작았지만, 흰
눈썹이 눈을 덮었다. 그가
"내 이름은 유신(有信)이고, 나이는 일흔세 살이라우."
하고 스스로 말하였다. 그러고는 나에게
"당신은 무슨 병이 들었수? 머리가 아픈 거유?"
하고 물었다. 내가
"아니오."
대답했더니, 그는 또
"배가 아픈 거유?"
하고 물었다. 내가 또
"아니오."
대답했더니,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병이 아니라우."
그는 곧 지게를 열고, 들창을 걷어 괴었다. 바람이 소슬하게 불어오자 내 마음이 차츰 시
원해져서, 예전과 확실히 달라졌다.
그래서 민 영감에게 말하였다.
"나는 특히 음식 먹기를 싫어하고, 밤에는 잠을 못 잣다오 이게 바로 병이지요."
민 영감이 몸을 일으켜 나에게 치하하였다. 내가 놀라면서
"영감님, 무엇을 치하하신단 말이오?"
하고 물었다. 그가 말하였다.
"당신은 집이 가난한데 다행히 음식 먹기를 싫어한다니,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겠수? 게
다가 잠까지 없다니, 낮밤을 아울러서 나이를 갑절이나 사는 게 아니겠수? 살림살이가 늘어
나고 나이를 갑절이나 산다면, 그야말로 수(壽)와 부(富)를 함께 누리는구려."
얼마 뒤에 밥상이 들어왔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이것 저것 골라
서 냄새만 맡을 뿐이었다. 민 영감이 갑자기 크게 성내며 일어나 가려고 하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영감님, 왜 노해서 가시렵니까?"
물었다. 민 영감이 말했다.
"당신이 손님을 불렀으니 손님에게 먼저 음식을 권해야지, 어째서 혼자 먹으려고 하우?
이건 나를 대접하는 도리가 아니라우."
나는 사과하면서 민 영감을 붙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빨리 밥상을 올리게 하였다. 민
영감은 사양하지 않고, 팔뚝을 걷어붙였다. 숟가락과 젓가락에 음식을 가득 올렸다. 나는 저
절로 입 안에서 침이 흘렀다. 마음이 시원해지고, 코밑이 트였다. 그제야 옛날처럼 밥이 먹
혔다.
밤이 되자, 민 영감은 눈을 감고 단정하게 앉았다. 내가 그에게 이야기를 걸었지만, 그는
더욱 입을 다물었다. 나는 몹시 무료하였다. 한참 뒤에 민 영감이 별안간 일어나서 촛불 똥
을 긁어 버리며 말하였다.
"내 나이가 젊을 때엔 눈이 스치는 글마다 곧 외웠지만, 이젠 늙었다오. 그래서 당신과 내
기 약속을 해 보리다. 평생 보지 못한 책을 뽑아 내어 각기 두세 번 눈으로 훑어본 뒤에 외
워보려우. 만약 한 글자라도 잘못되면 벌을 받기로 약속하는 게 어떻겠소?"
나는 그가 늙었음을 기회로 하여
"그러지요."대답하고는 곧 시렁 위에서 《주례(周禮)》*****를 뽑았다. 그 책에서 민 영감은
<고공(考工)>편을 골랐고, 나에게는 <춘관(春官)>편이 돌아왔다. 잠깐 뒤에 민 옹이
"나는 벌써 외웠다우."
하고 나를 일깨웠다. 나는 아직 한 차례도 훑어 보지 못한지라. 깜짝 놀라서 조금만 더 기
다려 달라고 청하였다. 영감은 자꾸만 재촉하여, 나를 곤경에 빠뜨렸다. 나는 그럴수록 외울
수가 없었다. 졸리운 듯하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하늘이 밝은 뒤에야 민 영감에게
"어제 외운 글을 기억하시오?"
물었다. 민 영감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나는 처음부터 외우지 않았다오."
하루는 밤늦도록 민 영감과 이야기하였다. 민 영감이 같이 앉은 손님들에게 농담도 하고
꾸짖기도 했는데, 민 영감을 막아내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한 손님이 민 영감을 궁색하게
하려고 물었다.
"영감님은 귀신을 보았소?"
"보았지."
"귀신은 어디에 있소?"
민 영감이 눈을 부릅뜨고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한 손님이 등잔 뒤에 앉아 있었는데, 그를
향해 소리쳤다.
"귀신이 저기 있다."
그 손님이 성내면서 민 영감에게 따졌다. 민 영감이 말하였다.
"밝으면 사람이 되고, 어두우면 귀신이 되는 법이라우. 지금 당신은 어두운 곳에 있으면서
밝은 곳을 살피고, 얼굴을 숨긴 채로 사람을 엿보았으니, 어찌 귀신이 아니겠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손님이 또 물었다.
"영감님은 신선도 보았소?"
"보았지."
"신선은 어디에 있소?"
"집이 가난한 자가 바로 신선이라우. 부자들은 늘 속세를 그리워하는데, 가난한 자는 언제
나 속세를 싫어하니, 속세를 싫어하는 게 신선이 아니고 무엇이겠수?"
"영감님은 나이 많은 사람도 보았겠구려?"
"보았지. 내가 오늘 아침 숲 속에 들어갔더니, 두꺼비와 토끼가 제각기 나이 맣다고 다투
더군. 토끼가 두꺼비더러
'내가 팽조(彭祖)******와 동갑이니까 너 같은 자야말로 후생이다.'
하고 말히니까, 두꺼비가 머리를 숙이고 훌쩍훌쩍 웁디다. 토끼가 깜짝 놀라서
'왜 그리 슬퍼하냐?'
물었더니, 두꺼비가 이렇게 말합디다.
'나는 저 동쪽 이웃집 어린아이와 동갑이었는데, 그 아이는 다섯 살에 벌써 글을 읽을 줄
알았단다. 그는 아득한 옛날 천황씨(天皇氏) 때에 태어나서 인년(寅年)에 역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왕(王)과 제(帝)를 거쳤으며, 주(周)나라에 이르러 왕통이 끊어지자 책력 하나를 이
루었지. 진(秦)나라 때에 윤달이 들었고, 한(漢)·당(唐)을 거쳐 아침엔 송(宋)나라가 되었다
가 저녁엔 명(明)나라가 되었지. 모든 사변을 겪으면서 기쁜 일, 놀라운 일, 죽은 이를 슬퍼
하는 일, 가는 이를 보내는 일 등으로 지루한 세월을 보내다가 오늘에 이른 것이야. 그런데
도 오히려 귀와 눈이 밝아지고, 이와 털이 나날이 자란단 말이야. 저 아이처럼 나이 많게 살
았던 자는 없을 거야. 그런데 팽조는 겨우 팔백 살을 살다가 일찍 사라졌다니, 그는 세상을
겪은 것도 많지 못하고, 일을 경험한 것도 오래지 못했을 거야. 그래서 내가 그를 슬퍼하는
거지.'
결국 토끼가 두 번 절하고 뒷걸음질치면서
'네가 내 할아버지뻘이다.'
합디다. 이로써 본다면 글 많이 읽은 자가 가장 목숨이 긴 거라우."
"그럼 영감님은 가장 훌륭한 맛도 보았겠구려?"
"보았지. 하현달이 되어서 썰물이 물러가면, 바닷가의 흙을 갈아서 염전을 만들거든. 그 갯벌을 구워서 성긴 것으로는 수정염(水晶鹽)을 만들고, 고운 것으로는 소금(素琴)을 만들
지. 온갖 맛을 조화시키면서, 소금 없이 어찌 맛을 내겠소?"
그러자 모두들 말하였다.
"좋소. 그러나 불사약은 영감님도 결코 못 보았겠죠?"
민 영감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거야말로 내가 아침 저녁으로 늘 먹는 것인데, 어찌 모르겠소? 큰 골짜기 굽은 소나무
에 달콤한 이슬이 떨어져 땅속으로 스며든 지 천 년 만에 茯笭이 되지. 인삼 가운데는 신라
의 토산품이 으뜸인데, 단정한 모양 붉은빛에 사지가 갖추어진 데다, 쌍갈래로 땋은 머리는
아이처럼 생겼지. 구기자가 천년 되면 사람을 보고 짖는다우. 내가 일찍이 이 세 가지 약을
먹고는 백 일이나 음식을 먹지 못하다가, 숨결이 가빠져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지. 이웃집 할
미가 와서 보고는 이렇게 탄식합디다.
'자네 병은 굶주렸기 때문에 생겼지. 옛날에 神農氏가 온갖 풀을 다 맛보고 비로소 五穀을 뿌렸으니, 병을 다스리려면 약을 쓰고 굶주림을 고치려면 밥을 먹어야 한다네. 이 병은
오곡이 아니면 고치기 어렵겠네.'
나는 그제서야 쌀로 밥을 지어 먹고는 죽기를 면했다우. 불사약치고 밥보다 나은 게 없는
셈이지. 그래서 나는 아침에 한 그릇 저녁에 또 한 그릇 먹고, 이제 벌써 일흔이 넘었다우."
민 영감은 언제나 말을 지루하게 늘어놓았지만, 끝에 가서는 모두 이치에 맞았다. 게다가
속속들이 풍자를 머금었으니, 辯士라고 할 만하였다. 그 손님도 물을 말이 막혀서 다시금 따
지지 못하게 되자, 벌컥 화를 내면서
"그럼 영감님도 역시 두려운 게 있소?"
하고 물었다. 영감님이 잠자코 한참 있다가 별안간 목소리를 높여서 말하였다.
"나 자신보다 더 두려운 건 없다우. 내 오른쪽 눈은 용이고, 왼쪽 눈은 범이거든. 혀 밑에
는 도끼를 간직했고, 굽은 팔은 활처럼 생겼지요. 내 마음을 잘 가지면 어린아이처럼 착해지
지만, 까딱 잘못하면 오랑캐가 될 수 있다우. 삼가지 못하면 장차 제 스스로 물고 뜯고, 끊
고 망칠 수도 있는 거지요. 그래서 옛 성인의 말씀 가운데도 '자기의 사욕을 극복하여 예법으로 돌아간다(克己復禮)'하였고, '사심을 막고 참된 마음을 지닌다(閉邪存誠)' 하였지요.
성인께서도 스스로를 두려워하신 거라우."
민 영감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지만, 그의 대답은 언제나 메아리처럼 빨랐다.
끝내 아무도 그를 골탕 먹이지 못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자랑하기도 하고, 기리기도 했으
며, 곁에 앉은 사람을 놀라게도 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허리를 잡고 웃어도, 민 영감은 얼굴
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해서(海西) 지방에 황충(蝗蟲)이 생겨서, 관청에서 백성들더러 잡으라고 감독한답니다."
라고 말하자, 민 영감이 물었다.
"황충을 잡아서 무엇한다우?"
"이 벌레는 누에보다도 작은데, 알록달록한 빛에 털이 돋혔지요. 이놈이 날면 '명(螟)'이 되고 붙으면 '모( )'가 되어서 우리 곡식을 해치는데 거의 전멸시키지요. 그래서 잡아다가
땅속에 묻는답니다."
민 영감이 말하였다.
"이 따위 조그만 벌레를 가지고 걱정할 게 무어람. 내 보기엔 종로 네거리에 한길 가득히
오가는 것들이 모두 황충뿐입니다. 키는 모두 일곱 자가 넘고, 머리는 검은 데다 눈은 빛나
지요. 입은 주먹이 드나들 만큼 큰 데다 무슨 소린지 지껄여 대고, 구부정한 허리에 발굽이
서로 닿고 궁둥이가 잇달습디다. 이놈들보다 더 농사를 해치고 곡식을 짓밟는 놈들이 없다
우. 내가 그놈들을 잡고 싶은데, 큰 바가지가 없는 게 한스럽구려."
마치 이런 벌레가 참으로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크게 두
려워했다.
어느 날 민 영감이 찾아왔다. 내가 그를 바라보고 은어(隱語)로
"춘첩자(春帖子) 방제."
라고 말했다. 민 영감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춘첩자'는 문(門)에다 붙이는 문(文)이니, 바로 나의 서인 민(閔)일 테고, 방은 늙은 개니
까 나를 욕하는 말일 테지. 제(啼)는 내 이빨이 빠져서 말소리가 웅얼대는 게 듣기 싫다는
뜻일 테지. 당신이 만약 '방'이 두렵다면, '견(犬)'을 버려야 할거요. 또 '제'가 듣기 싫다면,
그 '구(口)'를 막아 버려야 하겠지. 그러면 그 나머지 글자인 '제(帝)'는 조화(造化)를 뜻하고
'방'은 큰 물건을 뜻하지요. 그렇게 해서 '제'자에다가 '방'자를 덧붙이면, '크다'느 뜻이 되는
동시에 그 글자 모양은 '방'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당신이 나를 모욕한 게 아니라, 도리어 나
를 칭찬한 게 된다우."
그 이듬해에 민 영감이 세상을 떠났다. 세상 사람들은
"민 영감이 비록 지나치게 넓고 기이하며, 얽매이지 않고 호탕하지만, 그의 성격은 깨끗하
고 곧으며, 즐겁고도 밝다. 《주역》에 밝고, 노자(老子)의 글을 좋아했으며, 그가 대체로 엿
보지 못한 글이 없다."
고 말했다.
그의 두 아들은 모두 무과(武科)에 올랐지만, 아직 벼슬하지 못하였다. 올해 가을에 내 병
이 더친 데다, 민 영감도 다시는 만나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와 더불어 나누었
던 은어(隱語)·해학(諧謔)·풍자(諷刺) 등을 모아서 이 <민옹전>을 지었다. 때는 정축
(1757) 가을이다. 이에 시를 지어서 민 영감의 죽음을 슬퍼한다.
아아, 민 영감이시여.
괴상하고도 기이하며, 놀랍고도 깜찍스럽구려.
기쁘고도 노여우며, 또한 얄미웁구려.
저 바람벽의 까마귀가 끝내 새매로 화하지 못했구려.
영감께선 뜻을 지닌 선비였건만
마지막 늙어 죽을 때까지 쓰이지 못했구려.
내 그대를 위해 전을 지으니
아아, 그대는 오히려 죽지 않을 거외다.
각주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정권을 잡자, 정권을 잃은 소론측에서 이인좌·정희량이 주동하여 영조의 정통성을 부정하면서 밀풍군(密豊君) 탄(坦)을 추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영조는 숙종의 아들이 아니며, 경종은 동생(영조)에 의해서 억울하게 죽었으니, 경종의 원수를 갚고 왕통을 바로잡자는 주장을 내세웠다. 청주 일대의 성들이 위태로웠는데, 병조 판서 오명항이 관군을 이끌고 가서 반란을 진압하였다. 토벌에 참여한 자들은 4월에 분무공신 포상을 받았다.
**중국 춘추시대 사람인데, 일곱 살 때에 공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감라도 역시 춘추시대의 장군이다.
***진나라 말기에 한나라 유방(劉邦)과 함께 천하의 패권을 겨루었던 초왕(楚王)인데, 흔히 그의 자를 따서 항우(項羽)라고 불렀다. 그의 능력을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즉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했다"고 표현했다. 그는 천하를 평정하기 위하여, 고향의 젊은이들을 이끌고 오강을 건너 중원으로 향했었다.
****나이 여든이 될 때까지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미끼도 없는 곧은 낚시로 위수(渭水)에서 세월을 낚았다. 여든에야 문왕(文王)을 만나 태공망(太公望)으로 추앙받고, 무왕을 도와 은나라 주왕(紂王)을 토벌하였다. 낚시꾼을 강태공이라고 부르는 것도 여상 때문이다.
***** 주나라의 관제(官制)인 천관·지관·춘관·하관·추관·동관 등의 여섯 관청을 분류하고 설명한 책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책인데, 주공(周公)이 지었다고 한다. 십삼경(十三經) 가운데 하나다.
****** 요임금의 신하인데, 은나라 말년까지 칠백 년을 살았다고 하는 선인이다.